월남 편지 ( 제 64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엊저녁 대대장님(육사 11기 안교덕 중령) 송별 파티에서는 주량을 초과해서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양주라 더 한가 봐. 혼났어. 그렇지만 아침에는 정상적으로 일어나 오늘 오전에 있은 대대장 이취임식에 대대 총지휘를 거뜬히 해냈으니까--- 이걸 봐도 난 건강히 잘 있다는 말이 인사말 만은 아니라고 알아 줘야지.
  여보! 며칠간 소식이 안 오니 퍽 궁금증이 나는군. 그렇다고 부하들 앞에서 편지 타령을 할 수도 없고 속으로만 무척 기다려 지는데.
  바쁜 추수 계절이지만 잘 있을 것으로 믿어야지! 부모님들도 안녕하시고 시화, 미애 잘 놀아? 저희들 뒤만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이겠다?
  전 대대장님은 참 훌륭한 분이셨지. 전투지휘관으로서 훌륭히 부대를 지휘하시고 떠나시는 그분이 얼마나 장해 뵈고, 부러웠는지 몰라. 다만 재임기간 중 유명을 달리 한 부하들의 이름을 뇌이며 못내 가슴 아파하시는 모습이 머리에 선 하게 떠오르는군.
  오늘따라 위문 쑈가 왔었지. 월남에 와서 밥 먹 듯이 보는 쑈라 별 흥미는 없었지만 쑈 자체보다도 아릿다운 고국의 아가씨들의 얼굴을 보며 그때마다 월남의 아가씨는 비교도 안 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군.
  새로 오신 대대장님(육사 13기 홍은표 중령)은 13기생 선배님으로 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훌륭하신 분인 것 같애. 하기야 누가 되던 전쟁터에서 상급지휘관을 정성을 다해서 받들어야지. 그래도 어쩐지 대대장님이 바뀌고 인접 중대장-이규완 대위-이 바뀌고 하니까 퍽 맘이 어수선하군. 얼마 가지 않아 차분히 갈아 앉겠지.
  여보! 먼저 온 사람들이 자꾸 가게 되면 내게도 차례가 온다는 거지? 여보! 생각만 해도--- 마치 당신 곁에 가 있는 자신을 느끼는 것 같애. 그 때를 당해 어떻게 해야 1년 동안 못한 정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여보! 시화, 미애가 잘 논다고 했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꼭 껴 안아 주고, 나도 한 몫 끼어 놀고 싶어지는군. 물론 당신도 꼭, 꼭 껴 안아 줄게.
  큰 작전을 치룬 후유증인지 맘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구먼. 여러 가지 불쾌한 일도 있고 해서 그런가 봐. 하기는 적과 몸을 맞대며 싸우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고 해야 하나의 조화를 이루겠지. 그래서 세상은 단조롭지 않고 복잡한 게 아니겠어.
  여보! 정말 보고싶단 말 외에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또 좋은 소식이나 있으면 곧 쓸게.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