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5 신 )
옥이 당신에게
  편지를 기다리는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군. 두 장쯤 더 받을는지 모르지만 작전으로 인해서 한 동안 뚝 끊질 걸 생각하니 말야.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보상한다는 생각으로 또 쓰고 또 쓰고 하는 거야.
  오늘은 신임 대대장님(육사 13기 홍은표 중령)이 중대를 방문한다고 부산히 준비하는 중에 당신의 편지를 받고 언 듯 한 번 읽어보고 치운 것을 저녁 내내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조용히 저녁에 다시 읽고 답장을 쓰겠다고 벼게 밑에 넣어 둔 것이 생각이 나야지.
  당신과 시화, 미애가 잘 있다니 우선 안심하지만 어머니가 몸치(몸살)로 이틀이나 앓았다니 퍽 걱정이군. 몹시 쇠약해져서 인가 봐. 워낙 가을 일이 힘들기 때문일 거야. 양친께서는 이제는 무리하시지 말아야 할 때인데---
  여보! 결혼 5주년 날자는 나도 잠시 생각은 했었던 것 같애. 그렇지만 그 때는 작전의 한 중간에서 적보다 더 무서운 자연과 싸우면서 처량하게 비에 젖으며 오뚜기(헬리콥터)로 보급을 받을 수 있는 지점까지 중대를 끌고 나오던 날이지. 비와 안개 때문에 보급이 올 수 없어 더 버티다가는 굶을 판이었으니까.
  파월 이래, 또 중대장이 된 이래 가장 힘든 지휘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야. 안개 때문에 10m 전방 밖엔 전연 보이지 않고,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열대의 나라는커녕 겨울을 만난 듯 떨려오고--- 이런 때 일수록 지휘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태연자약한 듯이 과감하게 선두를 채찍질하면서 해쳐 나왔지. 무려 6시간 동안---
  여보! 난 당신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은 마누라로 생각되지 않고 애인만 같은 느낌인데 벌써 5년이 됐나? 지금은 연애하는 기분이랄까--- 지금 옆에 있으면 꼭 껴안고 깨물고만 싶은---
  여보! 5년 동안 난 당신을 너무 고생시키고 괴롭히기만 해 온 것 같애. 결혼 초 오음리에서 시작해서 (원주), 광주, 지금은 당신이 기대는 기둥도 없는 시골 구석에 이르기까지 뭣 하나 잘 해 준 것 없는 것 같애.
  여보! 한시 바삐 당신 곁으로 돌아 가 우리 시화, 미애 앞에 놓고 웃으며 못 해 온 것이 있으면 뭐든지 하고 싶다. 여보! 날과 달이 가는 것은 사람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렇게 카렌다가 넘어가는 것이 더디니 말야.
  여보! 당신 가을 일에 무리하지 말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건강과 꼭 같이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도 그것이야.
  미애 젖을 뗀다고? 좀 늦은 감이 있지. 시화 젖 떼일 때 당신이 고생하던 생각이 떠 오르는군. 당신은 항상 잘 하니까 젖 떼더라도 아이들 축나게는 앙 하겠지 뭐 시화처럼---
  정말 난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17년을 집을 떠나 살아 왔지만 당신 말처럼 엄마 아빠가 이렇게 보구싶으면--- 불효라서 그럴까?
  낮에는 사격장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다음에 있은 어떠한 전투에도 피를 절약하려고 동분서주 하지만 목욕이 끝나고 자리에 들면 곧 잠들 때까지는 (오직) 한가지 당신과 시화, 미애 만을 이렇게 저렇게 그려 보다가 잠들게 되는군.
  여보! 이만 끝내고 남은 하루의 마지막 일과(?)와 함께 잠들어야지. 힘든 가을일과 변하는 기후에 몸조심 해 응. 여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애타게 그리며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