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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편지 ( 제 68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당신이 핑크색 편지지를 썼기에 나도 꺼낸 것이 핑크색이군. 지금까지도 당신은 버리지 않았나 모르겠다만 당신의 핑크색 부라우스가 생각이 나는군. 당신이 누굴(대구 남실이를 말 한 듯) 좋은 때라고 부러워 하듯 한 창 좋아서 전방 산중에도 찾아오고 또 나도 눈 속에 밤 길 약 50리를 걸을 때 당신이 즐겨 입던 핑크색 부라우스 말야. 그 핑크색 부라우스로부터 당신과는 인연이 맺어졌고 사랑이 올랐는지도 몰라. 지금까지 만 5년을 지지리 고생만 시키고--- 그러나 아직 멀었어. 인간의 행, 불행은 죽는 그날에야 결정된다 잖아.
  10월에 있었던 큰 작전에서 무사히 돌아 왔느냐고? 이미 띄운 편지에 자세히 적혔을 테니 생략하고--- 하루 세 끼 밥 먹듯 있는 작전이라 이제는 시작하면 ‘식은 죽 먹기’ 식으로 끝나는군. 벌써 그 작전 후로 오늘 두 번째 것을 끝내고 돌아왔으니까. 물론 당신이 걱정해 주고 우리 시화, 미애가 아빠가 보고싶어 하고 있는 만치 나는 물론 전 중대원이 별고 없이 무사히 귀대해서 비에 젖어 노곤해 진 몸을 잠으로 풀고 있어. 난 이렇게 당신이 보낸 편지의 답을 쓰고 있지만---
  이번 작전은 3대대에 우리 중대만 배속되어 나갔지. 3대대장님은 당신도 이름을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삼촌과 친한 박희도 중령님--- 다른 대대에서 나왔다고 특별히 신경 쓰시면서 친절하게 지도해 주고 지원해 주더군. 때가 우기라서 하루에도 열 번쯤 흠뻑 젖었다가 말랐다 했을 거야. 지나던 구름이 심심하면 한 줄기 쏟아 놓으니까.
  감 잎이 마당에 쌓이고 앙상한 가지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하다니 이미 늦가을인가 봐? 여긴 통 계절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겠다? 시화, 미애는 아침에 이불 속에서 안 나올려고 하겠군. 아빠가 옆에 있으면 늦잠자기는 틀렸겠어.
  병년이(뱃들 살 던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동기 안병년) 이 친구가 왔었던 모양이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무척 친하게 지내던 친군데. 우정이란 떨어져 있으면 덧없이 가버리는가 봐. (내가) 사관학교 가면서부터는 자주 못 만나고 뜬소문으로만 소식을 들어 왔지.
  여보! 그런데 당신과는 벌써 10개월째 떨어졌는데 점점 더 보고싶고 당장 옆에 있으면 꼭 껴 안고 뽀뽀해 주고 싶어지는데? 왜 그럴까?
  그래 제대한 후 장사를 하는데 잘 돼 간데?
  전번 편지-66신-는 휴가 간 중대원 편에 부쳤는데 오늘쯤은 당신 손에 들어갔는지 모르겠군. 그기에 말 했듯이 TV구매권을 정영이 갖다 주라고 그랬어. 12월 2일부터 1월1일 사이에 찾아야 하는데 만약 정영이를 못 만나는 경우 생각 다 못 해 정기(박용원 대위 아들) 엄마네 전화 번호를 적어 줬지. 그기 다 맡기고 오라고 말야.
  그리고 역시 정영이 갖다 줘서 집으로 소포로 부치라고 과자 한 상자와 비누 한 상자를 보냈으니까 아마 잘 가겠지. 남에게 부탁한 거라 궁금하니까 받거든 곧 알려 줘.
  정영이와 정희의 혼사말이 어떻게 난다는 거야? 둘 다 한꺼번에? 전에도 말했지만 옛날 격식에 너무 구애 받지 말고 정희부터 결혼 시키자고 그래. 여자는 혼기가 중요 하잖아? 그리고 정영이는 그래도 객지에 나가서 발붙여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때에 너무 무거운 짐이 되잖아? 당신이 (부모님을) 잘 이해시켜 봐. 아마 부모님들 생각은 정영이 결혼부터 시켜서 집에 두겠다는 건가? 요즈음 사람이 그렇게 할려고 하겠나. 당신도 월남전 덕분에(?) (집에 가 있지만)---
  부모님들 힘에 과중하실 텐데 물 건너 논 8마지기를 3마지기로 줄이고, 방내 들 1마지기를 두 마지기로 늘리자고 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 노인네들 양식은 안 되겠나. 무영이 학비? 우리가 대어야지.
