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1 신 )
옥이 당신에게
  무인고도에 떨어진 것만 같은 고독을 느끼게 되는군. 최초 시작하던 때와는 달리 주민들의 열성이 식어진 것만 같은 인상이 보이기 때문인가 봐. 완전 폐허에 사람이 살 집이 들어서고 생기가 돋아 날 것을 머리 속에 생각하던 처음과는 달리 4개월이 지나 다시 온 여긴 집들이 겨우 지붕만 마련되고 그 속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꾸미기에는 아직도 요원한데 힘 써 일하는 것을 볼 수가 없으니 말야.
  이러한 상태에서 별 보람을 못 찾는데 우울한 심사가 생기는가 봐. 그러나 내게는 부여된 임무이기에 오늘은 이 곳에 있는 지방군 중대의 교육을 마치고 다음 지역으로 떠나야지. 그러나 일부의 병력을 남겨 두고---
  여보! 그간 안녕?
  그저께는 전에 말 한 것처럼 중대 여러 부하들과 더불어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식에 참가하였지. 병사들이야 그들의 피와 땀으로 무공을 세웠지만 내가 뭐 잘 한 게 있나? 다만 훌륭한 부하들을 두었기에 대과 없이 좋은 전투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겠나.
  여보! 군인의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사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수없이 들어 왔지. 물론 이 한 개의 훈장을 위해서 싸워 온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전투에서 잘 했다는 표지로 나라가 인정하는 것 아니겠어.
  여보! 국가 원수를 대리해서 사단장님께서 왼쪽 가슴에 달아 줄 때는 기쁨과 함께 지난 6개월간 희생된 부하들의 얼굴이 떠 올랐어.(김후기, 박문수, 유재두)
화랑무공훈장(왼쪽)과 월남 은성훈장(오른쪽)
화랑무공훈장증
  여보! 요사이 당신 편지가 너무 오지 않는다? 바쁘기 때문인가. 기지에서 떠나 있으니까 전달이 잘 안 돼서인가.
  십일월도 꼭 반을 지났으니까 늦가을이 되겠군. 통 실감이 나질 않아. 우기의 한 중간에 들어와서 날씨는 꽤 시원하지만 언제 비가 쏟아질 지 늘 하늘이 불안 해.
  여보! 추수는 어떻게 됐나? 하기는 눈이 오고 아랫목에 들어 앉을 때까지 일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농촌이지만 조금 나아졌나 해서(물어보는거야).
  여보! 아이들 잘 놀지? 시화, 미애가 어떻게 노는지 곁에서 보고싶다. 물론 당신은 말 할 것도 없고. 아직 넉 달 남짓 있어야 된다고. 계산 해 보면 아주 까마득한 것 같애. 이제 중대장 하겠다고 온 동기생(황원탁 대위를 말함)을 생각하면 난 노장에 속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의 주역들이 자꾸 바뀌는 것 같군. 하기는 넉 달쯤 지나면 나도 이 전쟁에서 물러 서겠지만--- 윗사람을 보나 부하들을 보나 자꾸 변하는 것은 사실이야.
  부모님들은 어떻게 지내시나? 그리고 당신도 참여해서 봄부터 해 온 농사의 결과는?
  여보! 보고싶단 말은 앵무새처럼 뇌이면서 펜을 놔야겠다. 다음 임무를 위해서 마음이 바쁘니까.
  그럼 안녕.
월남 고보이 들판에서 당신의 영 씀
고국 편지 ('69. 12. 8)
여보! 당신에게
  피곤한 몸으로 5일 군용차(경부선 11열차, 군용 칸이 연결된 부산행 야간 완행열차, 서울행은 12열차)로 김천에 새벽에 내렸고, 6일 집에 들어왔답니다. 좀 피곤한 여행이었지만 지금은 한가히 방에서 지냅니다.
  6일 김천에 와 있는데 아버님이 나오셨더군요. 당신이 보낸 라디오와 비누 한 박스, 과자 약간 등 자동차 화물로 의성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 집에 없는 새 물표가 등기로 와서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돌려 보냈는데 며칠 있다가 다시 부쳐서 또 왔더래요. 그래서 옥이한테 온 편지를 읽어보고 당신이 보낸 것인 줄 알고 받았다나요. 잘 왔으니 다행입니다.
  여보! 당신의 안녕은? 집에 오니 다섯장의 편지가 기다려 반가우면서도 미안하군. 아이들과 시달리며 다니느라고 서울에서 두 통의 편지 밖에 못 부쳤는데--- 이제 열심히 쓸게.
  서울 복잡한 집에서 아이들과 있을려니 고통이었지. 이제 우리 집이 생기기 전에 아이들 데리고 서울에 안 가기로 생각했고, 테레비는 찾으러 갔더니 10일 늦게 찾아가라나. 제대별로 찾는가 본데 아직 우리 차례가 안 돌아왔다고 해요.12月 15日 날 오면 꼭 내준다고 해서 도련님한테 찾으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찾아도 집에 못 갔다 놓겠어요. (부피가) 커서. 우리 쓰던 찬장보다 약간 작을까 싶은데 잘 포장해 부치면 되겠지만 집에서 사용할 것도 아니고. 약수동 언니(김종헌대위 누님) 집에 갔다 놓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엔 다 편하니까 걱정마세요. 우체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길게 못쓰겠고요. 시화, 미애도 잘 놀아요. 서울에서 며칠 있었더니 살결이 아주 곱고 예뻐졌군.
  여보! 늦었지만 그칠게. 그럼 안녕.
당신의 옥이가 12. 8
고국 편지 (?)

(앞, 뒷 장이 분실되고, 가운데 한 장만 남았다. 내용을 봐서 여기에 삽입했다.)

  (앞 장 분실)---(숙모님이 더 있다 가라) 하는데 아이들 데리고 오래 못 있겠고, TV는 (쌤풀을 보니) 너무 커서 못 가지고 오겠기에 큰 도련님 보고 찾아서 약수동 영옥이(김종헌 대위 생질녀)네 집에 좀 보관하던지 지원이(처 고종사촌 딸)네 집에 갔다 두던지 하라고 했어요.
  옥인 5일 밤 군용차로 다음날 6일 새벽에 김천에 왔고, 그날 아버님이 당신이 보낸 radio와 비누, 과자 등을 자동차 화물로 부쳤기에 찾으러 오셨다가 나하고 같이 집에 들어 오셨어요.
  여보! Radio가 좋더군. 전기로도 되고, 집에 듣던 것으로 듣고 (이것은) 가만히 보관했다가 당신이 오면 살 곳에 가서 켜야지. 서울 동남전기회사(TV메이커)에서 (TV)물표로 자기네가 그 자리에서 65천원에 살 테니 팔래나--- 그러고 보니 배의 이익은 본 셈이군. 장사꾼은 아니지만 앞으론 돈으로 보내지 말고 인편에 물건들을 보내면 하는 욕심이 들지만 당신의 마음에 부담이 된다면 할 수 없겠지. 당신이 알아서 할 테지만--- (동기생 중에도 주월사에서 국산 TV티켙 담당으로 근무 하면서 뒤로 빼돌려 엄청난 돈을 벌어서 월남에서 귀국한 후 동기생 중에서는 갑부라는 소문이 떠도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용도 샀다고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데 많이 샀다고 하시는 군. 돈이 많이 든다고 그러실 테지.
  그리고 주병장이 귀대 해 (내가 보낸) 물건들은 잘 받았는지요. 김 백장 한 톳, 호도, 곶감, 마늘, 고추가루--무엇을 보내면 좋을가 생각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신통한 것들이---
(뒷 장 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