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0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이렇게 해서 나이 한 살이 불었군. 새해에 들면서 베이스를 다시 짓느라고 정신이 없어 오늘 나흘째 날 펜을 들었군. 여보! 작년 한 해 동안 꼬박 고생한 당신에게 새해에는 행운과 복이 올 것을 빌어.
  어제부터 맹호들은 큰 작전을 벌리고 있는데 우리 중대는 이번에 못 나갔어. 집(베이스) 짓느라고. 당신이 들으면 오히려 반가워 할런지도 모르지만 난 속이 좋지 않군. 전쟁터에 나온 군인이 전투를 해야지 이거 어디 목수처럼 집 짓느라고 (작전에) 빠지다니. 남들이 좋은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그래도 좋은 성과를 안고 개선해야지.
  여보! 새해 들어 당신 편지가 뚝- 끊어졌군. 그간 안녕? 그간 어떻게 지내지? 몹시 지루하지? 난 그래도 내가 떠나기 전까지 훌륭한 베이스를 만들어 부하들이 좀 더 안전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먹고, 자고, 지낼 수 있는 것을 보고싶고, 누가 후임으로 올런 지는 모르지만 내가 (중대를) 받을 때와 같은 판자촌 같은 베이스를 넘겨 주지 않겠다는 일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지나 가는군. 그러니까 사람은 바빠야 되나 봐.
  종종 오는 위문편지에 야자수 아래서 맥주 마시는 풍경들을 그리곤 하는데 그건 지금은 거리가 멀어. 하루에 베이스를 몇 바퀴 도는지 몰라.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해 보겠다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머리 속에 그것 밖에 없군. 아니, 당신과 시화, 미애를 생각하는 것은 여전해.
  당신 편지에 늘 시화가 아주 의젓하게 컸고, 미애가 아주 깜찍하게 예뻐졌다고 하는데 보지 않고는 머리로 상상이 안 되는군. 전에 가져 온 사진으로는 추측이 잘 안 가.
  여보! 당신도 예뻐졌지? 전처럼 말야. 농사철에는 일에 시달려 얼굴이 빠졌더라도--- 나도 남들이 그러는데 얼굴이 많이 나아졌다고 그러는군. 우기철이라 덜 더웁고 늘 식욕이 왕성하니까 그런가 봐. 요사이는 그래도 베트민튼 라켓을 잡을 때도 있으니까. 오락과 운동으로서는 참 좋아. 귀국 때 꼭 한 셋트 사 갈 생각인데 몰라. 별로 비싸지 않다니까.
  지난 12월 수당도 당신 앞으로 46$이 송금 됐군. 계원이 그저 적당히 부쳤나 봐. 다음 1월 분부터는 못 부치게 될 거야. 귀국 준비도 해야지. 준비래야 뭐 할 수도 없지만 3월 경에 사이공에 가면 시화, 미애 장난감이라도--- 뭘 사 와야지?
  휴가병 편에 부친 과자와 라디오 그리고 용을 무사히 받았다니 다행이야. 중간에서 잘 안 될까 봐 걱정했는데---
  여보! 요사이 꽤 춥지? 경부고속도로가 눈이 내린데다가 빙판이 져서 차가 5중 충돌을 했다는 기사를 얼른 봤는데 여기서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군.
  하기는 추울 때는 또 그런대로 농촌에서는 구수한 점이 있지. 떳떳한 아랫목에서 군고구마 먹는 맛도 있지만 당신이야 그런 정신이 있겠나. 어쨌던 겨울철에는 감기에 조심해야 돼. 겨울철 질병은 감기부터 시작되니까. 당신도, 시화도, 미애도 모두 조심해야 돼. 그래야 이제 석 달 반쯤 후에 서로가 건강한 몸으로 기쁨에 얼사안으며 만날 수 있지 않겠나.
  이원에는 소식 자주 있나? 어머님은 눈이 계속 좋지 않으신 모양인데 전 번 병원에서 완전히 낫지 않았지? 한 번 치료를 하는 김에 완치 하도록 해야지. 그리고 집에 부모님들은 무고하신가?
  석희는 어떻게 한데? 진학은 못 할 꺼고, 취직에나 발버둥 쳐 보나? 힘들 꺼야. 그렇다고 너무 악착스럽게 또 초조하게 서둘지 말라고 해. 그러다가 건강을 해치거나--- 다 큰 기집애가--- 혹시 우리가 서울 살게 되거나 하면 그 때도 늦지 않으니까 너무 기가 죽어서 할 것도 없어. 당신이 내 일같이 잘 상의 해서 좋은 방향으로 조언 해 줘.
  자--- 그럼 오늘도 이만. 안녕. 새해 복 많이 받어.
월남에서 당신의 영 씀
  TV 찾았는지 궁금하다.
고국 편지 ('70. 1. 20)
여보 당신에게
  몹시 춥던 날씨가 오늘은 좀 풀린 것 같습니다. 여보! 그간 베이스 만들기에 바쁘지만 건강히 잘 있다고 어제 90신을 받았습니다.
