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88 신 )
옥이 당신에게
  원래는 내일 그러니까 금년의 마지막 날 돌아오도록 됐는데 작전 계획이 바뀌어서 하루 앞당겨 돌아왔어. 물론 중대원 아무도 이상 없이 좋은 성과를 안고---
  며칠간 작전 나간 사이에 당신의 편지가 한 통 와 있고, 오늘 또 (한 통이) 들어 닥쳤군. 두 장의 답장을 한 번에 쓰니 당신에게 미안 한 생각이 드는군. 그렇지만 더 열심히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하면 불평 없겠지 뭐.
  올해도 꼭 하루가 남았군. 당신 말처럼 날자가 가고, 한 해가 가는 데는 손톱만치도 (아쉬움이) 없으니까. 제발 더 빨리 흘러 (빨리) 한 해의 못다한 우리의 정을 찾아야지.
  용을 무사히 받았다니 안심이군. 하두 중간에서 검열이 많다 기에 꽤 걱정했는데--- 과연 똑똑한 중대원들이니까. 여보! 그게 뭘 그렇게 많다고 그래. 당신 말같이 많으면 온 식구가 다 먹지 뭐. 아버님 해 드리고, 시화, 미애, 그리고 당신도, 어머님도 해 드려.
  그런데 약방에 가서 잘 알아서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것 들을 사다 넣어야 될 꺼야. 난 전쟁터에서 단련된 터라 별로 필요 없을 테니 너무 아끼지 말고 약이 되도록 (충분히) 사용 해.
  X-mas 선물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여보!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선물이 필요할까? 내게는 뭣보다도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에게는 내 전부가 필요한데 말야. 여보!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나 뭐. 당신이 잘 있으면 됐어. 그리고 아이들도---
  시화가 고모 따라 김천엘 갔다고? 그것 참, 이젠 보통 엄마 떨어져서도 며칠간씩 있는 모양이지? 그만치 컸는가? 거기엔 당신의 고생이 밑거름이 된 거지. 여보! 고생했어. 엄마 젖을 안 만지면 잠이 안 오던 게 멀리까지 떨어져 있다니 생각 할수록 신기하군.
  여보! 물건 사는데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살 수가 없으니까. 기껏해야 시화, 미애 장난감은 사가야 할 텐데--- 마침 토스터는 사 놨지. 당신이 굽어내고 아빠와 시화, 미애가 둘러 앉아 서로 많이 먹을려고 하는 광경을 생각하고 혼자 웃어 보곤 했지. 여보! 정말 아기자기한---
  국내 봉급은 분기별로 나올 거야. 3월까지 3개월분 약 7만원 약간 못될 거야. 가족수당을 합치면 좀 넘겠군.
  미애가 노래를 곧잘 하는 모양이지? 아빠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같이 어울릴 수는 있을 텐데. 커면 음악을 가르칠까?
  여보! 당신은 어때? 일 철에 홀쭉 빠진 얼굴이 겨울철에 좀 복구가 돼나?
  월곡 이수암 병장이 이번 제대에는 진짜로 가게 되나 봐. 같이 작전에 나가고 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있어서 자주 봤으니 당신이 의심하는 나의 건강에 대해서는 잘 알 꺼야. 뭐 과자라도 좀 부칠까 했지만 짐이 될 것 같애 그만 뒀어. 내가 갈 때 가져갈 것도 없는데 구태여 남에게까지 부칠 필요 있겠어?
  여보! 졸린다. 또 쓸게. 자고 내일부터 베이스 작업에 힘과 열을 올려야지.
  여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

  사진은 신년도 달력을 자매부락에 전해주는 장면이야.
이웃 마을에서 달력을 전달
철모를 쓴 군인은 중대 월남어 통역병
고국 편지 ('70. 1. 15)
여보! 당신에게
  겨울 날씨라 그런지 오늘은 몹시 춥군. 모두 방안에서 웅성거리고 따뜻한 아랫목 이불을 벗어나지 못하니- 그런데도 시화는 스케이트 타러 간다고 썰매를 가지고 나갔군. 추운 줄도 모르고 여하간 잘 노니까 좋아요.
  여보!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편지를 한꺼번에 석 장을 받았는데 하루 늦게 펜을 들었군. (이렇게 답장을 늦게 쓰는 것이) 당신의 소식을 들었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 모르겠군요. 어쨌던 미안해요
  옆에선 미애가 무엇을 그린다고 연필로 그리고 있군요. 손은 얼음 같이 차게 해 가지고--- 그래도 잘 노니까 예뻐요. 당신이 와 보면 많이 달라지고, 컸고, 약아졌겠지.
  (옥이와 애들이)보고싶어요? 말 할 수 없이? 옥이도 마찬가지. 당신을 만날 날이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아직 멀은 것 같고, 지난 여름 때 보단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만 그래도 멀은 것 같으니--- 옥이도 (요즈음은) 밥은 해 먹지만 편하게 잘 있고---
  당신 편지 속에 사진을 보며 시화한테 아빠 사진 왔다고 했더니 썰매 타고 오다가 썰매를 집어 던지고 “어디 보자” 고 막 쫓아오는 것이 웃음이 나와 혼났습니다.
  미애는 당신 얼굴을 기억 못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가르키며 여기가 아빠라고 가르쳐 줬지. 시골에서 별로 먹을 건 없고 지금 미애는 감껍질 먹느라고 야단--- 한 입 물고 우물 우물--- 머리는 좀 길었지만 그리 많이 길지는 않았고 어설픈 것 같아. 빨리 아빠가 오기를 더욱 아쉬워 하지.
  여보! 빨리 날이 가기만을 기다려야지. 당신이 그리고 내가 그리는 그 생활 속에 행복한 나날을 만들어야지. 여보! 일년이 너무 길군. 그 전 당신과 여제 저기 (이사) 다니며 살림 할 땐 “벌써 한 해가 갔나” 했었는데---
  여보! 서울 숙모네 주소는, 작은 아버지 부대 주소는 잘 모르고--- 요사이 방학이라서 아이들 데리고 (작은 아버지한테 가서) 집엔 아무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집 주소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1-410 박영학인데 방학 끝 날 무렵에나 해 보세요.
  빨리 와 당신과 의론도 하고, 생각하고, 일년의 못다한 정 다 쏟아가며 지내야지. 따뜻한 봄과 함께--- 여보! 선물 사는데 그렇게 걱정을 해? 무엇을 그리 걱정해요. 되는대로 형편대로 하면 되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내겐 튼튼한 당신이 제일이니까---
  여보! 펜을 들면 처음부터 몇 장이라도 ‘보고싶다’는 말이나 하고싶으니까.
  석희 아가씨는 내일 졸업식이라나. 설 새고 큰 도련님이 서울로 오라나. 취직 자리는 없지만 물색도 해 보고, 밥도 좀 해 주고---
  처녀 총각들의 혼사는 올해는 걷어 치운 것 같고, 경제도 그러하겠고, 사람도 적당치 않고, 빨리 해 치워야 하는데---
  여보! 그럼 이만 그치고 또 쓸게. 안녕.
고국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옥이가 1. 15

  적금은 1기분 봉급이 나오면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