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2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짓궂게 내리는 빗소리는 어쩐지 마음을 우울하게 해 주는군. 비 때문이 아니겠지. 고보이 들판에 1개 소대, 또 어디에 1개 소대 남겨 두고 부랴부랴 돌아 왔지만 두고 온 부하들이 걱정이 되는군. 하기는 (그들이) 어린 양 새끼가 아닌 바에야 하나의 기우일는지 모르지만.
  어머님이 안질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다니시고, 아버님이 농사 일에 너무 무리하셔 더 빨리 노쇠하시는 것 같다니. 여보! 당신에게 너무 큰 부담을 맡기고 있는 것 같애. 미안해 여보!
  또 한 가지 미리 예측은 했고 바라지도 안 했지만 금년도 진급심사에 (우리 동기가) 특별 케이스로 들었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난) 예상대로 안 됐군. 그래도 어째 좀 섭섭하고 맘이 좋지 않는 건 인간들이라서겠지?
  여보! 당신에게 기쁜 소식은 주지 못할 망정 좋지도 않는 소식을 줘서 미안--- 그렇지만 쓰야지.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가 아닌 것 같애. 그것도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여보! 시화가 할머니 따라서 김천에 갔다고? 짜-식, 많이 컸구나. 엄마 떨어져 할머니 따라 갔다니 말야. 여보! 곤색 나이론 즈봉에 빨간 쉐타를 입고 머리는 제비 꼬리처럼 잡아매고 병아리처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미애가 보고싶다. 아니 아빠 팔에 안고 과자도 사 주고, 종알거리며 부르는 노래도 듣고 싶다.
  여보! 내 건강은 여전히 이상 없어. 별별 임무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만 건강은 계속 좋아.
  여보! 당신이 농촌 생활에 너무 진력이 나지 않나 모르겠다? 손이 험하도록 일을 하고, 그것도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여보! 미안. 추수는 35석쯤 된다고? 일 손이 모자라는 속에서 많이 했다. 여보! 거기엔 아버님, 어머님의 피땀이 맺힌 결실이 아니겠나. 그리고 서투른 당신의 고생이 들어있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들으니 다소 쉽게 녹용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나야 정글 뚫고 V.C 잡느라고 그런 것 알아 봤나. 한 번 알아서 준비 해 볼게. 구할 수 있을 꺼야. 아버님이 그렇게 노쇠해 지신다니 자식 된 도리로서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군. 빨리 편안하게 모셔야 할 텐데---
  이원 어머님이 이사를 했다고? 그저께쯤 했겠네. 여보! 내게는 눈 앞에 뵈는 백 수 십 명의 부하를 지휘하는데도 힘이 겨워 -그렇게 능력이 없으니까 진급에도 누락 됐지만- 그런데 하물며 수 만리 떨어져 한 마디 (안부를) 주고 받는데 한 달이 걸리는 당신을 내가 어떻게 지휘하나? 당신의 휴가를 내가 허락해 주고 말고 할게 어딨어. 부모님들과 상의 해서 하면 되잖아. 그건 당신 맘대로 해. 다만 어딜 가든지 당신도 아이들도 건강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말야.
  서울 있는 녀석 휴가 가는 편에 TV구매권과 과자 한 상자 그리고 비누 한 상자 보냈는데 어떻게 정영이를 만나 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한테 부치는 편지도 보냈는데 아직 못 받아 봤나 봐. 그 녀석도 아직 안 돌아 왔으니. 곧 돌아오면 알 수 있겠지.
  12일 날 출발한 녀석한테-경북 의성- 역시 과자 한 상자와 라디오 1대를 보냈다고 지난 편지에 썼는데 그 편지 못 받아 봤을까 봐 다시 한 번 알려주는 거야. TV구매권은 12월 2일부터 1월 1일 사이에 찾도록 돼 있으니까 시기를 놓지면 곤란 할 꺼야.
  여보! 이원 어머님이 덕조네 살던 집을 샀다면 덕조네는 어디로 가고? 딴 데로 이사 갔나? 고속도로도 난 지우대로 가시지 않고 거기에 또 그대로 계실려나부지?
  여보! 진급에 대해 상심하지 말어. 이번 경우는 밑져야 본전이니까.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군대생활의 전부도 아니니까.
  여보! 난 전쟁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어. 그래서 내 부하의 피를 많이 아꼈는 지도 몰라. 난 지금 맘으로 좀 서운하다는 정도의 기분이지 아무렇지도 않아. 끝까지 착실히 근무하고 갈게.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당신과 나와 또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럼 안녕.
