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69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내가 너무 하고 있는 것 같애. 난 전쟁터에 나온 사람 치고는 너무 편안히 잘 있는데 오히려 집에 있는 당신이 못 할 노릇이지. 몸에 배지 않은 시골 생활에 가장 바쁜 가을철이니 오죽 하겠나.눈 앞에 보면서 안 할 수도 없을 게고---
  여보! 힘을 내. 마지막 고비일 거야. 추수만 끝나면 겨울과 봄은 별로 힘드는 줄 모를 거야. 하여튼 톡톡히 시집살이 하누만. 그것도 늦으막히---
  이렇게 격려를 하면서도 당신 건강이 지탱해 낼지 걱정이야. 여보! 뭘 해 놨다 하더라도 당신이나 아이들 건강에 손상이 됐다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리고 내가 작전 나가는데 대해선 너무 신경 쓰지 말어.
  (작전 중에) 당신에게 편지 자주 쓰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 위험하다거나 그런 건 없어. 백 수 십 명의 부하를 가진 자가 위험하다면 그 부하들은 어느 정도이게?
  편지를 쓰면서도 이 편지를 받아 들고 좋아 할 당신의 모습이 떠 오르는군. 또 피곤한 몸으로 답장 쓴다고 엎드렸다가 그만 졸려 감겨지는 당신의 실눈이 생각나는군. 추수는 보통 잠간 끝나니까 이종기 때보다 빨리 지나 갈 거야.
  여보! 시화나 미애가 흉보겠다. 어른들도 응석을 부린다고 말야. 여보! 그래도 좋아. 꼭 껴 안아 줄게. 일년간 못다한 사랑. 꼭 갚을게.
  아마 지금쯤 타작이 한창이겠군. 온 집안이 먼지 투성이겠다. 곶감은 얼마나 깍나? 올 해 감 풍년인가?
  여보! 시골-농촌-이라고 일년 내내 요사이처럼 바쁘면 어떻게 살게? 겨울이 되면 또 지루하도록 한가한 때도 있을 거야. 당신 말같이 소득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곧 인간 생활의 제일이 되는 ‘먹는 것’을 해결해 주는 거야.
  월남도 전쟁이 복잡해 지는 것 같애. 전쟁터에서 적만 잘 때려 잡으면 됐지 복잡한 게 많아. 작전에 나가 있으면 이런 것들은 아랑곳 없이 다만 적과 나만 생각하면 되지만 기지에 돌아오면 둔해 진 머리통이 아주 복잡해져.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식욕 왕성하고 건강해. 초저녁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에 늦잠 자는 것 옛날이나 똑 같애. 당신과 어떻게 그렇게 반대지?
  노동력이 부족하면 일꾼을 사던지 해서 해야지. 부모님들도 이젠 무리하지 말아야 할 텐데. 많이 변하셨을 걸?
  시화 미애가 잘 논다니 다행이지만 일기 때문에 살결이 좋지 못하다고? 겨울 준비는 착실히 해서 초겨울부터 감기 걸리지 않도록 해야지?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하랴 만 워낙 바쁜 계절이기에 혹시 착안하지 못했나 하고---
  어제, 오늘은 작전에서 돌아 온 기분도 가시기 전에 기지 강화를 위한 진지 작업을 하는데 벗어 재끼고 했지. 철조망도 더 치고, 참호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아직 며칠 더 해야지 끝날 꺼야.
  여보! 밤이 깊었나 보다. 나도 졸리는 걸 보니. 또 쓸게. 여보! 피곤하고 바쁠 때 너무 무리해서 자주 편지 쓸려고 하지 말어. 그래도 난 열심히 쓸게.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69. 11. 27)
여보! 당신에게
  여긴 서울입니다. 집을 떠날 때 당신의 편지가 집에 와 기다릴 생각을 하며 24일 -어제- 청룡호편으로 서울엘 왔답니다. 두 새끼를 끌고--- 간접적으로나마 우리 세 식구는 잘 있다고 알리고 싶소, 또 시화는 늘 서울구경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해 데려왔더니 남의 집에 미안한 감이 없지 않군. 지금은 지원이네 집에 2일째를 맞았습니다.
  지금 막 휴가 왔다는 주병장을 큰 도련님과 (함께) 만나고 들어 와 펜을 듭니다. 내일 만나 이야기 할 생각이었는데 주병장이 저녁에 큰 도련님과 같이 와서 저녁 한 끼를 먹으며 당신의 소식을 듣고 여기 소식도 이야기하며 잔깐 자리를 같이 했답니다.
  내가 당신을 믿듯이 주병장의 이야기 역시 든든한 이야기로 기쁨을 주어 감사했답니다. 어느 중대 못지 않게 훌륭히 잘 하시고, 맹호부대 내에서도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은 중대장을 하고 있다고--- 여보! 감사해.
  막상 만나니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알고싶은지 모르겠군. 어쨌든 당신이 (늘) 말 하듯이 잘 있고, 당신의 열성에 책임완수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몸과 같은 내게도 더 무엇을---(바라겠어요)
  여보! 보고싶어. 빼 놓을 수 없는 말이야. 시화, 미애는 잘 놀아요. 서울에 오니 촌놈으로 바람고 흙 속에 딩굴면서 터진 살결이 거칠은 것이 시골의 때를 벗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활발하군.
