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3 신 )
미애엄마에게
  여보! 먼저 쓴 편지가 나중에 들어오는 건 어디 잘 못 된 데가 있나 봐.
  타작이 끝나고 보리갈이만 좀 남았다는 것이 보름 전의 얘기니 지금쯤은 모두 끝나고 겨울살이 걱정과 김장이 한창이겠군. 아직은 이를까?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하겠다? 세숫물도 더운물 생각이 나겠고--- 달력을 보며 이렇게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볼 뿐 춥다는 것이 도대체 실감이 나야지.
  하기는 여기도 더웁진 않아. 하루도 몇 번 비가 오고 하기 때문에--- 하지만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속 내의를 껴 입고 하는 것은 통 실감이 나지 않는군.
  여보! 그건 그렇고 어쨌던 당신이 장하구려. 지난 여름도 용케 났지만 가을 또한 여름만 못 지 않게 힘 들 텐데 하고 은근히 걱정했는데 그럭저럭 무사히 건강에 지장 없이 끝냈으니 장하지 뭐야.
  그렇지만 여보! 너무 안심하지 말어.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당신이나 아이들이 감기나 걸리면--- 감기는 겨울철에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데---
  지금쯤 나무에 달려 서리 맞은 감이 홍시보다 더 맛있지? 시화 미애가 (감을) 잘 먹는다니 아빠도 먹고싶다. 월남의 과일은 틀렸어. 시큼하고 향긋한 사과, 단물이 입 안에 짝 붙는 배 등등 한국은 참 살기 좋은 곳인데. 적어도 월남에 비하면--- (월남은) 모든 것이 텁텁하고 미지근 한 것이 이제 실증이 난다.
  미애가 말 붙여 보겠다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한다니 곁에서 못 보고 재롱 피울 때 다 지나가는 것 같애 초조해 진다. 아이들이 꼴이 말이 아니라니? 햇볕에 끄을고 흙을 묻혀서 말인가? 그건 괜찮어. 튼튼하면 돼. 그런 건 커가면서 잘 가꾸면 타고난 인물은 나오게 돼 있으니까.
  월남군 중대장과 매복을 같이 서면서 (가족) 사진을 보였더니 시화는 나를, 미애는 당신을 닮았데. 그리고 당신은 굉장한 미인이라고 하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지.
  시화가 아빠를 많이 기다린다고? 효자로군. 얼굴이나 기억할까? 이 담에 ‘군인아저씨’라고 할까 봐 걱정인데. 무슨 선물을 사다 줘야 하지. 오래 오래 자지고 좋아할 걸 사다 줘야 할텐데.
  대구 남실이네가 착실히 잘 해서 번창한다니 참 좋은 소식이야. 어떻게 남실이가 잘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통 편지 할 줄 모르는군. 아마 창군기념작전(맹호사단 작전) 끝나고 보낸 편지를 받았던 모양이지? 수염 얘기를 썼던가 봐.
  바쁘게 하루를 두고도 일변하는 상황은 편지로서는 이미 구시대의 얘기로만 느껴지는군. 그 이후로도 조그마한 작전 두 개를 끝내고 월남 지방군 훈련차 나갔다가 1개 소대에 맡기고 들어오래서 들어 왔으니.
  여보! 곶감 깎느라고 고생이 많았나 봐. 팔이 저리도록 했으니--- 여보! 수정과의 원료가 곧 그렇게 힘들여 만들어 진다는 건 옛날은 잘 몰랐지? 여보! 당신의 손으로 깎은 꽂감이 당신이 담근 수정과를 맛보는 때가 우리가 만나는 날이 겠지?
  사회에 너무 뒤떨어진다고 퍽 걱정인데 나도 마찬가지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너무 밝은 것도 괴로운 게 많으니까. 모르고 사는 게 맘 편할 때도 많아.
  참 모친이 병원에 다니신댔는데 좀 어떠신가? 어떻게 양쪽 어머님이 모두 그렇게 안질이 나쁘시니--- 당신 말하던 아버님의 보약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애. 구하는 대로 마땅한 휴가 가는 중대원 편에 보낼게. 올 겨울에 쉬시면서 복용하도록 해 봐. 여보! 한 생을 고생만 하신 부모님들이 건강이나 오래 오래 보존하셔야지.
  정영이가 그래도 기특하다. 퍽 걱정했는데--- 군에서 또 그 후로도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젠 잘 할 꺼야.
  여보! 추수를 무사히 끝 낸 장한 당신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난 잘 있을게. 또 빨리 날자가 가서 이 긴 기다림이 다 끝나야 될 텐데 너무 느린 것 같애. 앞으로 넉 달 남짓---
  자- 오늘은 이만 쓸래. 요즈음은 특별한 작전이 없이 진지를 보강하여 내 안전을 강화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