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7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오늘 또 편지 두 장이 한꺼번에 들어 왔군. 쓴 날자는 2주일쯤 차이가 있는데---
  30년래 혹한이라고들 하는데 추워서 어떻게 지내나. 본국에 휴가 갔다 돌아오는 녀석들은 내내 감기로 앓았다면서 아주 홀쭉해서 돌아 오는군.
  문경에 있는 녀석은 어떻게 앓았는지 귀대 날자도 며칠 늦었으니까. 여보! 그런 걸 보면 (당신과 아이들이) 보구싶곤 하지만 아주 겨울을 쉬고 4월 달에 가도록 한 것이 잘 된 것 같애.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내일 집결해서 3일 후에 출발 할텐데.
  여보! 당신과 아이들이 아직 감기도 앓지 않았다고 큰 소릴 했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다행이 없지만 당신 말같이 겨울이 다 가도록 계속 조심해서 아무 탈 없어야 돼.
  여보! 시화가 같은 또래들과 어울려 불장난을 했다고? 그 말 들으니 옛날 (나의) 어린시절이 회상되는군. 기억에 가물 가물 하는--- 나도 지금 시화처럼 그런 짓(불장난)도 한 걸로 생각 돼. 그 말랑은 겨울마다 태워 먹는걸.
  (시화가) 참 많이 컸는가 봐. 동무들과 어울려 안 가는 데 없이 뛰어다니는 모양이지. 썰매를 탄다고 하니 정말 몰라보게 컸나 봐. 그건 당신의 고생이 밑거름이 된 거지 뭐. 여보! 고생했어. 여보!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스럽지?
  당신의 편지에 조금씩 적어오는 것 가지고는 아이들이 얼마나 컸고, 어떻게 변했는지 통 상상이 안 되는군. 멀지 않아 만나면 감탄이 자꾸 나오겠지.
  서울서 정영이 한테서도 오늘 편지가 왔군. TV찾아 영옥이네에 맡겼다고--- 그리고 (저도) 근무에 충실하다고---
  내일 작전을 위해서 나가는데 진짜 작전 같은 건 한 5일쯤 되지만 적의 구정공세를 대비해서 한 동안 나가 설치고 다니자면 아마 20일쯤이나 걸려야 기지에 돌아 올 것 같애. 나가 봐야 알겠지만 도중에도 가능하면 쓰겠지만 아무래도 좀 띄엄 띄엄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 별 것 아니니까---
  저녁에 사단(사령부) 박대위(박용원대위) 한테서 전화가 있었는데 멀어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아마 잘 있다고 그러는가 봐. 그리고 육사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이제야 월남에 온 동기생이 있나 봐. 여보! 그에 비하면 난 정말 다 한 거지 뭐. 그도 아마 중대장 하러 왔을 텐데--- 여보! 나도 늦기는 했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옳아.
  내 후임은 이미 골라 놨으니 3월 하순이면 깨끗이 인계 해 주고 사이공 구경(전투관광이라 했음)이나 하고 돌아 오면 곧 당신에게로 가는 거야. 여보! 너무 초조하게 그러지 말어.
  그리고 나의 최대 성의를 다 할 것이고 노력하겠지만 너무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기대에 어긋나면 실만도 클 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되는군.
  어쨌던 월남 근무를 통해서 다른 뭣보담도 당신은 나에게, 난 당신에게 이 세상에 뭣보다도 귀하다는 걸 안 것 같애. 그리고 당신만을 사랑하고--- 한 없이 말야.
  초조하면 그럴수록 시간이 느린 것 생각 되니까 다른 것에 취미를 부칠려고 노력해 봐. 예를 들면 아무거나 읽는다든지--- 내가 육사에서 배우던 한국전쟁사 같은 거라도---
  여보! 작전이 길어지면 도중에라도 쓸게. 짧아지면 간단히 끝내고 돌아와서 쓰고---
  여보! 이만 그칠란다.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70. 2. 5)
여보! 당신에게
  내일이 구정인가 봐요. 몇 일간 좀 바쁘게 다닌 것 같군요. 이젠 추위도 다 갔다는 소식들. 봄이 일찍 온다니 이제 겨울도 다 간 모양이에요. 어제가 입춘이었고--- 우리집 기둥에 ‘立春大吉’ 등 여러 문구들이 붙었군요.
  여보! 작전을 나간다고 했는데 무사히 돌아 왔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당신이 작전 나간 것이) 아마 라디오를 듣고 마음이 어수선하던 몇 일 전이었던가 봐요.
  올 설은 조용히 지나갈 것 같군요. 서울 큰도련님도 당신이 오는 4월 달에나 오겠고, 대구 남서방네 식구들도 바쁘고, 어린 아이들 데리고 오기가 그런가 보고, 남은 우리 식구만이 조용히 설은 지나겠군.
  당신이 올 날이 우리 집은 즐거운 명절이 될 꺼에요. 여보! 한 달 남짓만 하면 중대장도 끝마치겠지. 이제 2달 남짓 기다려야겠군. 차츰 차츰 가까워 오니 기쁨이란 말 할 수 없군요.
  오늘이 양력으로 미애 생일인 것 같군요. 시골은 양력을 외면하고 사니까 아무 날도 아니겠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지. 난 앞으로 양력으로 (아이들) 생일을 보내게 해야지.
  설도 양력으로 지내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관공서에서 3, 4일씩 휴가를 했고,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휴가를 이용해 모두 고향을 마음 놓고 가 볼 수 있는 혜택들도 있고 한데--- 참 옛날의 풍습, 두고 두고 내려 온 습관들을 버리기란 어려운 모양입니다.
  시화, 미애도 다 잘 놀아요. 부모님도 안녕하시고, 옥이도, 아가씨들도 집안 식구들은 다 잘 있답니다. 지금 양 옆에는 미애, 시화 두 놈이 장난치느라고 수선을 피우고 있군. 지금은 새벽이에요. 오줌도 잘 안 싸던 미애가 (오늘) 새벽엔 오줌을 싸서 난리를 피는군.
  여보! 지금 당신은 곤히 잠 들었을까. 혹 작전을 나가 고생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군.
  여보! 오늘도 바쁘게 보내야겠군요. 내일부터는 먹자주의로 날을 보내고---
  당신의 편지에 우리들이 살 집을 구상하는 게 즐겁고 재미가 있어? 옥이도 마찬가지지. 항상 머리에 보고싶고, 당신이 오면 어떻게 하고 좀 재미 있게 잘 살아 봐야지. 방은 어떻게 구상해 보고--- 재미 있고 행복한 생각들이지.
  여보!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지. 보고싶지만 꾹 참고 기다릴께요. 여보---! 보고 싶어라.
  이만 그치고 구정에 놀며 또 쓸게요. 10일 경에 이원에나 가봐야지.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