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0 신 )
옥이 당신에게
  또 바쁜 일들이 생겨서 며칠 펜을 들지 못했어. 여보! 그간 안녕?
  지난 7월 초에 내가 선정해서 땀 흘리며 만든 고보이 평야의 한가운데 있는 베이스에 오늘 또 오게 되었군. 나도 그렇고, 중대원들도 만 4개월 전에 개척했던 베이스에 다시 오게 되니 감개무량한가 봐.
  임무는 전 번처럼 3년 만에 버리고 떠난 옛집을 찾아 드는 이곳 주민들의 입주를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고, 한 가지 더 늘어 이 곳 월남 지방군을 우리 맹호들처럼 잘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거야.
  첫째 임무는 전처럼 하면 되겠지만 둘째 임무는 퍽 곤란한 점이 많아. 훌륭한 전투기술을 많이 가르쳐 주고 싶지만 말이 통해야지. 그저 손짓 발짓 다 써서 의사를 전달하려니 그럴 수 밖에. 하기는 통역병이 있지만 말 안 통하고 벙어리 노릇 하기란 참 답답하군.
  어떤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월남군의 전투력 강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이 느껴져. 언젠가는 월남전쟁은 월남인 자신들이 맡아야 항 때가 올 테니까. 시대의 조류가 그것을 예언하고 멀지 않았다고 얘기 하잖아?
  여보! 십일월도 중순에 접어드니 지금쯤은 추수가 끝났을려나? 몸에 베이지 않은 농촌의 가을을 맞아 골몰하고, 피곤할 당신이 애처롭게만 영상이 떠 올라 괴롭군. 꾀 날씨가 쌀쌀 할 텐데 아이들 뒷바라지는 어떻게 잘 하는지. 당신이기에 크게 걱정되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고 부모님들도 추수에 너무 무리하시어 몸살이나 나지 않았는지 걱정이야.
  난 여전히 건강히 잘 있어. 우기라서 별로 더운 줄 모르고 식욕은 왕성해. 남들은 1년이 다 돼 가면 C-레이션이 진력이 난다는데 난 꿀맛이야. 여보! 이게 모두 당신이 걱정 해 주는 덕분이겠지?
  지난 번 서울에 있는 중대원 편에 보낸 편지는 받았는지 모르겠다. 66신 말야. 그 녀석 정영이는 잘 만났는지 모르겠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오늘 마침 의성군에 사는 중대 서무계가 휴가를 가면서 집에 다녀오겠다는 걸 상관의 일로 인해서 1분이 아까운 시간을 박탈하는 것이 난 제일 싫어. 하기 때문에 그만 두라고 했어. 그 편에 인사계가 비누와 과자 좀 보냈나 봐. 당신한테 소포로 부치라고, 그리고 내가 쓰던 라디오 1대도 보냈어. 소포로 잘 들어갈 지 모르겠다. 36$ 짜리인데. 여기는 방송 난청 지대라서 별로 잘 나오는 줄 모르겠군. 지난 번 그러니까 2년 전인가? (광주 마륵리에서) 도둑 맞은 라디오 대신으로 생각해. 받거든 즉시 알려 줘. 통신기관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말야.
  여보! 이제 월남 생활도 또 중대장도 고참이 됐지? 호기심과 약간의 공포심을 안고 당신을 떠나던 때가 그저께 같은데 열 달이 다 돼 가니--- 어떻게 생각하면 무척 긴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당신이 안타깝게 보구 싶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컸나 하고 생각 해 볼 때는---
  여보! 당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군. 여보!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해 봐. 이러다가 귀국하면 혹시 공처가(?)나 되지 않을래나. 농담이야. 여보! 공처가건 애처가건 그런 게 어딨어. 여보! 당신이 말 했잖어. 언제까지나 손을 놓지 말고 꼭 잡고 끌어달라고, 그리고 난 단단히 꼭 잡고 매달리라고 그러면 언제까지나 당신과 난 사랑의 동아줄에 매어져 있겠지? 그리고 나는 당신 하나만을 아는 바보(?)로서 한 생을 다 할 수 있겠지. 현명한 바보로서--- 여보!---
  여보! 아이들 보구싶다. 만나면 부끄러워 안기지도 못 할 시화--- 말 배운다고 재롱 떨며 아저씨(?)라고나 부르지 않을까 걱정되는 미애--- 다 내 새끼들이니까 그럴까
  여보 이만 쓰고 눈감고 당신을 생각 할련다. 아이들도. 그럼 안녕
월남에서 너희들이 보고파 영 씀

◆ 그 때 이야기 한 토막
  파월 한국군이 과거 월남 주민들이 퇴거했던 마을, 그러니까 피난가기전 고향마을에 돌아가 다시 입주하는 것을 지원하는 ‘평정작전’과 월남 지방군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사격 등 교육, 훈련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주월 사령부에서도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그 진행사항을 주시하고, 참모 방문을 통하여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도, 감독케 하였다.
