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1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안녕?
  오늘 아침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부쳤지. 요사인 바람이 심하니 더운 줄은 모르고 지내지만 크리스마스 기분이라고는 통 실감이 날 수가 없지. 날자도 아직 보름이 남았으니까.(편지 쓴 날자가 12월 10일쯤) 거기와 여기가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 만큼 시간적으로도 차이를 둬야지.(편지가 오가는 시간 보름-한 달을 말함)
  당신이 서울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못 들으니 몹시 궁금하군. 날씨는 꽤 추울 텐데 아이들은 둘이나 데리고 어떻게 하는지 걱정이군.
  라디오와 과자 박스를 보낸 중대원이 휴가로부터 돌아왔군. 아마 우편으로 부친 것이 주소에 번지가 잘못됐더라고 휴가 가서 있는 동안에 다시 돌아 왔더래. 그래서 다시 부쳤다고 물표를 가져 왔는데 여기 부치니 만약 물건이 안 오거든 조회를 해 봐. 12월 4일에 재차 부쳤으니까 지금쯤 들어 갔어야 할 텐데. 받거든 알려 줘. 라디오-트란지스타- 1대와 비누와 과자를 같은 Box에 넣은 것인데 잘 들어 가야 할 텐데--
  지난 번 보낸 거야 두 녀석(시화, 미애)이 서로 많이 먹겠다고 했으면 지금까지 (남아) 있겠나. 그렇게 좋아하는 걸. 잃어먹으면 곤란하지.
  또 오늘 갑자기 문경 있는 중대원이 휴가 가는 편에 지난 번에 아버님이 필요하다고 하던 용을 부쳤는데 군데 군데서 검사가 많더라니 걱정이군. 부피가 조그만 하니 무사히 가져 가겠지. 김천을 경유해서 간다 기에 김천에 내려서 석희를 만나 주고 가라고 그랬는데--- 석희 앞으로 바쁘게 쪽지 한 장만 썼지. 석희는 학교를 가르쳐주고 찾으라고 했고, 만약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 돼서 학교서 만날 수 없으면 평화동 2동 370-18 정기영 방으로 찾으라고 그랬는데--- 애들(석희, 무영)이 아직 거기 있나 모르겠다. 그것도 안되면 상자에 넣어서 당신 앞으로 부치랬지.
  찾거든 빨리 알려줘. 그리고 한약방에 가서 같이 넣는 약을 사다 넣어서 빨리 아버님께서 복용하시도록 하고, 남거든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도 좀 먹어 봐. 거기서 곤란한 점이 있으면 좀 남겨 뒀다가 나중에 먹어도 괜찮고---
  여보! 서울 구경한 감상이 어때? 거의 1년 만이 아냐? 좋아? 시화가 그렇게 서울 살기를 원한다면 서울에 자리를 잡도록 해 봐야지. 군대에서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 해 봐야지.
  문대위(문영대 대위)가 육본 인사참모부에 근무하게 됐다고 박대위(박용원대위)가 알려 주더군. 그 친구한테 자리 하나 마련 해 보라고 그러지.
  삼촌(처 삼촌)의 주소를 알고 있나? 편지라도 보내게 주소를 보내줘. 혼자 (전방에) 가 있으면 뒤늦게 고생하시겠군.
  시화가 아빠 올 날이 가까워 온다고 그렇게 기다린다니 더 빨리 가고싶다. 초급장교의 한 고비를 이왕 시작한 거니까 두 말 없도록 (전투중대장직을) 끝내고 가야지 돼잖아? 두 달 늦게 가는 거니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는 게 후회 없게 될 것 같애.
  여보! 당신도 시화, 미애도 얼굴도 잊을 것만 같은 불안이 생기는군. 너무 생각하니까 그런지도 몰라.
  여보! 이번 서울 가면서 이원에 들렸었나?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겨울철에--- 금년 농사는 잘 됐는지.