  당신 말같이 작전을 안 가는 것이 내가 좋아한다고 했듯이 마음적으로 부담이 덜 하니 좋지 않겠어요. 하긴 전방도 후방도 없다고는 하지만--- 당신은 은근히 화낼지도 모르지만---
  여보! 이제 만날 날도 차츰 가까워 오는 것 같지만 한 날씩 처 보면 아직도 멀은 것 같고,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당신이 오면 모든 것이 어설플까 걱정 되는군. 어떻게 당신을 맞을까. 기쁨과 함께 가슴이 벅차는 것 같아. 하루 하루를 세며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
  여보! 너무 애타서 몸이 축나기까지 아이들을 보고싶어 하진 말아요. 얼마 안 있으면 꼭 안아주고 예뻐 해 줄 날이 멀지 않았으니 말이에요.
  시화는 오늘도 아침밥 먹자마자 썰매 타러 갔어요. 송곳을 썰매 판에 꿰어 가지고 안고 나갔는데 설거지를 하고 잠깐 나가 봤더니 제법 잘 탄답니다. 커브도 돌 줄 알고 대견스럽기만 했답니다. 혼자 웃으며 왔어요.
  날만 새면 아이들 불놀이 하는데도 쫓아다니는데 자주 찾아 보죠. 큰 일을 저지를까 봐. 개구장이 같이 흙에 뒹굴기도 하고--- 시골에 있으니 다른 아이들이 다 그러하니 따라 가기 마련인 것 같아요. 아무리 단속을 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당신이 오고 어디에 가서 살 땐 좀 예쁘게 키워 볼까 (지금은 할 수 없어요) 하긴 제 멋대로 마음 놓고 들로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이 정신상엔 좋을지 모릅니다. 마구 단속을 하다가도 그냥 놓아 두는 때가 많아요.
  여보! 미애가 항상 나와 같이 놀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내 새끼라 그런지 깍쟁이, 예쁘고--- 미애를 바라보며 가만히 당신과 같이 놀 것을 그려 봅니다. 미애가 당신 보고 무어라고 할까. 당신 말 같이 ‘아저씨’라고 할 지 모르지. 당신 사진을 보고 아빠의 기억이 없는 것 같으니 섭섭해 하진 말아요. 당신이 귀여워 하면 곧 따를 테니까.
  사진을 찍어 보내고 싶으나 그리 쉽지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 (김천에) 나가는데 어떤 땐 올 차 시간에 늦을 때가 많고, 변명이지만 나 혼자 살고 있지 않으니 모든 것이 그리 잘 되지가 않는군요.
  이원에 갈 때나 찍을 수 있을까. 그때면 당신 올 날이 멀지 않을 테고---
  그리고 얼마 전 편지에 당신한테 거짓말을 했나 봐. 석희 아가씨한테 돈을 주고 김이나 오징어를 (당신에게) 좀 부치라고 했더니 잘 안 들어갈까 봐 안 부쳤다는데 돈만 빼앗겼나 봐.여보! 미안.
  주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선물도 받고 즐거워 했을 텐데 자주 쓴다고 쓴 편지도 제대로 안 들어가고, 죄를 지은 것 같이 마음이 무겁습니다. 여보! 만나서 보상하지. 무엇으로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여보---! 정말 보고싶단 말 빼 놓을 수가 없어. 미애가 아빠를 몰라보고, 사진을 볼 때 가르쳐 줘도 잘 모르는 것 같을 뗀 안타까워.
  시화는 당신 사진만 보면 아빠라고 좋아 야단인데 덩달아 좋아하는 미애를 볼 땐 마음 속으로 미애를 보고 ‘너희 아빠는 월남에서 너희를 몹시 보고싶어 하고, 너희 좋아하는 선물을 많이 사온다’고 속삭이지.
  여보! TV는 약수동 영옥이네 집에 찾아 놨다고 합니다. 물품세가 올라 국산도 비싼 모양이던데 10만원을 호가 한다니 말입니다.
  20일이 되었는데 국내 봉급도, 수당(46$)도 도착이 안 되었는데 오늘도 기다려 봐야지. 국내 봉급이 나오면 3월까지 적금을 넣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오면 작은 집이나마 장만 해 보자고요. 100만원 안쪽이면 변두리에 작으마한 것인가 본데 당신이 와 봐야 알겠지만---
  석희 아가씨는 설이나 지나고 큰 도련님이 데려간다고 해요. 밥도 해 주고 취직 자리도 틈 타 보고---
  여보! 지난 일년을 생각하면 난 한 일이 너무 없었나 봐. 애타게 당신을 기다리고, 아이들과 싸우며 지난 날들, 귀국하더라도 해 놓은 것 없다고 욕하지 말아요. 앞으로 열심히 잘 해 볼께요. 무엇이든지---
  여보! 그럼 이만 그칠께요. 미애가 옆에서 울고 야단이군. 내 마음 속으로 양력 2월 10일 경에 이원에나 가 볼까 하는데---
  여보! 안녕---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며 보고싶어 하는 당신의 옥이가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