  여보 귀국하면 여행하자고? 좋아. 며칠간의 휴가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계산하고 중경단으로 매월 50$씩 부쳐-의무적이지만- 10월까지 꼭 435$이 됐군. 부산서 찾으면 그기서부터 시작하자구. 그때까지 경부고속도로가 다 됐으면 좋겠는데. 여보! 스케쥴이나 잘 짜 놔 응.
  애기의 젖을 떼는 것이 엄마 품에서 좀 떨어진 것 같다고? 그럴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직 멀었어. 그것이 조금 컸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 인간이 독립하는데 제1보를 내 디딘 셈인지도 몰라. 그러나 당신이 이 세상사람이 아닐 때까지 당신의 품은 필요하고 또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될 거야.
  여보! 이 세상에서 가장 희생적인 사랑, 본능이 모성애라 하잖어. 그러고 보면 아직도 계속이긴 하지만 당신은 두 번째로 큰 일을 해 낸 거지. 여보! 수고했어.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큰 수고가 두 아이들에게 있어야 할지도 몰라. 당신이 더 잘 알 테니까---
  아득할런지도 모르지만 부모 된 자 마땅히 훌륭한 사회인으로 독립할 때까지 자식을 길러내야 할 의무를 지고 난 게 아닐까.
  며칠 후 곧 작전이 있을 것 같애. 조그마한 거니까 쉽게 돌아오겠지. 군인이 전쟁터에 와서 작전하는 게 당연하지. 너무 걱정 말어. 당신의 남편은 허약한 노루 떼를 거느린 게 아냐. 적어도 맹호를 백 수 십 마리 거느린 막강한(?) 사람이야. 작전 나가기 전에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좀 자야겠어. 여보!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69. 11. 18)
여보! 당신에게
  며칠 펜을 못 들었나 봐요. 변명은 않고--- 미안!
  여보! 작전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뒤 궁금증으로 몇 날이 흘렀는데 오늘은 (편지가) 올런지 모르겠군. 무사히 돌아왔기를 빌며-
  “여보---!” 쓰다 보니 불러 보고싶어.
  여긴 다 무사합니다. 옥이도 잘 있고, 시화, 미애도 지금 펜을 옆에서 당신이 보낸 과자들을 먹으며 서고 많이 달라고 아우성이군 마구 서로 많이 갖겠다고--- 미애도 조금도 안 질려고 악을 쓰는 것이 웃음이 나오는군. 시도 때도 없이 달라고 야단--- 아침이면 날 닮아서 그런지 새벽 4시면 다 일어나 사람을 짓이기고 야단이군. 미애의 계집애 같은 신경질, 사내 같은 시화의 극성이 서로 맞 닿으니 울고 짜고---
  여보!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하얗게 (땅에) 쫙 깔려 있는데 시화가 일어나서 눈을 보니 아빠 생각이 났나 봐. 할아버지 한테 가서 “할아버지, 눈이 왔는데 아빠 오겠다” 그러더래요. 왜 그러냐고 할아버지가 물으니까 “눈 오면 아빠 온 뎄는데” 그러더라고--- 그 전에 아빠 언제 온데? 하고 묻기에-여름에- 눈이 하얗게 내리고 추울 때 겨울에 온대 그랬더니 아마 잊지 않고 (눈이 오니) 그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꾸만 하는군. 그렇잖아도 보고싶은 판에--- 여보! 옥이도 눈이 오고 하니 서울에서 우리 네 식구가 한 바탕 딩군 생각도 나는군.
  여보 24일에나 서울에 놀러 갈 겸 한 번 가 보겠어요.의 안부도 자세히 듣고--- 시화는 서울에 티리비를 아빠가 부쳤다니까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그리고 아빠 오면 서울로 이사 간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고---아빠가 서울에 가 산다고 했다나--- 아주 장난도 심하고 말하는 것도 제법 큰 아이들 같이 이야기 할 땐 대견스럽기도 해.
