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6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난 당신에게 가는 (나의) 편지만 시일이 늦어지나 보다 했는데 내게 오는 (당신) 편지도 늦어지는군. 오늘도 열흘 전에 쓴 편지와 한 달 전에 쓴 편지가 똑같이 들어왔군.
  그 동안 시화, 미애 잘 놀고, 당신도 초조한 가운데서도 잘 잇다니 다행이야. 부모님들도 무고하시고, 동생들도 각기 제 맡은 데로 잘 해 나가고 있는 모양이군.
  여보! 나두 잘 있어. 베이스 작업과 각종 작전이 겹쳐 정신 없이 바쁘지만 일의 순서를 찾아서 차근 차근 당황하지 않으니까--- 이젠 월남 근무로서는 고참이라서 별로 힘드는 것 없어. 작년 지금쯤 호기심과 복잡한 심정으로 이 땅을 밟을 때는 모든 게 신기하고 그래도 전쟁터라니, 듣고, 영화에서 본 것으로 추측만 해서 두렵기도 하더니--- 마침 그 때가 구정공세 기간이라 좀 복잡은 했지만--- 한 해를 지나 그 돌이 닥쳐왔으니 또 좀 복잡하겠지.
  그러나 별 것 아니야. 여보! 신문에서 많이 떠들더라도 걱정하지 말어. 맹호 중의 비호 지역은 (베트콩이) 까불 근거지가 없으니까. 그리고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화가 벌써 썰매를 탄다고? 짜-식, 참 많이 컸나부다. 아이가 몸집이 큰 편이라서 (썰매 타는데) 둔할런지도 몰라. 각종 운동을 장려해서 운동신경을 발달시켜야 할 텐데--- 특히 겨울철에는 스케이트를 가르쳐야지. 꼬마삼촌이 잘 데리고 다니겠지만 혹시 깊은 물에 빠질라. 여보! (시화가) 밖에 나가 놀더라도 자주 찾아 봐.
  미애가 그렇게 얄밉게 놀아? 벌써 따릴 부칠 줄 알고--- 여보! (아이들을) 일년을 안 봤더니 아직 젖먹이로만 생각되는데 당신이 고생하면서 아이들 많이 키웠나 봐.
  여보! 아침 늦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데 난 지금도 저녁에는 늦게 자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게 되는군. 요사이 몇 주 간은 그렇지도 않았지만 노력해서 내가 잠 버릇을 고쳐야지.
  그리고 이 다음에는 아이들 오락기구도 마련 해 줘서 독립적으로 놀고 또 자고 하는 독립성을 길러 주도록 노력해야지.
  모래부터 꽤 큰 작전에 나가게 돼. 별로 염려되는 것은 없지만 신중을 기해서 준비하고, 작전에 임해서도 고참으로서의 위신을 위해서도 신중과 자신력을 가져야지. 나가 봐야 알겠지만 별로 길 것 같지는 않으니 이 편지를 당신이 받을 때는 푸짐한 성과와 이상 없이 돌아 왔다는 편지가 중간에 떠 있게 될 거야. 내가 대린 부하는 나약한 노루 새끼가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어.
  TV를 찾았다니 다행이군. 꾀 오래 걸렸는데--- 이 다음 시화가 좋아라고 들여다 보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군. 그 위에 이쁘장한 시계-라디오를 올려 놓고 모양을 내 보려고 한 개 샀지. 한쪽에서는 짹각거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쿵쾅거리고---
  석희가 1월 16일에 졸업식을 한 모양인데 마침 그 날 석희 편지가 한 통 와서 알았지. 졸업 후 서울에 간다니 당신이 잘 가르쳐 줘야겠어. 사회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니까.
  여보! 이 달도 한 일주일 남았군. 빨리 날자가 가야지.
  오늘은 이만 쓸게.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70. 2. 2)
여보! 당신에게
  오늘이 당신과 옥이가 떨어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군요. (작년) 오늘 새벽 아침부터 김포에서 아이들 데리고 나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침엔 일찍이 잠이 안 와 1년 전의 오늘을 생각하며 당신이 올 날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니 시간이 아주 안 가는 것 같고--- 2달 반이라 하지만 아직도 멀은 것 같으니---
  마음 속으로 몹시 서운했던 당신과 헤어졌던 그 날, 어설프게 해 보낸 것 같은 마음이 항상 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답니다.
  여보! 만나는 날엔 다 보상해야 할 텐데--- 노력해야지. 여보!---
  4일만 있으면 구정이 닥치는군. 성인들에겐 귀찮은 명절 같이 느껴지기만 해요. 우리는 오늘도 흰 떡을 빼고, 어젠 시화가 석희고모와 월곡에 티밥(뻥튀기) 튀러 갔는데 아직 안 오는군. 외가집에 자는가 봐. 내일은 두부를 해야겠고--- 몇 일 간 분주하게 다녀야겠군요. 그러나 그리 춥지가 않으니까 염려 말아요.
  미애는 옆집에 놀러 갔습니다. 말도 제법 잘하고--- 요사이는 말하는 것이 예뻐 집안 식구들의 사랑 속에 잘 논답니다.
  여보! 요사이 구정공세라고 하는데 조심해요. 무엇을 해도 한 구석엔 항상 당신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여보! 오는 날까지 건강히 계시다 만나자고요.
  여보! 우린 다 건강해요. 아이들도 아주 건강하게 잘 놀아요. 4일 날은 큰도련님도 설 세러 온다고 해요. 당신만 빠졌군. 당신이 오는 날엔 다 모일지도 모르겠군.
  여보! 또 쓰기로 하고 오늘은 당신 편지를 기다려 봐야지. 여보!--- 그럼 안녕---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