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6 신 )
옥이 당신에게
  편지가 한꺼번에 여러 장 모여 들어 간다고 즐거운 비명인데 그건 우편물 취급이 잘못된 게 아닐 거야. 아마 본국을 오가는 비행기 관계가 있겠고, 또 그만치 당신이 보고싶을 때 잠 못 이루고 자주 쓴 증거가 아닐까? 물론 작전이 있어 오래 못 쓴 적도 있지만--- 아마 지금 쯤이 그런 경우가 되어 애타게 우체부만 원망하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고---
  안 받으니까 안 쓰는 건지 요 며칠은 당신 편지도 끊어졌구먼. 중대장 체면이 있어 좀처럼 편지 얘기는 안 하는데 어제 오늘은 전령에게 두 번이나 물어 봤군. 중대장 편지를 어련히 알아서 갖다 놓겠나 만 혹시나 해서-
  사실 66신을 지난 10월 26일에 조그마한 작전을 나가면서 국산 TV 물표가 나오거든 넣어서 부치라고 써 놓고 간 것이 5일간 작전을 끝내고 돌아와도 아직 안가고 있어. 상황도 바뀌고 해서 다시 쓰는 거야. 67신은 엊저녁에 써서 오늘 발송했는데 거꾸로 됐군.
  이젠 작전이 식은 주 먹듯 있고 넘기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어. 모래부터 또 한 바탕 하게 되겠군. 그것도 남의 대대에 배속되어--- 한 8일쯤 될 테니 그 동안 못 쓸 거야.
  마침 내일 중대원 중에 하나가 휴가를 가게 되어 시골에 있는 당신까지야 만날 수는 없고 서울 있는 정영이나 만나고 오라고 했는데 몇 가지 부탁을 했지.
  첫째 그 편에 과자 1BOX와 비누 등 1BOX를 정영이 갖다 줘서 시골루 소포로 부치라고 했지. 여기서는 별 맛도 모르는데 아마 시화, 미애는 무척 좋아 할 지도 몰라.
  둘째 언제부터 말하던 국산TV인데 물표가 나왔군. 서울 을지로에서 12월 2일부터 내년 1월 1일 사이에 찾도록 되어 당신에게 직접 보내면 추운 겨울에 고생만 할 것 같애서 휴가 가는 그 편에 정영이에게 갖다 줘서 찾은 후에 집에 가져 가던지 서울에 보관하라고 그랬어. 어떤 건지 나도 모르겠어. 19인치로 동남전자회사제라는데 105불-약 3만원-을 줬으니까 다소라도 싸겠지. 그런데 찾을 때 등록하고 1년분 시청료 3,600원을 주게 되어 있군.
  송금 절차가 복잡해서 돈도 안 보내고 정영이 한테 가진게 있으면 (시청료를) 주고 찾으라고 했는데 너무 무리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 당신 생각에 어때? 객지에서 고생하는 녀석이 그만한 여유가 있겠나? 그렇게 못하겠거든 당신이 부쳐 줘.
  가을(일)이 끝나고 조용하거든 바람도 쏘일 겸 서울 구경 한 번 하고 오는 것도 괜찮고. 그런데 서울 가도 갈 데가 있나. 기수(처 고종사촌)네도 이사 했다니 말야. 영옥이(동기생 김종헌 생질)네는 바로 이웃으로 이사 했다 던데--- 정영이한테 가면 알 수는 있을 거야. 추위에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놔두고 갈 수도 없을 게고, 데리고 가자면 너무 고생 될 꺼고--- 그건 알아서 해. 정영이가 집에 다니러 올 때 가져 올 수도 있겠지.
  여보! 당신 서울 가면 촌놈이라고 놀라지는 않겠나? 정기(박용원대위 아들) 엄마한테 편지 쓰고 며칠 가 있다 와도 되겠군.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여보! 여보! 서울 거더라도 바람 피우면 안돼. 이건 농담--- 부모님들에게 말씀드리고 12월 초순경에 서울에 갔다 오지? 응.
  한 달쯤 지난 거지만 사진(주) 한 장 보낸다. 전엔 혹시 보낸 건 아닌 지 모르겠다. 인상을 아주 고약하게 썼군. 주위에 무허가 판자집 같은 게 보이는데 비가 많이 와서 못 새게 하느라고 그모양이지. 사실은 빵카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사는데 보이는 집은 보급품 넣는 창고야. 들고 있는 것은 총검인데 아군의 심장을 노리던 (V.C)거지. 뺏었어. 기념으로 갖고 갈 거야.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이 우기가 되니까 얼굴이 좀 희어진 것 같애. 당신과 헤어질 때보다 더 살찌지도 마르지도 않았잖아? 여전히 건강해.
