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7 신 )
옥이 당신에게
  밖은 바람이 꽤 심하군. 바람이 한국의 북풍처럼 차다면 여기도 한국의 겨울에 못 지 않겠어. 아무리 여름만의 나라라지만 비오면서 바람부니 꽤 쌀쌀 해.
  그저께부터 사단장 이취임식 경계를 위한 작전으로 나갔다가 무사히 끝내고 돌아 왔는데 엊저녁은 흠뻑 비 맞은 데다가 바람이 쳐서 어찌나 추워 오그리고 개인 천막 속에서 자느라고 오늘 하루 종일 허리와 가슴이 결리는구먼. 내일이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오그리고 자는데도 꿈은 많이 꿨지. 당신도 보고, 미애도 보고 그리고 시화도 나타났고--- 맘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꿈에도 나타나는 모양이지?
  여보! 날씨가 꽤 쌀쌀하지? 바쁜 가을 일은 거의 끝났겠지만 그런대로 항상 일거리가 있게 마련이니까 --- 한 겨울 지내자면 꽤 힘 들 거야.
  어머님이 병원에 다니신댔는데 어떻게 치료를 하고 들어오셨는가? 경과는 어 때? 아버님은 평안 하신가 궁금하군. 이른 봄부터 무리하게 농사일에 골몰하시다가 가을 일이 끝나면 자칫하면 몸살을 하기 쉬운데.
  전번 편지에도 말했지만 녹용 한 뿌리를 구해 놨는데 다음 제대에 가는 인편으로 월곡 이수암 병장이 갈 것 같은데 그 편에 꼭 보낼게. 겨울 동안 쉬시면서 잘 복용하시도록 해 봐. 많을 것 같으니까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도 복용 해 봐. 이수암 병장이 (귀국제대 편성에) 또 누락되면 다른 사람 편에 부쳐서 소포로 부치도록 하지. 다음 제대는 12월 14일에 월남을 출발하니 12월 말경이나 집에 도착하겠군.
  서울 정영이한테서 아무런 편지 없나? TV 건과 과자 좀 보낸 것이 지금쯤 당신에게 들어 갔을 것도 같은데. 휴가 간 중대원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궁금하군. 두 번째 간 녀석 편에 보낸 과자와 라디오도 아직 못 받았나? 소포로 부친댔는데---
  여보! 정말 당신이 시화, 미애 자랑을 하니까 보고싶다. 얼마나 더 컸고, 또 귀엽고 예뻐졌을까 말야. 전에 보내 온 사진 두 장과 올 때 가져 온 사진을 기초로 상상만 해 보지만 잘 생각이 안 나는군. (미애가) 말 배운다고 중얼거린다니 전에 시화가 컸던 때를 더듬어 보고 이뻐고 재롱 피울 때 다 지나가는가 싶어 초조해 지는군.
  여보! 나도 그 정도지만 당신도 웬만치 지루한가 봐. 그리고 누구 눈치를 보나? 여보! 오늘의 괴로움이 있으면 내일의 복된 날이 있겠지. 아니, 여보! 오늘의 괴로움을 보상 할 수 있도록 당신과 내가 합심해서 아기자기하고 행복된 내일을 만들어야지. 여보! 그렇지?
  여보! 풋나물이 먹고싶다. 김장한 배추 속을 호호 불면서 밥 먹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 당신이 말 했듯이 (내가) 토끼띠라 그런지 풋것을 잘 먹잖아. (광주) 마륵리에서 눈 속에서 뜯어왔다던 배추 무친 것,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5중대장-육사 20기 생(이현부 대위)-이 사이공 외출 갔다가 김정훈 대위를 만났다더군. 얼굴이 좋고 안부 묻더라는군. 이 다음 나도 갈 차례가 있을 테니 그때쯤 만나겠지.
  박용원 대위가 지난 번에 말 한 것처럼 부친상을 입어 본국에 휴가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이번에 며칠간 (사단) 사령부 근방에 있으면서도 못 만나보니까 퍽 쓸쓸해. 그래도 동기생이 제일인데--- 사령부에 마치 하나 남은 그 친구 마저 없으니 누굴 찾아 보고싶은 생각도 없이 탁대위(간부후보 출신 탁제업 대위) 한테 침실을 하루 저녁 신세 졌지. 육사 22기생들 구대장 할 때 중대장 하던 분 말야.