월남에서 너희들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69. 12. 13)
여보! 당신에게
  하얀 눈이 깔리고 쌀쌀한 겨울날 아랫목으로 손발이 모여듭니다. 반대로 (그곳에는) 더위와 비, 아마 이런 추위를 그리워 할 때도 많겠지요.
  크리스마스라고 차츰 떠들어 대는군. 여보! 일주일 넘었는데 소식이 없군. 안 보내는 것은 아닐 테지. 어디 쑤셔 박혔다 한꺼번에 오겠지. 어제도 기다렸고, 그 전날도 또 그 전날도 집에 와서 일요일 빼놓고는 다 기다렸는데--- 배달부가 오기 전에는 오늘은 오겠지 하고 기대에 눈이 빠져라 하고 기다리지만 그냥 지나갈 때 맥이 풀리는 기분---여보! 이렇게 오래 살다가 정신병자라도 될까 걱정이군. 여보! 오늘도 토요일인데 기다려 봐야지.
  부모님께선 안녕하셔요. 시화, 미애도 잘 놀고, 시화는 제법 많이 컸어요. 서울에 갔을 때 (모두) 많이 컸다고 하더군. 미애도 제법 말도 잘하고 깍쟁이, 아마 서울 같은데서 키운다면 아주 독깍쟁이가 될 것 같아.
  여보! 아이들이 보고싶지? 우린 당신이 편지가 없을 땐 더 펜이 들고 싶군. 속에 애타는 것을 적어 보냄으로 후련히 떨어보자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안되고 당신 편지를 받아야 안심이 되지.
  당신이 보낸 라디오, 비누 한 박스, 과자 약간 등 의성 군인으로부터 화물편으로 부쳤는데 잘 찾았고 그리고 서울로 부친 TV 물표, 비누, 과자 등도--- TV는 15일 큰도련님이 찾기로 했어요. 2일 날 내가 갔었는데 아직 못 찾는다고 15일 날 오라고 날자를 물표에 정해 주면서 그 날 꼭 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너무 커서 집에 가지고 오지 못하겠고 당신이 오면 어디에 살지는 몰라도 우선 약수동 언니 집에나 지원네 집에나 맡기라고 했어요.
  숙모네는 방학 때 숙부한테 간다고 벼르고 있더군요. 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 곳에 가니 마구 때는 따뜻한 방에 군것질, 모두가 좋은가 봐요. 대대장인데 안 그렇겠어요.
  이원 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잘 계신다고요. 이사도 했고, 덕조네는 인천으로 이사갔다나요. 고향엔 토지도 비싸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와야 할 형편들이라나요. 고속도로에 들어가고 농사 지을 땅들이 얼마 없다나 봐요. 지우대 우리 밭도 팔아 소를 샀다고 하던데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설에나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젠 방도 넓겠구먼요.
  여보! 넉 달쯤 있으면 당신을 만나게 되나? 얼마나 좋은 지 몰라 가까워 온다는 것이---만나는 날을 혼자 생각으로 그리며 지납니다. 어떻게 변했고,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그러나 아직 넉 달.
  여보! 진급이야기가 나왔더니 안되었다고--- 사람이 하는 짓이니 잘못도 있겠지. 안될 사람 되고, 될 사람이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기계가 하는 일이라면 당신쯤은 안 빠졌을 텐데. 그러나 언젠가 그들보다 더 낫게 될 지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여보! 그렇지만 풀이 죽어 용기는 잃지 않겠지?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 앞으로 그들보다 더 낫게 된다는 약속인지도 모를 테니까.
  서울에 가 보니 작은 어머니네는 그런대로 잘 들 지내더군요. 그렇지만 지원이네가 올해는 고비를 넘기는 모양. 방도 사글세였고, 직장을 잘못 옮겨 수입도 아주 약하게 받는 모양인데 새 학기만 되면 옮긴다고 하더군. 그렇지만 겉으로는 보다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던데--- 3번째 아이가 곧 나올 정도이더군요. 꼭 고구마통가리 같이 해 가지고 있군.
  여보! 우리도 당신이 오면 서울에 가 살도록 하지. 왜냐구? 너무 촌으로만 다닌 것 같아서 말이에요.
  여보! 오늘도 편지를 기다리며 이만 쓸게요. 여보! 빨리 세월이 흘러야지. 보고싶단 말은 빼놓을 수가 없는 말. 옆에서 시화가 볼펜으로 무엇을 그리느라고 열심이군. 이 편지 속에 넣어 보낼까.
  여보! 그럼 안녕.
당신의 옥이가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