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3 신 )
옥이 당신에게
  편지가 때로는 중간에서 한 보름씩 묵는 모양이지. (편지 쓴) 날자 차이가 많은데 같이 오는 걸 보니. 오늘은 당신 편지 두 통을 한꺼번에 받아 한 장으로 답장을 쓰게 되니 미안한 생각이 드는군. 하기는 당신은 다섯 통을 한꺼번에 받았다니까---
  시화가 (X-mas) 카드를 받고 무척 좋아했다고? 그리고 아빠가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고? 아빠가 뭘 그렇게 잘 해 줘서. 신경질을 부리고 했는데---
  여보! 나도 아이들이 보구 싶다. 당신이 편지마다 (그것들이) 까부는 모양을 적어 주니 혼자 상상해 보곤 하지만--- 우리들 자식이라 그럴 뿐만 아니라 당신도 늘 (아이들을) 밖에 데리고 나가 남들로부터 칭찬 받은 얘기를 했지만 뉘집 아이들 보다 귀엽고, 사랑스럽잖아? 하기는 당신과 나 사이니까 이런 말을 쓰지만 남들 앞에서 했다간 욕먹겠지?
  여보! 난 너무 한가지에만 치중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는 너무 무관심한가 봐.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들의 생일이나 심지어는 당신의 것(생일)까지도 까먹고 모르는 걸. 조상들의 제사 날자는 말 할 것도 없고, 우리들의 약혼과 결혼 날자도 가물가물 해 지는 것 같애.
  할머니 제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사관학교 입시에 응시한다고 대구에 가 있으면서 맞손자로서 임종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까 이미 장례가 끝났더군. 무척 추운 겨울이었는데---
  미애가 그렇게 재롱을 피운다고? 짜-식, 깜찍한 것이 4월 달에 만나면 아빠라고 알아 볼까? 또 아저씨라고 할 것 아냐? 내게 오지도 않을려고 하고, 정을 붙이자면 상당한 시일과 자금이 들 것 같은데. 노래를 잘 한다니 잘 됐다. 녹음기 가져가서 녹음해서 뒀다가 크거든 들어보기 해야겠군.
  당신 말같이 아이들은 가정의 보배이고, 생기를 돋게 하는 활력소야. 어떤 친구들은 가정생활 특히 부부생활에 거추장스럽다고 각별히 조심해서 가족계획을 한다지만 다 모르는 소리 아닐까. 전에 언젠가 얘기 한 것 같은데 인도의 시성 타고르박사는 이렇게 말했다는군. “어린아이는 신이 아직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태어난다”고---
  여보! 당신이나 나나 우리가 만난 후의 일에 대해서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어. 여보! 만난 후에 모든 것이 순조롭다곤 할 수 없겠지. 예측 못한 어려움이 많을 거야.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합심해서 극복해 나간다면 어려울 게 뭐 있겠나.
  여보! 그래도 생사를 건 도박장이랄 수도 있는 전쟁터에서 일년이 넘도록 해 냈으니까 이보다 더 어려울 게 있겠나.
  여보! 나도 당신처럼 (우리가) 만났을 때의 그 감개를 상상해 보고 흐뭇해 하곤 해. 당신의 표정, 나의 표정 그리고 아이들--- 아- 빨리 석 달만 지나면 상상 아닌 현실이 눈 앞에 전개될게 아닌가. 여보---!
  여보! 그렇지 당신이 내게 시집 온 후로 변변한 옷 한가지도 해 입지 못했지. 오바 예기가 나오니 정말 난 당신을 고생만 시킨 것 같애. 해 줄게. 돌아가면--- 여기는 더운 곳이라 그런 게 없는 모양이니까 돌아가서 해 줄게.현금은 가져갈 수 없으니 절약해서 중경단에 부쳐 놓으면 되겠군. 12월 분은 46$이 당신 앞으로 송금된 모양인데 1月 分부터는 송금이 없겠어. 국내 봉급에 이상이 있으면 즉시 연락해 줘.
  여보! 크리스마스 카드는 더 예쁜 것이 있었는데 가까운 중대원들 주고 Wife에게 보내도록 고안됐길래 그걸 당신에게 부쳤는데 당신 맘에 들었다면 다행이야.
  자- 이만 줄이고, 자야겠다.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한없이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70. 1. 28)
여보! 당신에게
  봄날같이 따스한, 겨울 날씨라고 생각이 안 듭니다. 이제 겨울이 다 간 기분. 이젠 혹한 추위는 없겠고따스한 봄이 가깝겠지요.
  여보! 그간 안녕?
  지금 시화와 유촌 우체국에 와 있어요. 어제 국내 봉급 76,260원이 도착했군요. 왜 안 올까 기다렸더니--- 2, 3월분 적금은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집에 미애가 (우리가) 버스 타는 것을 보고 따라 오고 싶어 했는데 건빵 한 봉이라도 사다 줘야지.
  집엔 다 편해요. 아버님도 안녕하시고, 올 겨울은 눈이 적어 나무도 많이 해 놓으셨답니다. 오늘도 산에 나무하러 가신 것 보고 왔습니다. 서울 큰 도련님이 2月 4日 구정을 세러 온다고 하는군요. 잘 있다고 합니다.
  여보! 시화, 미애를 바라보며 당신을 그리워 할 땐 정말 지루 해.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갈까.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고---
  여보! 곧 차가 올 시간이 된 것 같아. 길게 못 쓰겠군. 곧 또 쓰기로 하고--- 조바심이 나 더 못쓰겠군.
  그럼 안녕---
당신을 몹시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유촌 우체국에서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