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5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같이 온 따블빽 동기들이 곧 돌아가게 된다고 마지막 귀국 준비에 무척 분주하군. 난 늦게 간다고 맘 속으로 결정하고, 당신에게도 알려 이미 기정사실로 돼 있지만 (그래도) 어쩐지 나만이 왜 더 남아 있어야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 누굴 원망하기 전에 (나)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는 것 같애. 더구나 늦바지에 베이스 재건이라는 문제에 부닥쳐 심신이 좀 피로하군. 하기야 내 집을 더 잘 짓는 데야 조금 고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불평이야 있을 수 있겠나 만(없겠지만) 맨주먹으로 이 거창한 공사를 하라고 맡겨 만 놓으니---
  여보! 처음부터 불평이군. 그래도 튼튼히 잘 있으니까 염려 말어. 중대에는 중대장 혼자 있는 게 아니니까--- 힘쓰는 장정이 백 수 십 명이나 있으니 말야. 이들을 어떡하면 한데 뭉쳐 한마음으로 일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야.
  때로는 삽 자루를 쥐고 땅을 파고, 폭파로서 바위를 깨고, 불도저 뒤를 따라 다니곤 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해치우겠다는 뜻이 아니라 부하들을 (솔선수범으로)이끌어가는 방법의 하나이겠지.
  여보! 당신이 시화, 미애가 재롱 피우는 모습을 적어 왼 정말 빨리 보구싶다. 그리고 당신도--- (당신은) 한 해를 기다림 속에 쪽 여위지나 않았는지 몰라---
  부모님들도 주야 걱정하고 계실 텐데--- 하루 속히 걱정을 덜어 드려야 할 텐데. 가뜩이나 농사일에 시달려 건강이 좋지도 않으신데--- (용에 넣을) 약 잡수어 보려고 지어 왔다니--- 먼데서 간건데 좋은 효험이 있어야 할 텐데---약이 좋고 못한 것은 그 약효를 보아야지 알지.
  여보! 위문품으로 오는 대중잡지에 틈틈이 피로회복제로 얘기들을 읽었는데 돈 많은 집 주부가 바람 나서 가정이 파괴되는 류의 얘기가 가장 많군.
  그러니까 부(富) 만이 가정의 행복을 가져 오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 되겠지. 정신적으로 결합되고, 서로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가정은 건전하고, 행복 된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나 봐.
  미애가 글씨를 쓰고, 그림을 보고 흉내를 내고 한다니 굉장히 컸나 봐. 눈을 감고 간단히 생각해 볼래도 떠 오르지 않는군. 다만 시화가 그만할 때 하던 짓들이 생각나는군.
  대구 남실이네가 잘돼 나간다니 다행이야. 풍족하지 못한 시골에서 자랐으니 출가 해서라도 잘 살아야지.
  귀국 환영을 위해 많이 오지 않는 게 좋겠어. 하루라도 빨리 만나는 건 좋지만 오가며 고생이고 또 항해일정도 일정하지가 않아 도착 일자도 늦고, 빠르고 한가 봐.
  도착하자 마자 집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9보충대에서 수속들을 하느라고 2-3일 대기하나 봐. 그렇지만 여보! 당신은 와야지? 아이들이 있어 고생이 많을 텐데.
  여보! 무슨 말들을 써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여기 못다 쓴 말들은 만나서 얘기 하자구. 참 당신은 초저녁 잠이 많아 얘기 듣다 말고 콜콜 잘까 봐 걱정이다. 여보! 그래도 좋아.
  날씨가 꽤 춥다고들 신문에 나는데 지금이 한창 고비일 꺼야. 이 추위가 서서히 풀리고 앞산 응달의 눈이 맥없이 녹아 흐른 사이에 진달래가 만발할 즈음 --- 여보! 우리들에게는 지금까지에서 가장 반가운 때가 닥아오고 있어.
  여보! 나도 역시 옥일 한없이 사랑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 영 씀
고국 편지 ('70. 1. 31)
보고싶은 에게
  낮에 온 95신을 다시 읽어보며 당신을 보고싶음도 달래려고 펜을 듭니다.
  겨울 날씨 치곤 매우 따뜻한 날씨, 봄이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도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당신의) 편지가 도착 해 반가웠지요. 제대로라면 곧 당신이 도착할 텐데--- 이미 각오했던 것이니 다시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당신 편지를 보니 생각이 안 날 수 없군. 그래도 만날 날이 가까워 오니까?
  여보! 지난 일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주해요. 지난 날은 이미 간 것이고 남은 기간 조심하셔요. 요사이 구정공세니 뭐니 하니 걱정이 되는군. 라디오를 통한 월남 소식들--- 혹시나 아니 전과 결과가 나오면 이번에도 작전을 안 나갔을까 하고 궁금해 하지.
  여보! 옥인 쌀밥 먹고 살도 찐 것 같아. 당신이 와 보면 알 테지만--- 양 옆에 시화, 미애가 깊이 잠이 들었군. 미애는 깍쟁이 같이 악을 쓰며 대들 땐 웃음이 나와 죽겠군. (다른) 아이들 한테 욕을 배워서 큰일 났군. 말도 제법 잘 해요. 노래도 흉내를 곧잘 내고--- “나의 살 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렇게 완전히 다 하지는 못해도 2/3 쯤은 하지. 각종 노래들도---
  당신이 와 보면 알겠지만 바람과 태양에 끌어서 아이들이 여름같이 까맣게 탔어요. 당신이 오면 우리 내 식구는 비슷할 지도 모르겠군. 나 당신한테 예쁘게 보일려고 가꿔야지
  집엔 다 편해요. 당신이 항상 아껴주고 염려해주는데---
  여보! 당신 생일, 미애 생일도 몇일 안 남았군. 조용히 지나 갈 테지. 내 마음 속으로 축하하고--- 당신의 손을 꼭 잡으며 미애 낳던 때가 생각이 나는군. 시화가 안타까워 손을 붙잡아 가며---
  여보! 2月 10日경에 이원 갈려고 하는데 가게 되겠지. 못 갈 별다른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당신 편지를 못 볼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 늦게라도 볼 수는 있지만 갑갑해서--- 이원으로 편지 해 줘요.
  이 달도 2일 남았군. 빨리 달력이 넘어 가야지. 시화는 달력만 보면 3장만 넘기면 아빠 온다고 해서 세고 있는데---
  여보! 그 땐 꼭---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당신이 올 날을 생각하니--- 그 동안이 염려가 돼서 그렇지.
  여보! 우린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랑해가며 살자고--- 그럴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없으니까. 서로가 노력하고 협조하면 되겠지.
  여보! 정말 나도 당신을 한없이 사랑한다고--- 여보! 자꾸만 불러보고 싶고, 보고싶어. 이렇게 애타게 보고싶을 땐 왜 그리 시간이 안 가는지 모르겠군.
  여보! 또 곧 쓰기로 하고 이만 그칠께요. 당신의 모든 일에 행운이 오기를 --- 여보! 안녕---
당신을 그리워하는 옥이가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