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6 신 )
(제74, 75신은 번호가 누락되었음)
옥이 당신에게
  휴가 갔다 돌아 온 중대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국에는 이미 첫눈이 내렸고, 살어름이 얼었다는데 남쪽인 고향에도 그럴까? 여보! 날씨가 꽤 쌀쌀하겠어. 처음 추위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해야지.
  약 보름 전에 발송한 당신 편지에 가을 일이 거의 끝나고 했다니 지금쯤 겨울살이 준비에 바쁘겠다. 김장이랑 솜이불이랑---
  여보! 부모님들과 아이들 그리고 당신도 잘 있다니 반가운 일--- 나도 잘 있어. 요사이는 조용하지만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진급예정자 발표 후 맘이 좀 섭섭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봐. 시간이 흐르면 괜찮겠지.
  어젠 사단에서 있을 행사를 경계하는 작전을 우리가 맡아 작전 회의차 사단에 갔다가 박대위(박용원)가 부친 별세로 휴가 중이더군. 가까이 와 있으면서도 내 앞이 바쁘다 보니까 그것도 모르고 지냈군.
  이번에 진급 예정자 중에서 당신이 알만한 사람은 박용원 대위가 됐고, 정태진 대위, 차흥렬, 김정훈, 이명주, 김규병, 김재희 대위 등이 되었군. 그 외 문영대, 고재만, 김종헌 등은 나하고 또 한번 동기생이 되겠어.
  보병학교 학생연대 작전과에 있을 때 과장으로 있던 이익신 소령이 지금 월남에 왔더군. 그 땐 불평도 많이 하고 했는데 만나니까 무척 반갑고, (그이도) 반가워 하더군.
  휴가 갔다 온 중대원들이 가급적이면 겨울에 귀국하지 말라고 권하는군. 가는 길로 바로 감기에 걸려서 혼났나 봐. 그래서 내년 4월에 귀국할 결심을 더 한 번 굳혔어.
  당신이 말하던 아버님 보약으로 녹용을 구했어. 질이 좋고 나쁜 건 알 수가 없고, 한 뿌리 60$ 정도 줬는데 이 다음 제대로 귀국하는 사람 편이 좋겠지. 그리고 11월분 수당은 당신에게는 하나도 부치지 못하니까 그렇게 알어. 저금 넣는데 지장이 없을지 모르겠다?
  녹용은 비싼 건지 싼 건지 모르겠어. 꽤 많으니까 아버님과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도 한 번 복용 해 봐. 한약국에 가서 같이 넣는 약들을 잘 알아서 사다가 넣어야 할 꺼야.
  여보! 내 편지는 당신이 받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군. 점심 하느라고 불을 때고 있을 때--- 하긴 그럴 수 밖엔 없지. 우체부 아저씨가 십리 길을 아침 먹고 걸어 와야 되니까.
  여보! 꽂감 깎는데 그렇게 힘들었나? 농촌의 일이 힘 안 드는 일이 있나. 도시 사람들은 농촌에서 나오는 물건들이 그저 흙 속에서 그냥 나오는 것 같이 알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고--- 내년에 먹을 수정과 맛은 더욱더 좋겠다. 당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거니까.
  여보! 시화, 미애 어떻게 지내나? 날이 쌀쌀하다고 아주 이불 뒤집어쓰고 나오지 않겠군. 하루 종일 방에서 분탕 치며 당신을 애 먹이겠군. 아직은 그렇지는 않겠지만---
  여보! 나도 그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은 미련은 커녕 오히려 즐거운 일이지. 지나간 카렌다 장을 보면 많이 넘어 갔는데 남은 날자를 세어보면 아득한 것 같애. 11월도 하순이니까 4개월 남짓 있으면 끝나겠지.
  여보! 당신이 내 편지를 기다리 듯이 나도 꼭 같애. 똑 같이 잘 있다고 적혀 올 줄 알면서도, 또 보고싶다는 말이 들어 있을 줄 알면서도 그래도 받고 싶으니---
  휴가 간 중대원 편에 부친 편지를 아직 못 받았나? 정영이한테서도 편지가 없고? TV구매권과 과자 BOX에 대한 소식이 없어 궁금하군.
  여보! 초겨울부터 조심해야 해. 너무 무리해서 안 하던 농사일을 했기 때문에 겨울에 그 여파가 올는 지 몰라. 그리고 아이들도 잘 하고---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69. 12. 9)
여보! 당신에게
  여행에 피로했던지 한 이틀간은 잠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겠군. 원체 초저녁 잠도 많지만--- 초저녁에 미애 재운다고 좀 잤고, 이제 11사가 좀 넘었는데 당신을 생각하며 들어 누웠다가 잠은 안 오고 이렇게 그리워 펜을 듭니다.