  미애도 제법 말 수단이 늘어 때려준다고 위협하면 “때려라” 하고 대꾸를 할 땐 웃음이 나와 자꾸만 얼리는군.
  여보! 아이들이 보고싶지? 11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남은 시간들이 지나간 날 보다 더 길고 지루한 것만 같아. 지나고 보면 그렇지 않을 테지만---
  여보! 이만 그칠게. 옆에서 아이들의 아우성에 이만 그쳐야지. 여보! 그럼 안녕. 시간아 (빨리) 흘러라.
당신을 보고싶어 하는 당신의 옥이가. 11. 18
고국 편지 ('69. 11. 20)
여보! 당신에게
  어젠 당신이 부친 수당을 찾아 왔답니다. 시화와 같이 가서--- 요사이 날씨는 어설픈 초겨울 싸늘한 기온이군요. 요사이 김장이 한창--- 우리도 못 된 배추를 오늘 안쳤군. 채소엔 힘을 안 쓰니 잘 돼야지---
  여보 당신의 핑크색 편지가 도착했군. 잦은 작전들, 많은 고생이 따르겠지. 여보! 자주 있는 작전이라고 해이한 생각은 말아요. 아무쪼록 당신이 건강하다니 내겐 더 무었을---
  먼저 편지에 말 안 했나 모르겠는데 비누, 과자 박스는 잘 왔어요. 요사이 미애와 시화는 눈만 뜨면 과자 달라고 야단--- 초콜렛이 제일 맛이 좋은 모양이군. 날마다 그것만 찾으니--- 요사인 시화가 아빠 이야기를 자주 꺼낸답니다. 올 날이 차츰 가까워 오는 것 같은 이분인지---
  여보! 여긴 다 편안합니다. (농사) 지어놓은 쌀에 많은 나무에--- 집 걱정은 말아요.
  22일 쯤은 이원으로 해서 서울에 가볼까 해요. 당신의 소식도 듣고, 또 놀다가 TV도 찾아오고--- 막상 서울엘 갈려니 촌으로만 다닌 촌사람이 서울엘 갈려니 준비가 불충분해 마음이 어수선하다고 할까. 아이들도 있고--- 그러나 꼭 한 번은 거 봐야지. 당신이 귀국하면 어디에 근무할지는 몰라도 되도록이면 서울에 살고 싶은데 서울 사정이나 좀 알고, 머리도 식히고--- 선희(사촌)네도 살림은 서울에서 하는 모양입니다. 기순이(고종사촌)네도 아현학교 부근에 전세 30만원짜리에 살고 있다나--- 그런데 아이들 둘 중에 하나는 떼어놓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우리가 자리를 잡아야지. 여보! 당신과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빨리 시간이 흘러야지. 지금 옆에서 시화가 바느질 쌈지를 ?당신이 보낸- 들고 저 한다고(갖느다고) 좋아서 폈다 접었다 야단이군. 가위는 학교 다닐 때 공작 가위 하게 잘 간수해야지.
  그러고 보니 시화도 벌써 6살이 가까워 오는 것 같습니다. 음력 10월 11일이니 생일도 얼마 안 남았군. 여기서 별 것 해 줄 것도 없고, 무엇을 해 줄 지 모르겠군.
  총각(정영), 처녀(정희)의 혼사 말은 요사이 뜸한데 아무리 해도 올해는 못할 것 같고, 내년에나 기다려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경제상으로 봐서도 우리 집엔 너무 할 일들이 많으니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 여보! 쓸데 없는 말을 했나 보다. 그러나 그리 걱정을 할 일은 못되니까 걱정하지마.
  여보! 당신이 올 날을 목이 빠져라 하고 기다린답니다. 펜을 들었지만 무엇을 쓸까 생각이 안 나는군요. 보고싶고, 빨리 시간이 흘러라고 밖에--- 당신이 올 날을 상상하고 희만에 부풀어 나날을 보내야지. 당신이 날 꼭- 안아 줄 날을 기다리며 말이에요.
  여보! 보고싶지만 참을게. 그럼 오늘도 안녕!
당신의 옥이가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