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3 호 )

(연번이 없었는데 내용이 제84신 앞의 것이라 '제 83 호'이라 붙인다)
옥이 당신에게
  넓은 들판을 울려 퍼지는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를 들으며 마치 내가 한국의 초여름으로 착각이 드는군.
  어제 밤부터 오늘 하루 종일 내린 비는 막 파헤쳐 놓은 중대 기지를 엉망으로 만드는군. 내 방도 견디지 못 해 이렇게 피난을 해 오니 마치 당신과 함께 자주하던 이사 온 첫날밤 같은 기분이야
  여보! 그간 당신과 아이들 그리고 집안은 어떤지 한 일주일 소식 못 받으니 궁금하다 못해 이제는 화가 나는군. 물론 아이들 데리고 기차에 시달리면서 서울 가느라고 못 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되지만 그럴수록 궁금하군. 더구나 몇 가지 당신이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으니까 더 그렇단 말야.
  서무계 편에 보낸 과자와 라디오 그리고 당신이 서울 갔던 TV, 그리고 문경 있는 중대원 편에 보낸 용이 어떻게 당신 손에 잘 들어 갔는지 모라서 말야.
  카렌다의 마지막 장도 반이 넘어 지냈으니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온다고 그곳에서는 볼 만한 풍경들이 많을 텐데--- 하기는 벽촌 시골이야 그렇겠나 만---
  우기라서 그런지 햇빛을 통 못 보겠군. 비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데 중대원들이나 나나 얼굴이 상당히 표백 된 것 같애. 베이스를 다시 잘 만든다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 없군. 그렇지만 난 잘 있어. 요사이는 당신이 보내준 고추가루와 마늘로 입맛을 돋구며---
  내일부터 있을 조그마한 작전 때문에 어제 대대 회의가 있은 후 대대장 이하 중대장들이 편을 갈라 배드민튼 시합을 했는데 난 난생 처음으로 라켓을 쥐어 봤군. 꼴불견이었겠지만 파트너가 아주 잘 하는 8중대장이라 물론 일등은 했지. 이 다음 귀국할 때는 꼭 한 세트 사가지고 가서 아이들과 당신과 함께 칠 수 있게 해야겠어. 생각 데로 될는지 모르지만---
  여보! 거기는 겨울이랬지? 어떻게 지내나? 시골의 긴 겨울 밤을 별다른 오락도 없이 아이들과 싸우기가 일쑤인가? 시화, 미애가 추워서 밖엔 못 나가고 방안에서만 몹시 분탕을 치겠군.
  여보! 편지가 내일도 안 오면 작전 때문에 또 며칠간 힘들겠군. 영 답답해서 살 수가 있나.
  그저께는 김광현 중령으로부터 때 이른 카-드가 날아왔군.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 번 찾아 가보지 못하고--- 이제 조용한 틈 있으면 찾아 가봐야지.
  내일 쯤은 사단 사령부에서 박대위(박용원대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군.
  자--- 그럼 20일 넘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동안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보고파 하는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