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79 신 )
옥이 당신에게
  한 동안 편지 못 받아 애타고 있을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오래 만에 펜을 들게 되는군. 우기철 추워서 오들 오들 떨면서 산 꼭대기에서 쓸 수가 있어야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백 수 십 명의 부하들이 아차 하는 순간에 누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전쟁터이기 때문에 편지를 쓸 만한 맘의 여유가 없지.
  짓굳게 담배만 태워대고, 무전기에 매달려 있으면서 입술이 터고, 수염만 길어가고, 고작 매복 준비가 완료 됐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겨우 자리에 -그것도 판초우의로 긴급 가설한 천막- 들면서 남몰래 당신과 아이들 사진을 꺼내보는 정도니까.
  춥다는 말이 나오니까 당신이 의아하겠지? 정말 열대지방이 이렇게 추운 줄은 미처 몰랐지. 비 맞아 갈아 입을 것 없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되어 얄팍한 홋이불 하나 덮고 누었으면 몸에서 나는 훈기에 두 세시간 잠이 들까.
  아무튼 이번 작전도 꾀 힘들었지. 한 열흘 산사람이 되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건재하여 당신에게 펜을 드니 당신과 함께 고국에서 걱정 해 주는 때문이 아니겠나. 그 동안 세 통의 편지를 받고도 이 한 장에 답장을 쓰는 거야. 11월 12일, 11월 18일 그리고 서울서 써서 주병장 편에 부친 것 합해서 3장 말야.
  우선 당신이 보내 준 호두, 곶감, 김, 고추가루, 마늘, 모두 잘 받았어. 받으면서 옛날 중고등학교 때 자취 할 때 어머니가 싸 주던 것이 생각 나는군. 중대원 한 사람에게 호두 두 알, 김 한 장 밖에 안 돌아 가지만 고국에서 멀리 바다 건너 온 물건이요 우리에게는 그래도 입에 맞는 거라서 그런지 모두 고향을 생각하게 되나 봐. 여보! 고마워. 그걸 보내겠다고 추운 날씨에 아이들 데리고 서울까지 올라 온 당신을 그려 보며 내가 큰 죄를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병장이 무어라고 중대장 PR을 했는지 모르지만 전쟁터에서 상관은 부하를 믿고, 부하는 상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전쟁터의 생리가 아니겠어.
  난 부하를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건지 잘 몰라. 다만 마치 시화나 미애, 그리고 당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뒤를 돌봐주고 애로 되는 점을 힘을 모아 타개하며 상급 지휘관에게 반영해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 밖엔 없어. 남보다 더 똑똑한 중대장도 못되고, 누가 특별히 뒤를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 내가 아냐? 멀리 외로운 곳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 뿐이야.
  과자를 받았는 모양이지? 별 맛도 없을 텐데. 시화, 미애가 아주 아우성이라고? 주병장 말고 그 뒤에 휴가 간 서무계 편에 라디오 1대 하고 함께 과자와 비누를 같은 박스에 넣어 보낸 모양인데 그건 못 받았나?
  미애가 신경질인 모양이지? 그리고 버릇 없이 ‘때려 죽이라’고 대꾸를 하는 모양이지? 기집애두. 많이 컸나 봐. 정말 시화, 미애도 당신처럼 보구싶다. 시화가 눈이 오면 아빠가 온다고 기다린다니 참 안타깝군. 눈이 내리고, 꽃이 피면 온다고 다시 알려 줘. 혼자 너무 애타게 기다리지 않게 말야.
  여보! 서울에 가서 어떻게 지냈나? 그리고 TV는 찾았는지 모르겠다. 말 들으니까 제 때 잘 안 준다고도 하던데. 지원이(처 고종사촌 딸)네는 서울 시내에 있는 모양이지? 기수(처 고종사촌)네만 광주(지금의 성남)로 이사했나? 선희(처 사촌)네는 아빠만 (전방에) 보내놓고 모두 서울에 있는 모양이지? 전에 박희도 중령님한테 지금 삼촌(처삼촌)은 전방 대대장 하고 있다고는 들었지. 거기도 꽤 힘들 거야. 나도 귀국하면 어떤 보직을 받아야 할 지 궁리 중인데 별 뾰족한 생각이 안 나는군. 종헌이(김종헌 대위) 누나 댁은 못 찾아 봤지? 그 이웃으로 이사 했다고 그러던데---
  주병장을 아직 못 만났어. 돌아오자마자 작전지역에 있으면서 사격 선수로 차출해서 파견 보냈는데 2-3일 후면 돌아 올 거야.
