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4 신 )
여보! 사랑하는 옥이 당신에게
  조그마한 작전이지만 그래도 무사히 중대원을 이끌고 두 시간 동안 1번 도로를 따라 (걸어서) 오는 동안 줄곧 베이스에 돌아가면 당신의 편지가 와 있을 텐데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방을 들어서자 마자 컴컴한 빵카 속의 책상 위를 더듬어 봤지.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서울에서 나중에 부친 것과 고생은 했지만 무사히 시골에 돌아 왔다는 소식이 옥란이(처제)의 더듬거리는 편지와 함께 와 있군. 읽는 동안에 서울서 먼저 쓴 것이 오늘 도착했는 모양이지? 또 가져왔군.
  여보! 그긴 꽤 쌀쌀하지? 아이들 데리고 고생 많아. 추울 땐 부엌에 드나들기도 힘들지?
  여보! 당신 말대로 아이들이 튼튼하고, 서로들 잘 싸운다니 다행이지 뭐야. 그리고 당신도 목이 길어졌지만 잘 있다니 안심이야.
  물론 나도 잘 있어. 시화가 눈만 내리면 아빠를 찾고, 당신이 늘 생각해 주는 때문일거야. 또 젊음이란 보배 때문인지 아무데서나 아무런 일을 해도 끄떡 없어. 오히려 당신이 옆에 있을 때는 공연히 응석을 부리고 싶어서 그랬는지 피곤하고, 밥도 잘 안 먹고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
  비에 젖어 정글을 뚫고, 조그만 판초우의에 의지해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도 다음 할 일엥 조금도 지장이 없으니까.
  한 삼일간 간단히 작전을 치뤘지만 그래도 전투장에는 긴장과 육체적 고통이 따르기 마련인데 (베이스에) 들어오자마자 서둘러 파헤쳐 놓은 베이스 작업을 했으니까.
  여보! 서울 가서 무슨 언잖은 일을 봤길래 그렇게 흥분하나? 세상이란 다 그런 건데 뭐. 세삼스레 인심을 찾나? 그건 서울 뿐만 아니야. 월남에도 마찬가지야. 내 부하들을 제외 하고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니까.
  여보! 세상엔 돈과 명예와 허영에 들 뜬 사람들이 허다한데 당신은 돈도, 명예도 없는 날 그토록 좋아하니 고마워. 사람이 돈과 명예를 싫어할 사람이 있나. 그렇지만 난 양심에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내가 힘껏 일 한 대가로 내게 돌아오는 것 이외에는 바라지 않아. 꾸준히 일하고, 절약하고 하다 보면 당신이 말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무럭 무럭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서로 내 살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살 수 있겠지 뭐.
  여보! 당신에게 너무 고생만 시킨 것 같애. 여보! 그렇지만 난 당신을 사랑해. 그것 이외에는 무슨 말을 쓸 수가 없군.
  여보! 어언 크리스마스가 5일 앞으로 다가오고 이 해도 저물어 가는 모양인데 계절에 대한 감각도 없거니와 날자가 흐르는 것이 조금도 아쉬운 게 없어.
  이번에 사단 사령부 근처에서 작전 하느라고 사령부에 들려 봤더니 박대위(박용원 대위)도 부친상으로 집에 갔다 왔더군. 이제 G-3(작전참모부)에서도 고참 노릇 하느라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모양이야. G-1(인사참모부)에 들려 봤더니 나의 귀국은 다음 해 2제대로 확정된 모양이야. 앞으로 석 달 남짓. 3월쯤은 사이공관광 외출이니 뭣하면 2월 말까지만 골치 아픈 중대장 하면 되는 셈이지. 그건 모두 내 계산이고 그렇게 상황이 돌아 갈는지 모르지.
  어쨌던 당신도, 나도 지금까지도 꾹 참아 왔는데 그것 쯤이야 문제 안되겠지? 하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과 아이들이 보고싶어 지지만---
  여보! 서로 멀리 떨어져 아쉽게 글 몇 줄에 의지하던 정을 석 달 남짓 있으면 원 없이 풀어 보자구. 여보! 그렇지만 좌측 가슴에 달린 중대장 마-크를 후임에게 인계하는 그 시각까지는 나의 직책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충실히 할 것이고, 부산에서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을 꼭 껴 안을 때까지는 전장에 선 군인의 자세를 허트리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어. 이것은 나의 신조이면서 나보다 먼저 귀국하는 부하들에게 늘 잔소리처럼 해 온 말이야.
  여보! 시화, 미애가 잘 싸우는 모양이지?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거 아냐? 예를 들면 빵이나 과자를 사 주더라도 똑 같이 주면 되나. 큰 놈은 더 많이 주고, 작은 놈은 좀 적게 줘야지. 빵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마침 토스트 굽는 거 하나 구했으니까 식빵 사다가 토스트 많이 만들어 먹어야겠어.
  여보! 숙모가 삼촌과 떨어져 있으니까 몹시 불안정해 보이던 모양이지? 여보! 모르긴 하지만 난 당신을 그렇게 떼어 놓고 다니지 않을래.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데리고 갈래. 아이들 문제가 있군. 참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춘천 제일중학교 같은 아주 학교에서 맡아주는 곳에 입학시키지 뭐. 몰라--- 그 때 가서 당신과 나와의 의견이 합치되는 대로 하면 되지 않아.
