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8 신 )
여보!
  밖엔 바람이 꽤 세차게 부는군. 바람만 좀 차면 북풍이 몰아치는 고국의 겨울 같을 거야. 가지고 온 추리닝과 야전잠바를 아주 잘 써 먹고 있으니까.
  여보! 그간 안녕? 시화도 미애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난 잘 있어. 별로 쓸 얘기도 없이 펜을 들었어. 보고싶다는 말 외에는 말야. 그럴 수 밖에---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한 통씩 띄우고 당신 편지는 못 받았으니까.
  참, 송금 얘긴데 11월분 수당을 부치지 말랬더니 (서무) 계원의 착오로 당신 앞으로 100$이 부처졌다는구먼. 이왕 부친 거니까 하는 수 없지. 다음 달에 부치지 말고 빚져 있는 걸 갚으면 안되겠나. 그리고 당신 현재 지참한 금액이 얼마나 될까? 1월 중순경에는 내년도 1/4분기 본국 봉급이 나올 테니까. 12월부터 계속 부치지 않아도 당신이 하고 있는 적금에 지장이 없겠나? TV, 녹용 등으로 조금 빚 진 게 있고, 또 3월 중에는 사이공 (전투) 관광 외출도 있을 텐데. 시화가 손꼽아 기다리는 선물도 몇 가지 사야지? 그래도 중경단으로 매월 50$은 계속 송금해야 되는 모양이야.
  본국 봉급은 3개월 분 -1,2,3월- 이 한꺼번에 나오기 쉬울 거야. 귀국 제대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런지도 모르지만. 월 24,440원이 될 거야. 그리고 가족수당이 있을 거고. 그러면 웬만하면 되겠지?
  아직은 아득한 것 같지만 점점 다가올수록 걱정도 없진 않아. 한가지라도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해야 될 텐데 기회가 없군. 부모님들에게는 무엇을 선물할까. 시중에는 고국보다 물가가 훨씬 비싸. PX도 아주 닫혀 지다시피 됐고---
  여보! 사실 중대장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이거야. 모두가 1년을 고생하고 돌아 가면서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한가지씩 가져 갔으면 하는데 그것 마저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니--- 시중에서 산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 두는 게 낫고---
  나도 기회가 있으면 시화, 미애 장난감이나 한가지씩 사고 말아야겠다. 그건 두고 두고 약속한 거니까 실망은 주지 말아야지 부산서 옷감으로 부모님들에겐 한가지씩 사면 안 되겠나?
  여보!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즐겁군. 내게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할 때가 오고 있으니 말야. 당신도 그렇지? 그렇다고 맘의 긴장을 푼다든가 그렇진 않아. 부산에 도착해서 당신을 만나는 그 시각까지 적과 대적하고 있는 기분으로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어.
  오히려 추위에 당신과 아이들이나 건강에 조심해. 여보!--- 지금 (편지) 쓰는 도중에 사단 박대위(박용원) 한테서 전화가 왔었군. 이미 가니까 (부친) 장례식은 끝났고, 전에 있던 부대와 동기생들이 힘껏 도와줘서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는군. 한편 섭섭하지만 진급이라는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박대위가 소령 승진자 명단에 오른 것을 말함) 참 행운아인지도 몰라. 밤 늦게 전화까지 걸어주니 고맙지 뭐야. 그는 행운이 있을 뿐 잔재주를 부린 건 조금도 아니니까.
  여보! 내일 또 쓰기로 하고 이만 그칠래. 모래는 또 작전 한바탕 뛰게 되니 한 열흘 편지 쓴지 못할지 몰라. 기회 있는 데로 쓰겠지만.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서 영 씀
고국 편지 ('69. 12. 23)
보고싶은 여보! 당신에게
  X-mas 캐럴이 울려 퍼지는 것을 보니 이해도 얼마 남지 않았나 봐요. 여보! 그간 안녕?
  요사이 편지가 잘 안 오는 것 같군. 한달 전의 편지가 요사이 오니 말입니다. (편지가) 남의 간장을 그리 태우게 만드는군.
  여보! 당신이 잘 있다면 별문제 아니지만. X-mas 캐럴이 울리고, 밤은 조용히 흐르는데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그리워 지는 건 당신 뿐이군. 이해가 간다는 아쉬움은 없고--- 여보! 보고싶단 말 밖엔---
  조용히 누워 당신을 그리는 것이 내겐 제일 좋은 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 괴로운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군. 옆엔 시화, 미애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군.
  낮엔 시화는 뒤 언덕(흑구디)에서 차 가지고 흙장난에 바빴고, 미애는 재롱을 부리며 잘 노는군. 좀 싫어하는 눈치면 애교도 부리며 웃길려고 애를 쓰는 것이 웃음이 나와 죽겠군. 어쨌던 귀여워, 예쁘고. 다만 (저에게) 만족스럽게 잘 해 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당신이 오면 지금 보단 좀 더 좋게 해 줄 테다 (하고) 입 속으로 외치면서--- 여보! 아이들이 보고싶다고? 그럴 테지. 당신 새끼들이니까---
  오늘 낮엔 큰 도련님한테서 예쁜 달력들이 왔군. 달력을 내놓고 4월 달을 세며 자꾸 세어보기만 했군.
