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3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지금쯤은 편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기다려지는군. (그 때는 당신이) 아이들 데리고 서울 가느라고 쓰지 못했을 테니까 말야. 며칠 후면 서울 갔다가 잘 돌아 왔다는 편지가 와야 할 텐데. 퍽 궁금해 지는군.
  여보! 요사인 기지를 재정비 하느라고 무척 바뻐. 헐고, 짓고, 파고, 쌓고, 온통 야단이야. 잠시 조용히 앉아서 생각할 틈도 없지만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마치 당신과 함께 아이들 데리고 오붓이 살아갈 집을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어.
  하기는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나와 내 부하들이 (안전하게) 살 집이니까 이 같은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지.
  여보! 오늘 오후는 기관총 진지를 만드는 데서 내려오다가 돌에 걸려 그만 엎어졌지. 손바닥이 조금 벗어지고 했지만 아프다기 보다도 당신과 시화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구만. 광주에서 (당신이 미애를 업고) 시화 손을 잡고 집을 나설 때 시화가 잘 자빠졌잖아. 그래서 당신이 신경질을 내고 하던 일 말야.
  상처는 아무것도 아냐. 걱정할 것 없어. 당신에게까지 알리는 정도니까.
  이렇게 집을 헐고, 짓고 하면서도 며칠 후엔 또 조그마한 작전을 하는 모양인데 그 전에 당신 소식이 와야 할 텐데---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고 중대원들이 떠들썩 하는데 비행기가 납북되었다는군. 내 앞 일이 바쁘니까 관심을 기울일 틈도 없지만 국내에서는 상당히 시끄럽겠군. 하긴 시골에서 당신도 관심 밖일 테지?
  여보! 요사이 굉장히 춥지? 여기도 바람이 많고 항상 구름이 끼어 더운 줄 모르고 추리닝을 입고 자야 하니까.
  여보! 시화, 미애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하다. 둘이 자주 싸우나? 바깥 날씨가 차면 방안에서 아주 수선을 떨겠군 그래.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모양인데 역시 별 관심 없어. 시골에 있으니 당신도 그럴 테지. 작년에는 (광주에서) 동기생들 끼리 간소하게 놀았잖아.
  여보! 같이 온 장교들이 귀국할 때가 됐다고 사이공 관광 외출도 가곤 하는군. 난 이게 뭐야. 뒤늦게 연장근무까지 하면서 중대장 한다고--- 하는 수 없지. 그래도 늦게 시작한 거나마 잡은 김에 끝내고 가야 할 게 아냐.
  여보! 미안해. 내가 운이 좋고, 더 똑똑했더라면 이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당신을 너무 기다리게 하고, 고생시키는 것 같애. 여보! 이 담에 보상할게. 어떻게 하느냐고? 뭐 별 방법이 있겠나. 당신을 더 힘껏 꼭 껴안아주고, 전날처럼 속 상하는 일 없도록 하면 안 되겠나. 그리구 생선요리도 잘 먹고---
  여보! 시화가 만 네살이 지났는데 생일 때 사진 한 장도 안 찍어 줬나? 김천 나가는 길 있으면 한 장 찍어 줘. 이 담에 커서 가치가 있을 테니 말야.
  그리구 미애, 시화 데리고 한 장 찍어 보내 주구. 여름 것은 틀렸어. 사진이 잘 못 됐다고 당신이 변명했지만--- 여보! 이쁘게 한 장 찍어 보내라구. 얼굴 잊어 먹을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래. 영 생각이 잘 안 나는군. 특히 아이들은 무럭 무럭 자라는 게 많이 변했을 것 아냐. 당신 편지에 한 줄씩 적어 오는 것 가지고는 상상해 볼 수가 없군.
  (낮에 벗어진) 손바닥이 펜을 오래 쥐고 있지 못하게 하는군.
  자- 그럼 이만.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보고파 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