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1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요사이는 무척 바쁘구먼. 도쟈 뒤를 따라 다니다가 취사장 식당 짓는 데로 뒤어갔다가--- 높은 곳에 올라 가 멍청하니 앉아 무언가 골돌히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해. 어떻게 하면 베이스를 멋있게 고쳐 놓을까 하는 일념.
  그런 중에도 표현은 안 했지만 당신 편지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크리스마스날 쓴 편지가 오늘 들어왔군.
  여보! 당신은 왜 날 생각할 때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되나? 비에 젖어 홀쭉해 진 그런 것만 연상하나? 물론 전쟁을 하다 보면 그런 때도 있어. 그렇지만 난 그렇게 홀쭉해 지진 않았단 말야. 얼굴이 까므짭짭하게 타서 그렇지, 오히려 난 당신이 그렇게만 생각 돼. 아이들 데리고 답답한 시골에서 하루 해가 지루할 당신이 말야.
  시화가 미애 손잡고 마실 다닌다고? 짜-식들, 참 대견스럽군. 귀국하면 그런 장면을 사진 찍어 줘야지.
  마침 정희 편지도 같이 왔군. 어머님이 계속 완쾌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지? 농사철에 몸을 돌 볼 사이도 없이 과하게 일을 하셔서 그런 거야. 어서 빨리 돈 벌어 좀 편하게 모셔야 할 텐데.
  대구 남실이네가 좋은 소식이구나. 산후에 몸조리나 잘 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괜찮으시면 가서 뒷 일을 돌봐 줘야 할 텐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걱정이군.
  정영이가 추운 때 고생이 많겠다. 이렇게들 고생 하면서 끝까지 용기와 의지를 잃지 않고 성공해야지. 여보! 우리도 말야.
  여보! X-mas카드를 당신에게 한 장, 시화, 미애에게 한 장 보낸 적이 있는데 못 받았나? 당신이 창작해서 읽어 줬다는 내용이 시화, 미애 앞으로 띄운 카드에 쓰여 있는데.
  여보! 당신이 날 보고싶은 만치 나도 당신이 보고싶고, 시화, 미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애. 그러니까 더 날자가 안 가는 것 같군.
  얼마 안 남았다고 방심할 내가 아니잖아. (당신과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속에 최대한 조심해서 (행동)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어.
  석희가 이제 수업이 끝났구나. 진학은 못하고--- 남들은 공부를 못해도 보내는데--- 여보! 당신이 잘 이해시키구려. 그리고 취직도 너무 악착같이 해 보겠다고 서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애. 자칫 잘못하다간 빗나가기 쉬우니까. 다 큰 계집애라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 될 거야.
  무영이는 참 좋을 때다. 방학이 정말 기다려 질 때가 아니겠나. 방학이 끝날 때쯤의 아쉬움--실은 별 신통하게 놀지도 못하면서--
  날씨가 꽤 춥지? 여기도 계속 우기철이라 더운 줄 모르는 건 좋은데 하루도 한 열 번쯤 비가 내리니 구질구질 해서---
  여보! 겨울철에 몸조심 해. 아이들도 감기 걸리지 않게 하고--- 오늘은 이만 써야겠다. 그럼 안녕.
  여보! 참 나도 한 없이 당신을 사랑해.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 영 씀
고국 편지 ('70. 1. 23)
여보! 당신에게
  대한도 지났으니 얼마 안 있어 봄을 맞이 할 것 같습니다. 요사이는 겨울 날씨 치고 포근한 날씨인 것 같아요. 여보! 그간 안녕?
  어젠 수당 46$ -13,970원- 을 찾소, 설 지낼 기름도 짜고, 심심할 것 같아 미애를 업고 (유촌에) 갔다가 저녁 새(새참 때) 차로 올라 왔지요.
  김천은 그저께 갔다 왔고--- (김천에) 갔더니 석희 아가씨가 미애 세타를 예쁘게 짜 놓았더군. 빨갛게 참 예쁘군요. 고맙고. 당신한테 오징어, 김을 못 사 보냈으니까 미안해서 떴는가 봐. 어쨌던 고맙군.
  부모님 다 평안 하십니다. 어머님 눈도 이젠 다 나아가고--- 걱정하지 말아요. 아버님, 어머님도 용을 잡수셔서 그런지 밥맛이 더 난다고 좋아 하십니다. 오늘 아버님은 잔치 집에 가셨고, 아이들고 고모, 무영이 삼촌과 같이 있답니다.
  미애도 잘 놀고, 시화 역시--- 시화는 겨울이라도 여름같이 끌었어요. 밥만 먹으면 냇물에 썰매타기, 아이들과 뚝으로 다니며 불놀이 하는데 따라 다니고 잠시를 집안에 안 있군요. 미애는 집안에서 잘 놀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귀엽게 재롱, 말도 이젠 많이 한답니다. 당신이 올 댄 아주 잘 할 것 같아요. 노래도 제법 흉내를 낸답니다.
  여보! 무척 아이들이 보고싶지? 시화가 지금 옆에서 몰래 보던 사진을 들켜 (저가) 본다고 본다 고 쭉 펴 놓고 야단이군. 사진만 보면 기를 쓰고 볼려고 하는군.
  그런데 오늘에 1月 23日인데 국내 봉급이 아직 소식이 없군. 곧 올 테지만 궁금하군요.
  곧 음력 설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겐 좋은 명절일 테지만 어른들에게는 귀찮은 명절인 것 같아.
  날자를 세며 하루 하루를 보낼려니 정말 지루하군. 못 견디게--- 가만히 누워 당신 맞을 생각을 상상해 보면 즐겁고, 기쁘고, 붕 뜬 고무풍선 같기도 하고, 여보! 어쨌던 빨리 날자만 가라고---
  여보! 보고싶지만 꾹 참아야지. 그럼 바로 또 쓰기로 하고---
  당신을 몹시 그리워 하며 안녕---
당신의 옥이가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