  라디오와 비누, 과자 Box가 주소를 잘못 써서 그랬다더니 집에까지 왔던 모양이군. 다행이 잘 받았다니 안심이야. 그 후 문경 있는 녀석 편에 보낸 녹용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군. 비행장에서 검열이 심하다는데 받거든 빨리 알려 줘.
  TV는 제 때 못 내주는 모양이지? 시골까지 가지고 내려 올 필요는 없을 거야. 사용할 수도 없으니까. 약수동 누이네 집은 어떻게 알았나? 못 가 봤지? 정영이가 알고 있겠지. 거기 맡겨 두는 게 집도 넓고 좋겠군. 시가로는 얼마나 간데? 싼 것이라고 또 질이 형편없는 거 주지는 않나 모르겠다. 기한이 넘기 전에 꼭 찾아야 할 텐데.
  파헤치고 있는 베이스를 다시 짓고 하자면 계속 바쁠 것 같애. 하지만 걱정 마. 백 수 십명의 장정이 못해낼 게 있겠나.
  며칠 후면 또 작전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이젠 숙달이 돼서 식은 죽 먹기야. 너무 걱정하지 말어.
  자--- 그럼 오늘은 이만 쓸래. 석 장의 답장을 하 장에 쓰니 미안하군. 틈 나는 데로 또 쓸게.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영 씀
고국 편지 ('70. 1. 3)
여보! 당신에게
  어젠 84신이 도착. 부엌에서 점심을 하다가 받았답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읽었답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와 베이스 만들기에 바쁘다고. 너무 고된 일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군.
  여보! 무사히 기지에 돌아왔고, 건강한 몸으로 근무를 한다니 반가운 소식, 또 귀국할 날자를 적어 보낸 것을 보니 귀국도 멀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먼 것 같아. 1월도 3일로 접어들었군. 빨리 날자가 가야지.
  여긴 다 편해요. 겨울 날씨 치곤 따뜻해 시화, 미애도 밖에서 노느라고 방에 없고,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잘 녹아 내립니다. 남향 집인 우리 마루는 따뜻하니 아이들 놀기에 좋군. 꼭 봄날 같이---
  옥인 방에서 혼자 있고, 떨어진 샤쓰를 감치면서--- 시화 고모는 놀러 갔군. 아버님은 나무하러 가셨고---
  여보! 토스트 굽는 것 샀다고, 참 좋더군요 삼촌 집에 있는 것 보니. 우리도 가서 얻어 먹었지. 당신도 좋아 하지만--- 빨리 날자가 흘러 우리들이 하고싶은 아름다운 생활을 실천 해야지. 돈이 많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말 한대로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경제 안에서 잘 살 수 있는 기틀을 만들며, (남들이) 만들어 놓은 생활보다 미지의 생활을 개척하고, 만들어 나가는데 사람이 삶의 의의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지금까지) 모르는 것을 (새로) 알게 되면 그 위에 기쁨이 없듯이(이보다 더 기쁜 것이 없듯이)
  여보! ‘귀국’ 말만 들어도 가슴이 부푸는 것 같아. 어제도 점심을 하면서 당신 편지를 읽고 부푼 마음으로 혼자 (맘 속에) 간직하며 기뻐했답니다. ‘날 사랑해 주는 당신이 있다’고,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여보! 옥인 행복해. 당신이 사랑하니까. 또 두 아이가 있고.
  여보! 보고싶단 말 밖엔--- 내일도 일요일이라 편지는 못 보내고, 오늘 보내야지. 월요일은 너무 먼 것 같고---
  여보! 또 쓰기로 하고 간단히 그칠께요. 여보! 사랑해요!---
당신의 옥이가 70. 1. 3
고국 편지 ('70. 1. 6)
여보! 당신에게
  어젠 30년 만의 추위라고 하더니 오늘은 구름이 오락가락 눈이 내린다는 라디오의 일기예보. 그러나 우리는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집안 식구가 다 잘 있다고요. 감기도 안하고. 시화, 미애도 추위도 아랑곳 없이 잘 놀아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 겨울이 다 가도 건강히 지내게 조심해야지.
  여보! 당신은 안녕? 제일 궁금하고 바라는 것이니까. 여기가 추우니까 그곳도 추운 것만 같이 착각도 많이 한답니다. 손을 불고 하다 당신 있는 곳도 그럴 텐데 하다가도 월남은 겨울이 없다지. 오히려 더위를 걱정해야 할 날씨---
  여보! 1월도 6일 빠른 것 같으면서도 아직 멀은 것 같은 기다림. 보고싶단 말 밖엔--- 오는 날까지 편지를 꼬박 기다려야지.
  시화는 밖에 아이들과 놀러 갔고, 미애는 고구마 먹느라고 입에 한 입 물고 우물거리는 것이 웃음이 나옵니다. 또 연필 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고모는 수놓느라고 정신이 없고,
  여보! 보고싶단 말 박엔--- 오늘도 편지나 기다려야지. 짧은 글이나마 쓰지 않고는 지나기가 섭섭해 펜을 들었는데 무엇을 써야 할 지---
  여보! 빨리 시간이나 가기 바래야지. 아름다운 꿈을 그리며---
  여보! 그럼 안녕. 오늘이라도 또 쓸게요.
  녹용은 요사이 다려 잡수십니다. 안녕---
멀리 고국에서 당신의 옥이가 70.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