중대기지에서
(오른쪽 물이 안쾅만의 끝부분, 밀물을 따라 큰 고기들이 들어 온다. 뒤에 보이는 산이 푸미반도, 그 오른쪽 끝 자락 폭 4Km, 길이 8Km가 동쪽 반은 백사장, 서쪽 반은 불란서 통치시절 부호들의 별장지대.)
  내일 다시 한 번 당신 편지를 기다려 보고 (작전) 배속된 부대로 가야지. 작전 중에는 보급 올라오는 편에 편지가 올라 올 수도 있지만 Time이 잘 안 맞으면 못 오는 경우가 많아.
  여보! 보고싶단 말은 생략할려고 했는데 그만--- 꽤 날씨가 쌀쌀할 텐데 당신도 아이들도 건강에 조심 해. 여보!---- 그럼 그만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 영 씀
고국 편지 ('69. 11. 8)
여보! 보고싶은 당신에게
  어젠 당신이 보낸 편지와 비누 박스가 왔군요. 2억 만리의 월남 땅에서 당신이 보낸 것이 이 산골에 도착했다는 것이 (마치) 옛날 사람 같이 신기하기만 하고 기쁘군. 물론 편지도 그러했지만--- (소포를 ) 단단히 붙인 당신의 솜씨를 더듬으며---
  여보! 또 작전을 나갔다지. 무사히 돌아오셨어야 할 텐데--- 서울에 온 병사의 이야기를 듣고 도련님은 무척 흥분과 기쁨의 편지를 썼더군요. 옥인 점심을 할려고 준비에 바쁜데 우체부가 소포를 주기에 의아해 하면서 뜯어보고 (소포 속에 넣어 온) 편지 보기에 바뻐 (당신에게) 붙이려던 편지도 못 부치고 (우체부가) 가버리고 말았군요. 텔레비 물표는 도련님이 가지고 있고, 비누 박스는 왔는데 과자 박스는 아직 도착이 안 되었군요. 곧 올 테지.
  여보! 당신이 잘 있다지만 잦은 작전에 조심하셔요. 라디오를 통해 동계 공세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던데--- 그럴 땐 더 소식이 궁금---
  여보! 24일에는 서울에 가 볼려고 해요. 테레비를 찾고, 또 그 병사도 만나 자세한 이야기나 좀 듣고--- 그리고 고추가루가 그 곳은 귀하다면서 고추가루, 마늘이나 좀하고 호도나 곶감 좀하고 이원에 가게 되면 고추장이나 좀하고 조금씩 보낼까 하는데 그 사람-병사-에게 많은 짐이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옥이가 (당신이) 옆에 있다면 좋은 것은 다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여보! 여긴 다 편해요. 가을(추수)도 다 거둬들였고, 이제 김장이나 하고 지붕이나 이면 다 된 것 같군. 그리고 먼저 편지에 옥이가 말 한 용(녹용) 이야기는 아버님이 가끔 속이 불편할 땐 그것을 먹으면 좋다고 하시기에 그곳에서 구하기 쉽다고 한다는데--- 하면서 원하시는 것 같아 이야기 했는데 일선에서 전쟁을 하는 당신에게 옥인 그런 말-부탁-하고싶지 않지만--- 조금도 당신에게 마음의 짐을 지게 하고싶지 않지만--- 이야기를 했는데 짐이 되지 않을 지 모르겠군. 당신에게 구하는데 조금의 피해라도 있으면 안 구해도 좋아요. 다른 좋은 약들 많으니까---
  미애도 가을 바람에 얼굴이 좀 텄지만 건강히 잘 놀고 제법 말도 늘었고, 시화 역시 잘 놀아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응석에 어린양은 많이 늘었지만 날마다 감으로 간식을 하는데 홍시 먹고 나면 입이 매일 공중변소 같이 지저분하니 해 가지고 가을(겆이) 할 땐 제대로 씻어주지도 못했지만 이젠 좀 한가하니 자주 손을 대야지.
  시화가 (당신이 보냈다는) 테레비, 과자 이야기를 하니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아빠 이제 온데?” 하며 묻기도 하고, 보고싶다고 하면서--- 여보! 옥이도 무척 보고싶단 말이에요. 빨리 세월이 흘러야지. 일년의 못다한 정 담뿍 안고 당신을 맞아야지. 빨리 세월이 흘러 가야지. 지금 내게는 시간이 가는 것이 하나도,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것 같군. 여보! 당신도 마찬가지?
  시골은 언제나 바쁜 것 같군. 타작은 끝났지만 아직은 할 일들이 많으니까. 거둔 곡식들의 갈무리 등--- 여보! 어떤 때는 짜증도 나고 하지만 어디에 몸부림 할 곳도 없지만 당신이 날 걱정해 주고,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편지를 받을 땐 모든 것도 다 사라지고 기분이 좋으니까.
  여보! 그럼 항상 조심해요. 그럼 안녕---
당신을 그리면 당신의 옥이가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