  김장 말이 나왔으니 중대원들이 곧 잘 갖담근 김장 얘기를 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는 걸 종종 볼 수 있어. 이 담에 돌아가면 원 없이 먹어야지. 그리고 뭐든지 잘 먹고--- 당신을 속 썩인 게 미안해---
  여보! 그럼 오늘은 이만 그칠래.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 영 씀
고국 편지 ('69. 12. 31)
여보! 보고싶은 당신에게
  어젠 할머니 제사날. 바쁘게 아침부터 지나가는데 밖에서 시화가 편지를 한 보따리 안고 오는군. 적어도 8장이 함께--- 당신의 편지 5장, 카드 1장, 시화, 미애 카드 1장, 연대장님으로부터 연하장 1매, 그 외에 또 신문, 고모편지, 국회의원의 연하장 1매 등 한 보따리 들고 와 "우체부가 다 우리 꺼래요" 하며 좋아서 들고 왔군.
  시화, 미애한테 보낸 카드를 제 것이라고 하니까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답니다. 자꾸만 읽어 달라고 하면서--- 자다가도 깨서 읽어달라고 야단이군. 읽어 주면 장난감, 선물, 창경원 이야기만 나오면 좋아서 선 웃음을 쳐가며 “아! 빨리 아빠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아쉬워하며--- 참 많이 보고싶은가 봐. 우리 못 지 않게---
  전 날 보단 어제 당신 편지로 기분 좋게 하루가 갔군. 제사라 해도 별달리 잘 한 건 없지만 떡하고 적(부침이) 붙이고 그렇지 뭐. 먹을 것도 없는 것이 힘은 들지.
  오늘 아버님과 어머님은 월곡 약방에 녹용 잡수신다고 약 사러 가셨군요. 처음 보는 녹용이라 중량도 잘 모르고 어떻게 먹어야 좋은 지도 모르고 질이 얼마나 좋은 지도 모르고--- 오늘 가셨으니 잘 알아 가지고 오실 테지. 하루 하루 밀다 보니 이렇게 늦었나 봐요.
  집안은 다 편해요. 당신 안심시키느라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옥이도 당신이 보고싶어서 그렇지 튼튼히 잘 있고, 아이들 역시 감기 해서 아직 욕보지 않고 잘 지내고요. 바람에 살결이 거칠어서 그렇지---
  미애는 지금 한 창 재롱덩이에요. 당신이 올 땐 더 할 거에요. 이제 말도 제법 부쳐가면서 하고, 노래도 한 구절씩 하는 것을 보면 하루가 심심하지 않아요. 시화가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보면--- 오뚜기 인형을 서울 삼촌한테서 얻어 가지고 아가라고 좋아서 수건으로 싸 가지고 다니고, 아주 혼자 잘 놉니다. 지금 큰방에서 고모하고 장난치며 노래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시화는 할머니 따라 월곡 갔고--- (어제 밤) 제사 지내고도 한 방에서 아이들 노는 것 보면서 한 바탕 웃음으로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확실히 한 가정의 희망과 웃음을 만들어 줘요. 그런 데서 생활의 실증 같은 것을 잊게 하는 보배인가 봐.
  한 보따리 편지를 받고 보니 부모님께 편지 한 장 있었더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미안했어요. 당신이 보낸 물건들, TV는 아직 못 찾았나 본데 서울서 찾으면 곧 편지 한다고 했는데 걱정 말란다고요. 늦을 지라도 잘 내준다고 하는데 찾게 될 테지. Radio, 과자, 비누 등, 녹용 다 잘 받았어요. 이미 먼저 편지로 잘 아실 줄 압니다.
  여보! 뜸직이 4월을 기다려야지. 당신의 품 속에 꼭 안길 날을--- 가슴이 벅차는 기쁨, 한가할 때 상상만 해도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 같아.
  여보! 보고싶어. 정말 당신 얼굴을 잊을까 봐 자주 보는 사진 가지고는 부족하군. 사진을 보내 달라고? 서울 가서 못 찍었고, 이원 갈 때나 찍을 사이가 있을까. 구정이 지나면 곧 이원에 가 있을까 생각하는데요.
