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7 신 )
옥이 당신에게
  오늘이 X-mas인 모양이지? 밤이 꽤 늦었어. 영시가 넘은 지도 이미 오래니까. 크리스마스라고 소란한 패들처럼 올나잍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다면 좋겠는데--- 조그마한 부대 하나를 지휘하는데도 애로가 많군. 자기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자기 집에 보내는데도 맘대로 안 되니. 참.
  낮에는 자매부락에 내년도 카렌다를 전해주러 마을에 나갔지. 습관이나 예의범절이 (우리와) 다른 이곳 주민들과 (말이 안 통하니) 마음으로 의사가 소통되기에는 어색한 점이 무척 많아. 그러나 고마워하고, 반가워 하는 건 인종에 관계없이 같은가 봐. 야자수를 대접 받고, 베이스 재건으로 복잡한 머리를 식힌 셈이 될까.
  시골에 있는 당신에게도 X-mas란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군.
  여보! 늦었지만 성탄절을 맞아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빌어, 그리고 새해에도 복 많이 받고--- 당신이 말 했듯이 새해에 우리들에게는 큰 기대가 있잖아. 짧지 않은 6년 2개월. 사랑하면서도 해어져, 그것도 이국 수 만리에서 있어야 한다는 괴로움을 떨쳐버리고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가장 기쁘고 반가운 만남이 있을 테니까.
  여보!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날이니 우리 좀 더 꾹 참고 그 날을 기다리자고. 내일부터 조그마한 작전이 있기에 밤이 늦었지만 몇자 써야지. 4-5일간 못 쓰는데--- 물론 올해의 마지막 날쯤 무사히, 그리고 큰 성과를 안고 돌아왔다고 쓰게 될 거야. 당신이 그토록 염려 해 주는데 뭐---
  여보! 월남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만나는 이 마다 인사가 꼭 하나 있는데 여기 실정을 아는 똑똑한 사람이면 그러지 않을 거야. 맘속에 뭉친 불평, 이 다음에 당신과 단 둘이서만 실컷 해 봐야지. 돈으로 보내지 말고 물건으로 보내란 말은 옛날에는 적용 됐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돈도, 물건도 불가. 용은 그 녀석이 어덯게 잘 가져 갔는지 퍽 궁금하군.
  그리고 당신이 보낸 한국 고향 냄새가 물씬 나는 것들 잘 받아 나눠 먹었다고 이미 써 보냈는데---
  정희 혼사에 대해서는 어른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랴마는 현대인의 눈으로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잘 관찰 해 봐. 아이가 배운 게(학교를 말 함) 없으니 별 수 있겠나 만 그럴수록 신중을 기해야지. 신랑감 만 착실하고 인간성이 좋다면 되는 거지. 그리고 마땅하거든 경제적으로 좀 곤란하겠지만 서둘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애.
  여보! 새해에 집을 장만하자구? 참 듣던 중 반가운 말인데 되겠나? 진짜 가능성이 있다면 연구 해 볼 만도 한데--- 공연히 공중 누각 짓는 격이면 아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어. 얼굴 축날라.
  여보! 서울 갔을 때 그런데 소문 좀 들어 봤어?
  전방에 계신 삼촌(처삼촌) 주소 좀 알았으면 좋겠다. 편지도 왕래하면서 귀국 후의 보직 문제도 상의 해 보게. 당신이 알고 있거든 써 보내 줘. 서울 숙모님 댁 주소는 깜빡 잊어버리고 적어 놓지 않고 그만 봉투를 찢어 버렸지. 삼촌 주소 모르면 숙모님 댁 주소라도---
  여보! 이런 걱정 할 때가 내게도 오고 있다니 기쁜 일이야. 여보! 뭣보다도 당신을 만날 수 있고, 시화, 미애를 안아 줄 날이 하루 하루 다가온다는 뜻 아냐!
  여보! 너무 걱정 말어. 시화, 미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더 힘 껏 껴 안아 줄게. 여보---!
  그럼 오늘은 이만. 올 해의 마지막 날 또 들기로 하고.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이 그리워서 영 씀
고국 편지 ('70. 1. 11)
여보! 보고싶은 당신에게
  따뜻한 아랫목 이불 밑, 두 새끼들을 양쪽에 눕혀 재우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고염도 먹어가며 저녁에 아가씨 수예 하는데 좀 거들어주고 이제 그만 그치고 편지를 쓰며 당신을 그리다가 자야지요. 또 새벽이면 (아이들이) 야단들 하는데 잘 수도 없고 일찍이 자 놔야지.
  여보! 당신은 안녕?
  편지 받은 지가 4, 5일 된 것 같은데 어제는 꼬박 기다렸고, 오늘은 일요일이라 기다림도 없이 하루를 보냈군요. 내일은 몇 장이 한꺼번에 올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기지 만들기에 바쁘다고--- 어떠한 일에도 잘 해 낼 꺼라는 신념에 맘 속으로 꼭 믿지만---
  여보! 펜을 들면 빼 놓을 수 없는 ‘보고싶다’는 말 너무 해서 싱거울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간절한 말이라고요.
  미애나 시화를 안고 “아빠가 빨리 와 너희들을 예뻐 해 주고 귀여워 해 줄 꺼라고, 어느 아빠에 지지 않게” 하고 중얼거리며 당신을 아쉬워 했고, 마음 속으로 “여보---!” 하고 불러도 보곤 한답니다.
  시화는 오늘 말랑(아래 위 사드래 사이의 잔디밭 날등)에 놀러 갔다가 저하고 꼭 같은 아이들 4명이 가서 불을 내고 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끄느라고 야단이었답니다. 시화가 (불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아버님도 아가씨도 가서 끄고 왔지. 묘 있는 잔디밭만 좀 탔지만 네 놈이 무서웠는지 불을 놓고 그냥 모두 집으로 뛰어와 숨었더군요.
  이젠 시화가 제법 까불고 컸답니다. 썰매 탄다고 삼촌이 만든 썰매를 꼬챙이에 꿰어 가지고 가는 꼴, 그 뒤를 바라보며 옥이가 대견스럽게 생각되었답니다. 내 새끼가 저렇게 컸구나 하고---
  미애는 추우니까 마음대로 나가지는 못하고 방에서 (내) 젖이나 만질려고 하고, 먹을 것이나 찾고, 제법 말을 잘 한답니다. 한창 배우는 셈이지. 학교종이 노래, 유치원 가자 등 전부는 못해도 처음 곡을 부쳐가며 흉내를 내는 것이 웃음이 나와 죽겠고 아주 귀엽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당신이 두 새끼들을 붙잡고 좋아하는 양을 보고싶고, 옥이도 좋아 웃고 지낼 것을 생각하면 나 (혼자) 만이 사랑하는 남편을 둔 양 말이에요. 여보! 당신이 날 사랑하는 날까지 언제나 (난) 행복해.
  여보! 보고싶어. 1년이란 세월, 너무 길군. 지겨워. 날자는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아직 먼 것 같고, 당신이 귀국하는 날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 같고---
  여보! 집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아요. 걱정할 것이라곤 없으니까. 아이들도 건강하고, 부모님도 평안하시고 옥이도, 동생들도 ---
  용은 아버님, 어머님도 드렸고, 옥이도 좀 먹고, 시화, 미애는 당신이 오면 먹일려고 안 먹였답니다.
  여보! 또 쓰기로 하고, 이만 그칠께요. 여보---! 안녕.
당신을 그리며 당신의 옥이가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