  여보! 어떻게?
  시간이 안 간다고 했더니 (시골) 집에 들어 온지 1년이 가까워 옵니다. 이렇게 (시간이) 가는 건 또 당신을 빨리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되겠고---
  여보! 눈을 감고 가만히 당신을 생각한다 해도 옆에서 당신을 보는 것만 못 해. 그래도 꾹 참고 기다릴 수 밖에--- 오는 날의 반가움, 그 벅찬 기쁨을 상상하면 아마 옥이가 태어나서 최대의 기쁨이 될 걸 생각하니 그 시간이 안타까이 기다려 져.
  여보! 보고싶어. 꼭 안기고 싶고, 기다려야지 그 날을---
  옆에서 시화가 깨어 가지고 젖을 만지며 누워 있고, 미애는 자느라고 세상 모르는군. 잘 놀아요. 건강히 당신이 늘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을 하느님께서도 알으시나 봐.
  여보! 당신이 보낸 물건들 주병장 편에 보낸 테레비 물표, 비누 1박스, 과자 한 박스, 우편으로 비누와 과자는 잘 받았고, TV는 서울에 갈 때 옥이가 찾으려던 것이 12月 15일 날 오면 꼭 준다고 했어요.
  오늘은 이원에서 편지가 왓군요. 이사도 했고, 잘 있다고요. 종권이도 이원중하교에 합격했다고---
  여기 부모님께서도 평안하시고 아가씨 혼사말이 오가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 중에 있군요. 신랑감은 김천에 있는데 원 집은 김천에서 약 10리쯤 떨어져 있는데 있고 김천에서 이발사 직공으로 잇는데 착실하다고 하는데 아직 선은 안 봤지만 아마 차녀가 좋은가 봐요. 좋겠지. 경제상으로 망설이는 셈이지요. 큰도련님은 포기하고--- 집에서도 장가는 아직 안 가겠다고---
  여보! 이런 말을 한다고 (당신이) 화낼까? 당신이 오고 하는 날에 우리도 집을 장만 해야지. 이번 기회가 좋으니 50만원 적금액과 그리고 경리단에서 찾을 돔과 그리고 일부 전세금 놓을 생각하고 또 적금이 끝나고 연속 적금에 가입하면 전액을 융자 해 준다나--- 그래서 약 백만원 짜리라도 (집을) 장만 해 보자는 생각이지. 혹 집에 혼사는 땅을 팔아서 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보! 복잡한 이야기들만 늘어 놓았나 보다. 글씨가 엉망이군.
  여보! 밤도 깊었고 이만 쓸게요 내일은 당신 편지도 오겠지. 76신을 받았는데 74, 5신은 도창기 안 됐군.
  여보! 이 밤도 안녕--- 보고싶어--- 꼭 안기고 싶어---
당신의 옥이가 12. 29. 밤 12: 30
고국 편지 ('69. 12. 16)
여보! 당신에게
  몇 날을 기다렸는데도 소식 없어 궁금했더니 어젠 갑자기 석희 아가씨의 기쁜 소식에 오늘은 마음이 후련합니다.
  석희 아가씨도 문경 군인을 보고 반가웠지만 어떻게 하다가 묻고 싶은 것도 못 물어 봤대나. 어쨌던 당신이 잘 있다니--- 문경에 온 휴가병이 (석희) 학교를 찾아와 용 2개 -큰 것 한 개, 좀 작은 것 한 개- 를 가져 왔더라고요. 당신의 간단한 편지와--- 갑자기 휴가 특명을 받고 왔다더라고요.
  집엔 다 편해요. 아버님은 용을 보시고 난생 처음 본다면서 굉장히 많다고 하시는군. 이것이 진짜가 이렇게 많겠느냐 면서 집안 식구들이 기이하게 봤습니다. 우선 아버님 해 드리고, 또 다른 사람도 좀 먹고, 남겼다가 당신도 좀 먹어야지.
  여보! 어떻게 그것을 구했을까 상상으로 생각해 봅니다. 아버님 병환이 중해서 구하라고 한 것은 아니니까 안심해요. 그 곳엔 구하기가 쉽다고 하기에 말 한 것이니까.
  오늘은 아버님은 대덕 고모부 회갑이라고 가셨고, 집엔 아이들과 한가히 지냅니다. 계집애 같이 생긴 미애가 재롱을 부리고, 튼튼한 시화는 오늘 석희 아가씨 따라 김천에 막 갔어요. 졸업반이라 시험도 끝낫고 이제 논대나--- 적금하러 내가 나가면 데리고 와야지. 말성 부릴 땐 얄밉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떼어 놓으니 모정인지 마음이 이상한데---
  그리고 작은 아가씨 혼사 말 있던 데가 알고 보니 별로 좋지도 않아 포기하고 내년에나 했으면 좋겠군.