  여보! 당신이 보낸 과자, 비누, 라디오, 용, TV물표 등 모두 잘 받았어요. TV는 도련님 보고 찾으라 부탁하고 내려왔는데 12월 15일 날 찾으로 오라고 하던데 아직 소식이 없군. 곧 소식이 올 테지.
  아버님도 안녕하시고, 어머님은 눈 아프던 것이 이젠 많이 나았고, 절대로 안심시키기 위한 변명이라 생각 지 말고 믿어줘요. 안심해요.
  잠은 안 오지만 가만히 생각해도 보고싶다는 말 밖엔 별로 없군. 지금 미애가 깨어 오줌 누이고 옆에 누워 젖 만지려고 애를 쓰는군. 곧 잠이 들겠지.
  곧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쓸게요. 여보! 그럼 안녕---
당신을 보고싶어 하는 당신의 옥이가 12. 23
고국 편지 ('69. 12. 30)
여보! 당신에게
  온 편지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당신을 그립니다. 여보! 78신을 받았어요. 귀국할 걱정을 한다고? 반가운 일, 내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지만--- 선물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은 하지 말아요.
  전 번 편지에 내가 당신(에게) 걱정을 더 하게 만들어 놓았나 봐. 전쟁터에 있는 당신한테 살림살이에 필요한 것 같은 것을 사라고 부담을 줬나 봐. 후방에서 그런 것만 밝히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말들을 늘어 놓았나 봐. 용서해요. 오는 날까지 건강히 잘 있다 오시는 것이 제일이니까.
  지금도 사진을 바라보고 당신의 양쪽 볼이 홀쪽 한 것 같아 더욱 더 빨리 세월이 가야겠다고 생각해. 여보! 또 작전을 나갔다고요. 지금쯤은 들어왔다가 또 나갔을지도 모를 작전들이군.
  여보! 무사하겠지? 몸에 맞지 않은 음식과 기후 그리고 위험한 전쟁터, 너무 고생이 많아요. 여보! 지금쯤은 아직 잠은 안 자겠지. 병사들 보호, 임무 때문에---
  지금 옆에는 세상 모르고 두 새끼들이 자고 있어요. 고모도 옆에 있고--- 옥인 낮에 닥나무(한지 원료)를 베꼈고, 저녁에 초저녁 잠을 좀 붙였고, 지금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며 펜을 듭니다.
  당신의 귀국 걱정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당신을 만나면 체면도 없을 것 같군.
  내게는 하루 종일 날자 확인하는 것이 마음의 일과인 것 같군.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하지만 내게는 별로 의미가 없고, 당신의 귀국 날자가 영광의 날이 될 거에요.
  여보! 선물 살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요. 시중에서 비싼 것 구테여 그 곳에서 살 필요는 없어요. 의류 같은 것, 부모님들의 옷감으로는 한국에도 싸고 좋은 것이 많으니까--- 아마 의류에선 (한국이) 월남에 뒤떨어지진 않았을 거에요.
  당신 말같이 시화가 기대하는 장난감이나 두 세가지 사요. 너무 많이 사지말고. 당신이 알아서 할테지만.
  여보! 귀국 말이 나오니까 더 보고싶다. 밖에는 함박눈이 뚝뚝 떨어지고, 음산한 날씨, 그래도 겨울 날씨 치곤 그리 춥지는 않은 날씨---
  여보! 당신 말같이 귀국해선 서울 근방에 있게 좀 해요. 그리고 혼사 문제는 이 해는 못 할 것 같고, 아직 좋은 곳도 없고, 내년으로 미루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이 12月 30日, 올해도 오늘과 내일로 Good-bye인가 봐. 내게는 미련도, 아쉬움도 없고 (그저) 빨리 가는 게 네게는 좋은 일. 라디오를 통해서 신정을 전후해서 눈이 많이 쌓이겠다는 소식이군. 올 겨울 들어 처음 많이 오게 될려는가 봐.
  여보! 고국의 눈을 그려 봐. 더울 땐 그리워지는 전경이겠지. 옥이도 눈, 하면 서울에서 (우리) 네 식구가 (미끄러져) 딩군 생각이 자꾸만 떠 오르니까 혼자 웃곤 하지. 작은 도령(무영이)도 방학해서 집에 왔고, 석희 아가씨는 부산에 친구한테 놀러 간데나---
  여보! 가만히 혼자 방에서 당신을 생각하며 쓰고 있는 거에요. 여보!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당신을 보고파 하는 당신의 옥이가 12. 30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당신과 소녀 같이 꼭 붙잡고 걷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