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4 신 )
옥이 당신에게
  카렌다 얘기를 했기에 어리둥절 했더니 편지보다 하루 늦게 왔군. 여기도 각종 카렌다가 있지만 조그맣고 잘 꾸며진 것이 맘에 드는군. 더구나 아빠가 돌아 올 달이 기록 돼 있군.
  여보! 그 땐 꼭 갈게.
  아버님의 자세한 편지도 받았어. 석희가 졸업하면 상경하여 정영이 뒷바라지를 시키겠다고 그러시더군. 그렇다면 우리도 서울에서 얼마간 있는 것이 더욱 좋겠군. 그렇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여보! 오늘은 큰 일 날 뻔 했어. 앞이 아찔하고, 하늘이 노랗찮아. 천만 다행이고 그것도 당신이 빌어주는 덕분에 운이 중간쯤은 되는 모양이지. 다름 아니고 2소대를 대리고 빵카를 짓는데 속에 십여명, 물론 나도 들어 있는데 갑자기 뚝딱하며 걸쳐 놓은 8”x 8”(20Cm x 20Cm) 목재가 뚝 부러지잖아.
  전장에서 단련된 사람들이라 동작은 그야말로 비호라 할까. 한 사람도 다친 사람도 없지만 집을 짓다 부서진 일은 처음이라 한 동안은 밑에 깔린 부하가 없나 하고 내 정신 아니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으니까. 인원을 다섯 번 확인 한 후에야 안심했지만 어쩐지 서글퍼지고 패배감에 젖어 하루 오전 아주 맥이 탁 풀렸어.
  그러나 점심 먹고 또 힘을 내서 정리했더니 다행히도 위의 들보 두 개만 부러졌을 뿐 다른 곳에 이상이 없으니 작업 일정이 하루 늦는 셈 치면 돼지.
  하여튼 오늘 하루는 새해에 행운이 있기를 빌어 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야겠어. 특히 당신에게 그리고 칠전팔기, 일곱번 자빠져도 여덟번 째 또 일어난다는 우리 동기생의 구호를 되새기며 일어나야지.
  너무 아찔한 얘기를 했나 보군. 여보! 걱정하지 말어. 이런 예상치 못한 삶과 죽음의 중간 고비를 넘기는 때 군인은 자라고 차츰 불사조가 되는 거야. 그 큰 나무가 부러졌으면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써서 기어코 완성하고 말 테니까.
  베이스 건설에 정신이 없다 보니 새해의 첫 달도 반이 지났군. 고국엔 한창 추울 텐데 어떻게 지내나?
  여긴 아직 우기 철에 들지만 한 달쯤 지나면 건기에 속해 몹시 더울 거야. 지금 기후는 월남 기분이 좀처럼 안 나는군. 덥기 전에 베이스를 완전히 해 놔야지.
  여보! 난 요사이 집을 짓고 하면서 당신과 우리 새끼들을 데리고 살 집을 짓는 것 같은 기분이야. 언젠가는 이렇게 맘에 꼭 맞는 집을 설계해서 짓고 그 속에서 아기자기하게 살아야 할 텐데.
  여보! 당신과 만날 수 있는 날은 꼭 석 달 남은 것 같은데. 사실상의 중대장 근무는 두 달 남짓 한 것 같애. 3월에는 사이공 전투관광 외출도 있을 게고--- 하지만 전쟁터에는 당신 말처럼 잠시도 방심 할 수 없으니까.당신과 기쁨으로 얼사안을 때까지는---
  여보! 나도 당신처럼 만나는 때의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상상해 보곤 하지. 여보! 그날도 멀지 않은 것 같으니 꾹 참고 기다리자고.
  자- 그럼 자고 내일 또 열심히 일해야지.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70. 1. 29)
여보! 그려보는 당신에게
  아침에 편지를 (우체국에서) 띄웠지만 (낮에) 당신의 편지도 받았고, 조용히 밤이 깊어 가고 당신이 보고싶어 펜을 들어요.
  요사이 겨울 날씨 치곤 따뜻합니다. 봄이 온 기분 같고--- 하긴 얼마 안 있어 봄이라고 할 테지만---
  여보! 오늘 편지를 받고 정말 아찔했지만 다행이 무사하다니 무엇을 더 바래. 일이 늦어져 신경질은 났겠지만 그만한 것이 큰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야겠지.
  시화와 오늘 유촌 우체국에 가서 국내 봉급 76,260원을 찾아 예금해 놓고 왔어요. 시화는 가게에 별로 사 줄만한 것도 없고 10원짜리 건빵 3봉만 사가지고 왔지.
  집에 오니 미애가 놀다가 오더니 2시간 동안 못 봤는데 10년 동안 안 본 양 좋아라고 야단을 하는군. 건빵 한 봉지에 떨어졌지.
  가끔 당신을 생각하며 당신이 옆에 있었다면 아이들과 얼마나 좋아하고 잘 놀아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미애에게 “아빠가 월남에서 과자, 장난감 많이 사다 준대” 하고 이야기 해 주곤 하지. 또 가끔 “아빠가 무엇 사다 주지?”하고 물으면 “과자, 장난감”이라고 음을 따며 말 하는 것이 얄밉군요.
  여보! 보고싶어. 사진을 본다 해도 신통치 않아.(여기까지 1월 28일 밤에 씀)

  (어제 밤에) 잠이 와 편지 한 장을 다 못쓰고 오늘 낮에 또 펜을 드는군. 미안하군.
  여보! 설 센다고 엿을 꼴라고 단술(감주)을 안치고 따스한 마루에서 이불을 꾸미고 이렇게 방 안에서 호젓이 펜을 들었답니다.
  시화는 아침 먹자 놀러 갔고, 미애도 아이들 따라 놀다가 들어 와 마루에서 놀고 있답니다.
  여보! 이 달도 2일 남았나 보다. 좋아요. 빨리 가야지. 오늘 아침엔 눈을 뜨고 누워서 달력을 보며 이제 설이 9밤 남았구나 하고 혼자 말로 했는데 시화가 옆에서 듣고 “이제 아빠 온다” 하고 소리치는군. 마음 속으로 고대하고 기다리는가 봐.
  여보! 보고싶지만 참고 기다릴게. 건강히 잘 계시다 오세요.
  여보! 구정공세가 있을 거라는 신문보도--- 오시는 날까지 조심하세요. 당신도 그러 한다 했지만?우리도 튼튼한 몸으로 당신을 맞을게. 당신의 튼튼한 팔로 꼭 안아도 부스러지지 않게---
  여보---! 그냥 불러 봤어. 그럼 오늘도 하느님의 도움을 빌며 이만 그칠게요.
당신을 보고파 하는 당신의 옥이가 1. 29

  2월 10일 경에 이원에 가까 하는데 이원으로 편지 해 줘요. 집에도 가끔 해 주시고요. 아버님께

'70년 1월 29일 고국편지에 첨부된 시화 그림
아빠가 올 때 사 왔으면 하는 장난감을 그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