  11월도 며칠 안 남았으니 앞으로 넉 달, 꾹 참고 열심히 하고 갈게. 너무 초조해 하면 더 시간도 안 가는 것 같으니까 당신도 맘 푹 놓고 있는 게 더 빨리 날자가 갈 꺼야.
  여보! 오늘은 이만 쓰야겠다. 아이들 노는 모양을 좀 자세하게 알려 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면서 영 씀

  사진은 훈장을 탄 중대원들과 같이 기념 촬영 한 거야
중대 수상자 일동
뒷줄 왼쪽부터: 1소대장(정일랑중위?), 3소대선임하사. FO (박함수중위?), 중대장(나, 이성영대위), 2소대장(김세중 중위?), FO무전병(?), 나머지는 직책과 이름을 모르겠음
고국 편지 ('69. 12. 19)
여보! 당신에게
  목마르게 기다리던 편지 77신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사진과 함께--- 여보! 당신이 마른 것 같군. 사진이 잘못되었다면 다행이지만---
  소식마다 당신이 훌륭히 임무를 수행한다는 찬사에 옥인 얼마나 좋은지. 용기와 희망에 부푼 셈이지.
  어젠 수당을 찾고 김천에 가서 적금도 했군요.9번째까지 메워 나갔고, 아직 6번이 남았지만 빨리 갈테지.
  여보! 적금 같은 것 때문에 오래 있진 말아요. 여보! 그렇지 않으리라 믿지만 혹시나 해서요.
  유촌 갔다 김천을 가서 당일 올려니 시간이 많지 않아 당신한테 선물이 하고싶었는데 별 것은 아니지만--- 김이나 하고 오징어를 좀 사서 부치라고 석희 아가씨한테 부탁하고 왔는데--- 내 손으로 싸서 부치지 못하니 어딘지 미안스럽군. 여보! 서운해 하지마. 미안.
  박대위(박용원 대위)님한테 카드 대용 카렌다가 예쁘기에 한 개 부치려고 합니다.
  김치가 먹고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귀국하면 맛있게 해 줄께요. 여보---! 부르고 싶을 뿐이야. 보고싶기 때문이겠지.
  미애, 시화는 밖으로 나갔군. 잘 놀아요. 미애는 말도 제법 배울려고 하고, 시화도 개구쟁이지만 잘 놀아요. 어제 당신 사진을 보고 아빠라고 좋아서 야단이에요. 아빠 올 날을 얼마나 기다린다고---
  고생이 많을 당신을 저녁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날자 세기가 일수인 것 같군. 이 해도 며칠 안 남았나 봐요. 그러나 내게는 (해가 가는 것이) 미련도 서운함도 없어. 빨리 가기만 바랄 뿐---
  여보! 오는 날까지 몸조심 해요. 여보! 그럼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당신의 옥이가 12. 19
고국 편지 ('69. 12. 21)
(편지의 첫 장은 분실하였음)

  일년의 못다한 사랑 주고 받고, 그리웠던 당신의 품에 안기어 행복해 할 옥일 생각하니 마냥 즐겁기만 해. 여보!---
  그리고 두 새끼들이 아빠를 만나는 즐거움. 당신이 예뻐 안아주고, 업어주고, 뽀뽀해 줄 당신의 모습들, 아이들의 즐거움---
  여보---! 입 속으로 자꾸만 불러보고 싶어. 9일 밤만 자면 이 해도 다 가는군.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해니까 빨리 가야지.
  아직 잠은 안 오는데 (더) 쓴다 해도 보고싶다는 말 밖에 없고, 이만 가만히 누워 당신을 생각하며 잠이나 청할레요.
  여보---! 참, 돈 이야기인데요 1월분 봉급이 나오게 될 테니까 다음엔 (수당을) 안 부쳐도 될 꺼에요. 이번 달-11월분-에는 수당이 안 올 줄 알고 있는 돈으로 넣을려고 했는데 (12월분 수당은) 부치지 말고 사고싶은 것이 없으면 잘 간수했다가 가지고 오세요. 가지고 와 옥이 오바 같은 것이나 좀 해 주고---
  여보! 보고싶은 것만 생각하다 돈 이야기 같은 건 빼 놓았군. 그럼 여보! 안녕.
한밤에 당신을 보고싶어 하며 당신의 옥이가 12. 21. 밤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