  삼촌(처삼촌) 댁에 평안 하다니 다행이군. 한 달에 몇 번씩 삼촌에게 면회 가자면 숙모가 고생되겠다.
  눈이 하얗게 내린 시골 풍경과 눈 위에 빙판이 된 서울 거리가 떠오른다. 당신과 함께 네 식구가 미끄러져 굴렀던 게 벌써 작년 겨울이군. 여보! 이 겨울이 가고 벚꽃이 만개할 때쯤은 만날 것 아냐.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더 아름답고, 다정할 내일을 설계 해 놔.
  여보! 옛날 것과 모양은 다름 없지만 호두와 곶감에 당신의 노고와 손때가 묻은 것을 생각하니 더 맛있는 것 같애. 추수하느라고 피로한 몸을 또 감 깎느라고 졸리운 눈으로 들여 다 보고 있었던 것 아냐?
  작전 나가 못 쓴 편지를 대신해서 기지에 돌아와서는 더 열심히 쓸 것을 약속하면서 이만 펜을 놓겠어. 들고 있으면 끝이 없고, 벌써 새날의 한시가 넘었으니 웅크리고 자던 몸 쭉- 펴고 한 숨에 내일 아침까지 자야지. 여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영 씀
고국 편지 ('69. 12. 25)
여보! 당신에게
  지금은 0시가 가까운 시간, 초저녁 초벌잠을 잤지. 여보! 어젠 (당신의)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당신의 편지 79신을 받았답니다. 무사히 작전도 끝났다고---
  여보! 힘들었다고? 그럴 테지. 생사를 걸고 다니는 것인데. 당신의 사진을 꺼내 보며 비에 젖어 홀쪽해 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케롤이 울려 퍼지는 이 때 어제-24일- 저녁도 조용히, 크리스마스 이브도 지나간 당신의 그리움을 안고--- 여보! 또 그 동안 안녕?
  여긴 다 편해요. 아이들도 잘 놀고. 시화가 동생이라고 (미애) 손을 맞잡고 마실 갔다 오고, (둘이 함께 손잡고) 다닐 땐 먼데서 난 대견한 심정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며 당신을 그리워 하지. 지금 양 옆에서 고히 잠들었군.
  방학이 시작되어 꼬마 삼촌도 왔고, 석희 아가씨는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정든 학우들과 떨어져야 하는 아쉬움에 하루라도 더 놀고 싶은지 내일 온다나--- 그리고 대구 남서방네는 생남했다는 기쁜 소식. 집 짓고, 아들 낳고 행운이 찾아 들었군.
  어머님은 아버님 편지로 잘 알겠지만 병세가 호전되는 가운데 치료하고 많이 나았다는 소식. 걱정 말아요.
  옥이도 당신을 보고싶어 하며 건강히 잘 있으니까 우리집엔 당신만 빨리 오는 날엔 더욱더 생기 있는 가정이 되겠지.
  여보---! 소리치며 불러보고 싶다. 어젠 당신 편지 받고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며 당신 편지를 펴 들고 창작 편지를 시화에게 읽어 줬답니다.
  “시화가 말 잘 듣고 착한 아이 되면 아빠가 장난감, 기차, 비행기, 전차, 택시, 과자 많이 사다 줄게. 엄마 말 잘 듣고 있어야 된다. 미애하고 싸우지 말고 따뜻한 봄이 되어 꽃이 피면 아빠가 시화, 미애 선물 사다 줄게. 기다려라.” 이렇게 창작으로 읽어 줬더니 좋다고 자꾸만 읽으라고 야단이었답니다. 미애도 무엇을 아는지 옆에서 당신 편지만 뺏으려고 애를 쓰며, 주면 무엇을 읽는 시늉을 내곤 했어요.
  큰 도련님은 요사이 연말 카드, 연하장 등 우편물이 많아 매우 바쁘다고 합니다. TV는 찾기가 좀 늦었는데 24일 전화 걸어보고 오란다 고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지만 곧 찾는 데로 편지 하겠다고 합니다. 걱정 말아요. 곧 찾을 거에요. 부속품이 일본에서 늦게 도착되어 늦는다고 기간이 지나도 줄 테니까 걱정 말라더래요.
  이 해도 6일이 남았군. 빨리 요놈의 (달력) 한 장이 떨어져야 새 달력을 달지. 여보! 당신을 그리며 가만히 누워 잠을 청할까.
  여보! 보고싶어--- 그리움만 커 갑니다. 그럼 안녕. 사랑해 당신을 이 세상 끝까지---
당신이 사랑해 주는 옥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