  우리 중대는 이 때 푸캇군인 고보이에 나가 있으면서 입주한 주민들을 보호하는 한편 1개 소대씩 안녕군에 보내서 그 곳의 지방군 PF(소대 규모), RF(중대 규모)에 대한 주로 사격훈련을 지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주월사 작전참모가 직접 현장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있어 중대장도 아침 일찍부터 PF 사격훈련장에 나가 주월사 작전참모의 내방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정시간 오전 10시가 2시간이나 지난 12시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무전으로 사단 상황실에 문의 해도 거기서도 모른다고 하였다. 얼마 후 연락이 오기를 주월사 작전참모가 탄 경비행기가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더니 또 얼마 후에는 맹호사단 사령부 인근 산에 추락하여 탑승한 전원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주월사 작전참모는 원래 다낭의 청룡부대에 참모방문 하도록 조 편성이 되었는데 준장 진급심사 발표에 승진자에 포함되자 맹호사단장에게 인사도 할 겸(당시 군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윤필용소장 사단장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당시 월남 말로 짜옹 좀 할려고 한 것 같다) 군수참모인가 누구와 방문 부대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를 태운 경비행기가 맹호사단 비행장에 거의 도착할 즈음 갑자기 먹구름이 덮쳐 비행기가 이를 피하려다가 산에 충돌했다는 것이다.
  진급심사에서 승진됐지만 별도 한 번 달아보지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이 짤막한 한 토막 이야기는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좋은 일 있다고 그렇게 분별없이 좋아 할 것도, 슬픈 일 있다고 그렇게 슬퍼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 해 주고 있다.
고국 편지 ('69. 12. 4)
여보! 당신에게
  2일 전부터 쌀쌀한 날씨는 아직 춥지만 아랫목 이불 속에 있느니 추운 줄은 모르겠습니다.
  여보! 계절의 감각이 없다는 그곳의 더위 속에 당신의 건강은 어떤지요. 잦은 작전들, 여보! 어떻게?
  시화, 미애, 나 이렇게 셋이서 승권이(사촌) 집에서 아직 있답니다. 12月 3日 어제 (시골) 집에 갈 예정이었는데 작은 어머니가 숙부한테 가서 안 오셨으니 갈 수가 없군. 오늘은 온다니까 내일이나 모레나 가야지. 언젠가는 우리도 (작은 어머니와 같은) 이런 생활이 있을 꺼라는 생각이 남의 일 같지가 않군요. 토요일이면 꼭 가시는데 아이들이 휴일을 부모와 같이 못 지내니까 짜증을 내고 “엄마는 아빠 밖에 모른다”고 질투 아닌 질투--- 영자(오랫동안 숙모 집에 있던 식모아이)도 진해 있을 때 도망가고 지금은 없군요. 소식도 모르게--- 여자는 남편이 같이 안 있으면 집엔 안정이 없는 것 같군. 여기 숙모 집을 봐서도--- 여보! 옥이도 마찬가지이지만-
  옆에서 미애가 울며 짜증을 내며 기어드는군. 가끔 시화와 싸움도 하고, 똑 같이 빵을 사 주면 큰 놈(시화)은 빨리 먹고 미애 것을 뺏어가고, (미애는) 뺏기면 울고 야단이군.
  여보! 우리 두 아이들은 누구보다 건강해요. 엄마의 힘을 덜어주는 셈이지. 당신이 옆에 있으면 아이들이 더 명랑하고, 재미있고, 행복할 텐데--- (당신이 돌아오는) 그 날을 기다리며 건강히 지내야지.
  여보! 당신의 편지를 못 받으니 서울에 와도 별로 좋은 줄은 모르겠군. 집을 나오면 고생이지 뭐.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니 더하겠지. 여보! 빨리 우리도 이곳(서울)에 작은 집이나마 우리 식구가 행복하게 살 집을 만들자고.
  여보! 밤마다 그려보는 얼굴이지만 옆에서 보는 것만 못하겠지. 돈이 없더라도 서로가 아끼고 사랑해 주면 그게 행복이지. 여보! 우린 돈 많이 없다 해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자고. 언젠가 살다 보면 돈도 생기겠지. 우리 두 귀여운 아들 딸 모두가 건강만 하면 행복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보! 12월이 4일오 접어들었군. 날자를 안 친다고 다짐하다가도 자꾸만 달력을 보게 되는군. 아이들 북새통에 어디에서 가만히 펜(을) 들 사이도 없었군.
  여보! 주병장으로부터 중대장님(에게) 편지가 너무 멀게 오는 것 같다고 (말을) 하던데. 여보! 미안해.사랑이 적어서 그런 것도 아니니까--- 아마 너무 사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왜냐구? 당신을 생각하고 생각하다 병이라도 날까 봐 좀 고단했지만---여보! 옥인 항상,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이런 이야기는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날에도 항상 그럴 것이니까.
  여보! 두 새끼들이 책상에 올라 앉아 차놀이 한다고 야단이군. 어젠 눈이 날리니까 “우리 아빠 인제 오겠다” 하고 방에서 뛰고 야단이군. 내가 시화한테 거짓말을 했나 봐. 이제 따뜻하면 온다고 해야지 기다리지 않게-
  여보! 그 동안 당신이 얼마나, 어떻게 변했나 보고싶군. 아직 서울에 왔지만 정기(박용원대위 아들) 엄마한테 못 찾아갔군. 아이들과 춥고 해서--- (시골집에) 가기 전에 한 번 가봐야 될텐데---
  여보! 그럼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당신의 옥이가. 서울에서

  그리고 주병장이 지원소대 -화기소대-로 옮겼으면 하고 은근히 생각하는 모양이던데요. 연장근무 할 시에 말이에요. 당신이 생각해서 할 테지만 이런 생각을 하더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