  윗 것은 어제 쓴 것이고 지금은 김포비행장에서 씁니다. 김을 하나 사 보내고 싶어 주병장이 가는데 부치려고 이렇게 급하게 나와 부치는 것입니다. 짐이 되어서 미안하지만---
  여보! 이대로 나도 타고 갔으면 좋겠지만--- 시화는 작은 어머님 댁에 있고, 미애는 극성에 업고 이렇게 쫓아왔지. 작은 어머님 댁은 평안하시더군. 작은 아버지는 전방 대대장으로 맹활약이고---
  급하니 여러 소리 않고 이만 쓸께요. 잘 있으니까 걱정은 말고--- 그럼 안녕.
11. 27. 김포에서 당신의 옥이가

  난 12월 3일에나 내려갈까 해요. 정기네 집에도 가서 놀고---
고국 편지 ('69. 11. 29)
여보! 당신에게
  밤이 깊은 서울의 밤입니다. 여긴 선희(처 사촌)네 안방, 아이들은 고이 잠들고, (나 혼자) 가만히 당신을 그리며 펜을 듭니다.
  두 아이들 데리고 남의 집을 다닐려니까 눈치도 봐야겠고, 불편하지만 온 김에 TV나 찾아가야지. 소식을 전 해 주던 주병장도 갔고--- 오늘 쯤은 (당신이 주병장을) 만나 소식을 들을 줄도 모르겠군요.
  여보! 그 동안 어떻게? 집엔 몇 통의 편지가 왔을 텐데--- 집을 떠날 때 (당신의) 편지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싫었지만---
  서울의 거리도 많이 변했지만, 지원이네(고종사촌 딸)도 큰 행길 건너 사글세에 셋방살이, 승권이(사촌)네는 산 집에 아이들만 데리고(살고), 작은 아버지는 운천 전방에 대대장으로 계시고, 작은어머님은 양 쪽 살림에 무척 바쁜 것 같군요. 오늘도 토요일이라고 (작은아버님 한테) 가셨군. 매주 찾아가는 쫓아 다니는 것 같군.
  여보! 난 갈 수도 없군. 당신한테--- 서울에 오니 비위에 거슬리는 것들도 많더군. 세상이 복잡하다 하지만 인정들은 너무 박해. 물론 잘 살아야 한다지만 너무 이기적이더군. 여보! 편지론 다 (말) 못하겠군. 옆에 있다면 마음껏 속삭이고싶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의 행동.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얕잡아 보는 것들, 왜 사람들이 그리 옹졸하고 이기주의인지 모르겠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것. 참 세상은 복잡한 것 같군. 내게는 상관없는 일들이지만 왜 서로 못 잡아먹어 야단들인가 한심할 때가 많더군.
  여보! 기분 나쁜 소리를 늘어놨군. 내가 어떠하다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 마. 빨리 버젓하게 집이라도 사서 행복하게 살자고--- 우리 아이들 키우며 남 당신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우리 귀여운 아이들이 있고, 당신만 (내) 옆에 오는 날에는 아무것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아.
  여보! 깊은 밤 당신에게 달려갑니다. 품으로--- 지난 날의 당신과의 체온을 느끼며, 올 날을 머리에 그리며, 기쁜 마음을 가슴에 안고 고이고이 기다려야지---
  여보! 보고싶어. 옆엔 두 새끼들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군. 당신의 사진을 펴 본다고 하지만 그것 가지곤 나도 모자라. 얼마나 (까맣게) 탔을까?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하고 상상하며 (당신을 만나면) 옆에서 당신을 즐겁게 해 주고 싶어.
  여보! 아마 당신도 지금쯤은 잠들어 있을 지도 모르겠군. 아니 (야간)작전? 집 소식은 주병장이 잘 이야기 했을 거에요.
  큰 도련님도 살아보겠다고 바등대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뻤답니다. 서울에 올라 와 영등포 우체국을 찾아갔더니 배달 나가고 없고, 기다렸다 (만나) 보니 검은 체신 양복에 검은 모자, 큰 가방을 옆에 걸고--- 살아보겠다는 그 모습이 측은하기도 했지만 대견스러웠답니다. 언젠가는 (잘) 살아 볼 날이 있겠지 하고--- 사랑이 있고, 건강이 있고, 용기가 있으면 잘 살아 행복한 날이 오겠지---
  여보! 주병장한테 곶감 2뭉치(20개), 호두, 마늘, 고추가루, 김, 편지 한 통이 갔는데--- 옥인 무엇을 보낼까 하고 생각다 보낸 것도 없이 허둥됐군. 당신이 잘 먹는 사고, 고추장 등 생각이 났지만 남의 손에 (짐이 돼서) 부탁도 못하겠고 또 준비도 못했지만. 미안---
  여보! 밤도 깊으니 이만 옥이도 자야겠군. 다음에 또 쓸게요. 그럼 안녕---
사랑하는 당신의 옥이가 11. 29. 밤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