  여보! 막상 팬을 들 땐 쓸 말들이 많았는데 (쓰기 시작하면) 어디로 갔는지. 여보! 여기 작은 달력을 하나 보내는데 4월을 기다리며 걸어 놓고 봐요. 당신의 빨간 카드, 정성 들여 보낸 카드가 얼마나 좋았는지. 당신의 마음을 담뿍 안은 편지 사연들, 옥인 정말 행복 해. 당신이 사랑 해 주는 한 ---
  이 해도 1시간만 남았어요. 지난 일년 회상 해 보면 난 한 일은 별로 없고, 온 한 해가 당신을 기다림 속에서--- 여보! 난 이 해가 (가는 것이) 조금도 서운하지 않아 시원하지.
  여보! 그간도 안녕?
  한꺼번에 보따리로 오더니 작전을 나가 못 쓰는가 봐. 전번 편지에 (작전을) 나간다고 했으니 그리 생각 해야지.
  연말이라는 생각도 없고, 그냥 밥 먹고 지나니 사는가 보다 그런 심정이지. 내겐 당신이 집에 도착하는 날이 새 해가 될 거고---
  여보! 작전은 무사히 끝나고 돌아 왔겠지? 이렇게 ‘안심’으로 물어 봐야지. 그 반대는 생각지도 말고---
  지금 양 옆에 두 새끼들이 가끔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답니다. 두 새끼들이 엄마 편을 들며 무엇이든지 엄마를 생각할 땐 자식을 가진 대견스런 마음도 없지 않아. 좀 가까운 데로 편을 들려고---
  요사이 미애는 하루 하루 재롱이 늘지요. ‘이’자도 쓴답니다. 그림 보고 흉내도 내면서, 집안 식구들 부르는 것도, 제법 말을 할 땐 얄밉군. 방문을 빨리 안 열어 주면 “아이! 추워라” 하고, 꾀도 쓰고, 소꿉놀이 한다고 병이니, 약숫갈 같은 것 가지고 다니는 것, 또 인형 기지고 수건으로 싸고 재우고, 책을 보자기에 싸면서 “학교 종이 땡땡 친다”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주 잘 놉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귀여워하시고---
  시화도 잘 놉니다. 그 놈은 좀 커서 그런지 떼도 부리고, 까불기도 잘 하고, 아주 개구장이--- 아빠가 온다면 제일 좋아 날뛰지요. “아! 빨리 꽃이 피지’ 이렇게 말이에요. 좀 날이 따뜻한 날은 “인제 따뜻한데 아빠 와?” 하고 묻기도 하고--- 여보! 빨리 100일이 지나야지. 약 100일만 있으면 올 테지. 넘으면 약간 넘을 테고---
  부모님 건강 하셔요. 어젠 월곡 약방에 가셔서 약도 썰고 지어 오셨는데 (질이) 좋다고 하더래요. 전부 3량 이라고 반만 지어 왔답니다. 어머님, 아버님 하고 내 것도 좀 하고--- 아이들은 뒀다가 나중에 먹일까 해요. 시화는 작년에 먹었으니까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다고 해요. 미애도 나중에 먹여야겠군요. 당신도 오면 먹고---
  대구 남서방네는 생남했고, 집 지어 들어갔대요. 또 세탁소를 차렸는데 아주 성업이래요. 운이 트였나 봐. 잘 사니까 다행입니다. 모두가 잘 살아야 할 텐데. 우리 역시---(남실이네가)지금부터 당신 부산으로 오면 부산 간다고 벼른다는데--- 남실이네 동서도 부산에 있으니 한 번 다녀오고. 빨리 그 날이 오기를---
  여보! 밤은 깊어 가. 이해도 곧 지나가는군. 여보! 보고싶어! 아주 많이. 당신의 얼굴을 그리며 누웠다가 펜을 들지요.
  그리고 이원은 새로 산 집으로 이사도 했고, 편하다고 어제 편지가 왔군요. 다행입니다. 음력 설에는 꼭 갈려고 하는데---
  여보! 이만 쓰고--- 당신을 보고싶어 그리며 잘래.
  여보! 안녕--- 자꾸만 불러 보고 싶다.
당신을 보고싶어 하는 당신의 옥이가 12. 31.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