  여보! 그리고 다음 달부턴 국내 봉급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1월분 봉급이 나오면 그것으로 (적금을) 넣어야겠는데 좀 모자랄 것 같은데 그 곳에서 좀 부쳐야 될 것 같애.
  그리고 물건을 사실 때 가정 살림에 필요한 것으로 사도록 해요. 이런 것 좋다던데--- 전기 토스트굽는 것, 전기후라이펜 같은 것. 전쟁을 하는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한다고 화낼까?
  이 해도 보름만 있으면 다 가는데 조금도 섭섭함이란 없어. 미련도--- 빨리 가기만--- 4월이 오기만--- 일년이란 세월이 너무 긴 것 같아. 가만히 당신을 그린다 해도 신통치가 않아.
  여보! 보고싶단 말 밖에--- 여보---!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이 오가는데 옥인 무엇을 보내야 될까? 별로 신통한 것이 없는 것 같군. 많기야 많겠지만 당신한테 보낼 것 말이야. 가만히 집에 들어 박혀 있으니까 발이 꼭 묶인 것 같군. 다른 선물은 못해도 편지나 열심히 쓸게. 아이들 잘 보고---
  여보! 그럼 안녕.
당신의 옥이가.
  문경 휴가병 주소도 안 물어 봐 혹 전할 것도 못 전하겠군. 12. 16
고국 편지 ('69. 12. 17)
여보! 당신에게
  오늘은 흐린 날씨에 가끔 눈이 날리는 어설픈 날씨, 어제는 따뜻했는데--- 기다리던 편지도 없고, 못 붙인다고 하던 돈만 왔군요. 여보! 돈도 좋지만 당신의 편지만 못한가 봐. 배달부가 왔다 가니까 서운하기만 하니--- 여보! 궁금해. 100$ -30,870원-이 왔군. 못 붙인다고 해서 그리 알고 있었는데---
  여보! 지난 밤에도 가만히 누워 생각하니 당신이 올 날을 생각하면 그 기쁨을 어떻게 하랴, 가슴에 혼자 붕- 뜬 기분, 눈을 떴다 감았다 했군. 이제 간 날 보다 올 날이 가까워 온다니 기뻐. 그래도 4개월은 있어야지.
  미애가 재롱을 피우고 노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꼭- 안아주며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아빠가 오면 우리 미애 아빠가 꼭- 안아주고 예뻐한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예뻐하지.
  여보! 당신이 우리 시화 미애를 안고 좋아 할 날을 생각하니 마냥 좋기만 하군.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라고 보낼 선물이 있어야지.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이 안 난다. 무엇이 제일 좋아할까 하고 말이에요.
  여보! 혹 못 보내더라도 섭섭해 하지마. 마음은 무엇이든지 보내고 싶은데. 여보! 내 선물은 편지면 돼.
  밖에서 까치가 울고 있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당신 편지나 오늘은 꼭 왔으면 좋겠다.
  여보! 미애가 ‘학교 종이’ 노래를 부른다고 중얼거리는군. 얄밉게---
  문경 군인이 성의학교로 찾아 와 용을 가지고 왔더라고 석희 아가씨가 다녀갔습니다. 당신이 잘 있다는 소식이지만 집에선 신기하게 ‘이것이 용이구나’ 하고 신기하게 보았습니다. 먼저 아버님부터 해 드리고 아이들도, 그리고 남겨 당신도 먹도록 해야지. 굉장히 많더군요. 아버님은 너무 많이 샀다고 걱정--- 여하튼 걱정도 많으셔. 남으면 뒀다가 필요 시에 먹으면 될텐데.
  여보! 서울에 갔을 때 정기(박용원대위 아들)엄마한테 못 들렸군. 아이들과 다니기가 나빠서--- 다음에 편지나 한다고 하면서 그냥 내려왔더니 박대위님(박용원대위)이 귀국했다고? 그러고 보니 한 번 가 볼걸 하고 후회가 되는데. 다 지난 일이고.
  여보! 돌아오기 전 3개월과 가서 3개월만 잘 있으면 무사히 끝나는 것이라고 하던데 남은 3, 4개월이지만 끝까지 조심해요.
  여보! 미애가 옆에서 연필 달라고 울며 야단이군. 또 바로 쓸게.
  그럼 안녕. 여보---!
당신의 옥이가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