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0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서울서 보낸 편지를 먼저 받고, 그 보다 먼저 쓴 것들이 들어오니 어쩐지 싱겁기는 하지만 반갑기는 매 일반이야.
  엊저녁에는 주병장이 돌아왔기에 자세한 얘기 꼬치 꼬치 캐물어 봤지. 미애와 당신은 봤어도 시화는 못 봤다면서 미애도 날 좀 닮았더라는구먼. 당신은 햇볕에 그을려 검은 편이고--그래도 건강들 하더라니까 편지만으로 맨 날 잘 있다고 하는 것 보담 시원하군.
  그래야지. 서로 마음으로 애타게 기다리고 보고파는 하지만 더 밝고 아기자기한 내일을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꾹 참고 기다려야지.
  여보! 여긴 요사이 바람이 심하고 더운 줄 모르겠다. 이런 상태가 내년 2월까지는 갈 것이고 보면 날씨 때문에 혼나는 건 다 된 것 같애. 다만 달라져 가는 월남 분위기 때문에 좀 바쁘군.
  주병장이 자세한 예기 했겠지만 위험하거나 그렇진 않아. 다만 그래도 전쟁터라고 전방, 후방이 없이 당할 수 있는 확률은 많다는 것 뿐이야. 신문에서 봤겠지만 가장 안전한 곳에 근무하는 사람도 비행기 추락으로 당하니까( 주월사 작전참모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것을 말 함)
  그런 것 보면 맹호 같은 부하 백 수십을 데리고 대리석기둥 같은 두 다리로 걷는 것이 가장 안전한 편이야.
  시화가 아빠를 그렇게 기다린다고? 얼굴도 잊어먹지 않았나 모르겠다. 장난감 사온다는 바람에 잊지 않고 기억 할는지 모르지. 약속한 거니까 사가야지. 뭘 사다 주면 가장 좋아할까. 당신 의견은?
  전 번 편지에도 말했지만 용은 사 놨는데 부치는 인편이 마땅치 않다. 월곡(시골집 이웃 마을) 이병장은 또 연기돼서 28제대로 귀국한다니 1월 중순께나 되어야 되고--- 그 땐 (우리) 중대 사람들도 많아. 하여튼 방법을 강구해 보고 안되면 그 때 (이병장 편으로) 보내는 수 밖에---
  시화, 미애가 초코렡을 좋아한다고? 여기서는 맛있는 줄 모르는데--- C-레이션 속에도 있는데 별로들 좋아하지 않아. 아이들이니까 입에 맞는 모양이지?
  그래 TV는 찾아왔나? 뒤로 미루면서 안주는 건 아냐? 그리고 정기네 집도 들렸고?
  참 바쁘게 돌아가는 판이라 시화 생일도 깜빡 잊었군. 아빠 노릇 못 하겠는데--- 내년부터 잘 할게. 당신이 시화를 낳느라고 고생하고 있을 때 난 서울 (출장) 갔었지? 그 날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서 원주로) 가면서 열차 속에서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 조그만 하지만 순산한 당신이 얼마나 장해 뵜는지 몰라. (원주 기독병원) 병원 산모실에 들어 설 때는 무사한 당신을 보고 마치 몇 년을 헤어졌다가 만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만 4년 전이군. 나이로는 여섯 살 곧 난 학부형이 되고, 당신은 학자모가 되겠어. 짜-식, 처음 지독하게 까다롭고 극성이더니 --- 잘 길러야지. 공부도 잘 할려나?
  어머님의 안질이 완쾌 됐다니 다행이야. 앞으로도 조심하셔야지 될 텐데. 왜 처녀(정희), 총각(정영)들은 혼사 말이 없나. 웬만하면 하나씩 해 나가야 할 텐데.
  가만 있거라, 석희가 졸업반이던가? 그 애는 어떻게 하지? 취직 시험을 치뤄 볼래나? 상급학교 진학하겠단 말은 없나?
  여보! 자꾸 여러 가지를 묻곤 하는 건 크게 걱정돼서 업무에 지장을 가져오지는 않아. 오히려 안 가는 시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느라고 그러는 거야.
  여보! 당신의 얼굴이 까맣다면서? 고생해서 그렇지? 겨울 동안 희어지겠지 뭐. 난 더 새까맣게 돼 있으니까. 당신이 좀 검어도 괜찮을 거야.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르지.
  밤이 너무 깊었나 보군. 이만 자야지.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69. 12. 28)
여보! 당신에게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추운 것 같군요. 겨울 들어 제일 추운 날씨 같아요.
  여보! 그간도 안녕?
  이 해가 다 가는가 봐요. 내게는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해니까 연말이란 기분은 하나도 없지만 라디오를 통한 연말의 감정을 조금 느낄 뿐---
  여보! 오늘 따라 우울한 마음으로 당신을 보고싶어 한답니다. 우리 두 새끼들 데리고 미애의 예쁜 재롱을 바라보며--- (미애가) 제 오빠(시화)를 조금이라도 누가 해칠까 봐 앙탈을 부리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와 죽겠군.
  시화는 엄마는 밥도 하지 말라고 엄마를 걱정해 주는 것이 아들을 둔 덕인가--- 두 새끼들 잘 노니까 다행입니다.
  내일은 할머니 제사날이군. 떡도 조금 해서 제사에도 쓰고, 먹기도 하고--- 펜을 들었지만 보고싶고 빨리 세월 가기만 기다린다고 밖에---
  내일은 (당신) 편지도 오겠지. 받은 지는 3일 밖에 안 되었지만--- (편지 쓰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틈 있는 대로 편지 해 줘요. 당신의 건강과 안전이 있는 편지가 제일이니까---
  혹 지금도 무서운 작전을 하고 있는지도--- 여보! 조심해요. 물론 당신이야 빈틈 없이 잘 하리라고 믿지만.
  여보! 보고싶단 말 밖엔 없군. 이만 쓰고 또 곧 쓸게.
  그럼 안녕.
당신이 사랑해주는 당신의 옥이가 12. 28.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