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7 호 )
(제97신이 중복되었음)
옥이 당신에게
  여보! 작전 나간다고 쓴 편지가 아직 당신 손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텐데 중대원 전원이 무사히 돌아 왔다는 글을 쓰게 되는군. 아무런 이상 없이 말야.
  여보! ‘이상 없다’는 말 속에는 모든 것이 포함 되어 결과가 그렇단 말이야. 어떤 병사는 땀을 얼마나 얼렸느니, 물이 얼마나 먹고싶었느니, 또는 등골에 식은 땀이 오싹 나도록 긴장했었느니 하는 등등의 병사 개개인의 일과 중간 중간에 있었던 상황은 모두 (그 속에) 녹아서 흡수된 말이라고 할까.
  이번 작전은 초기에 몹시 긴장했었지. 적이 대공사격을 한다고 헬리콥터가 (중대원을 태운 채) 무려 한시간을 넘겨 싣고 공중에서 돌았으니까. 그러니까 월남에 온 후로 최장시간 헬리콥터를 탄 셈이지.
  중간에는 별 것 없었지만 마지막 이틀 아주 심한 정글 속에서 장거리를 행군하느라고 혼 났지. 언제 어디서 어떤 적과 맞붙을 지 모르는 판에--- 맹호들은 작전을 하면 적과 부디치기를 무척 기다리지. 그러면서도 불리한 입장에서 부디칠가 봐 조마 조마 한 거지.
  당신은 잘 알아듣지도 못할 작전 얘기를 해서 싱겁겠군. 그 동안 당신도 아이들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안녕? (작저) 나가기 전날 (편지가) 두 장이 한꺼번에 왔더니 5일이 지난 지금까지 한 장도 안 와 기다리고 있어. (작전에서) 철수하면서 책상 위에 와 있을 당신의 사연들을 차 안에서 줄곧 생각하면서 왔는데---
  여보! 당신도 나도 마찬가지지만 새로 내 건 카렌다도 (첫 장이) 거의 마지막에 왔군. 삼일만 지나면 떨어져야 하니까. 그리고 다음 장은 짧아서 좋고---
  구정이 가까워 오는 모양인데 별 것 아닌 것들이 벼르는지 바빠지는군. 연례적으로 구정공세라는 걸 해 왔으니까 이에 대비해야 하니까 그런 거지 뭐. 큰 일 없을 거야. 별 것 아니니까. 신문들이 많이 팔려고 톱 기사로 장식을 하니까 요란스럽겠지만---
  요사이 날씨가 작년에 처음 왔을 때 하고 비슷해 지는군. 꼭 1년이 됐으니까--- 밤으로는 서늘하고, 낮에 볕은 따갑고--- 우기 철을 지내면서 그래도 다소 얼굴이 희어졌는데 갈 때까지 (이런 날씨가) 두어 달 계속하면 또 깜둥이가 되겠어. 하기는 그래야 월남서 돌아가는 폼이 나겠지만---
  여보! (그긴) 아직 날씨가 꽤 춥지? 작년을 기억하면서 생각해보면 2월 초하룻날이나 2일 날 김포에서 무척 추워서 했으니까. 2월이 지나면 봄기운이 돌고, 내가 돌아갈 때쯤은 완전히 봄이라 더운 나라에서 돌아가 감기 걸릴 염려는 없겠지 뭐. 그것도 큰 문제야. 그 때도 동내의를 당신이 가져 와야 할지 몰라.
  그래, 시화는 요즈음도 썰매 탄다고 (썰매를) 들고 나서나? 날이 풀리면 얼음이 깨지기 쉬우니까 아주 조심해서 뒤를 돌봐야 돼. 하긴 큰 냇물에는 안가겠지 뭐. 골목쟁이 도랑에서 놀겠지? 혹시 꼬마삼촌 따라 갈지도 몰라. 못 가게 하고 감독 잘 해. 여보!
  미애는 계속 아랫목쟁이야? 기집애니까 엄마 옆에서 재롱만 늘겠군. 빨리 고 재롱을 보구 싶어.
  석희는 졸업하고 서울로 갔나? 취직에 너무 초조해 하면 안 되는데--- 취직도 골라 할 수 있는 때는 더욱 못되지만--- 너무 초조해 가지고 아무데나 해서는 안 될 텐데. 하기도 힘들겠지. 여보! 서울에서의 행동이라던가 하는 것을 잘 코취 해 주구려.
  월남 근무 1년은 이렇게 해서 넘어 가는 거고, 이제 중대장 1년 근무도 휘나래에 속하나 봐. 끝까지 잘 해야지. 그리고 뜻뜻이 당신과 아이들에게 돌아 가야지.
  여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당신도 꾹 참고 그 날을 기다리자고--- 여보!
  이번 작전은 다리가 뻐근하군. 좀 일찍 자야겠어. 여보!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그리며 영 씀
고국 편지 ('70. 2. 8)
여보! 당신에게
  구정을 지난지도 2일이 지났나 봐요. 당신만 빠지고 집안 식구가 다 모였답니다. 당신도 (연장하지 않고) 정식으로 왔으면 같이 지냈을 텐데. 설이라 하지만 별다른 흥미가 없어. 부엌 사람은 다른 때보다 몇 배나 (부엌을) 드나들어야 되고--- 아이들의 설이지.
  미애는 석희 아가씨가 손으로 빨간 세타를 예쁘게 짜 줬답니다. 양말까지. 시화는 쯔-봉만 서울서 올 때 하나 사 줬지. 그래도 다른 아이들 보단 잘 입은 편이지.
  오늘은 큰도련님이 상경한다고요. 석희 아가씨와 함께--- 취직 자리는 없지만--- 옥이도 13일 날이나 이원에 가 봐야겠어요. 이왕이면 당신 생일이나 미애 생일이나 지나고--- 뭐 별 것 해서가 아니라 집에서 마음 속으로라도 축복하고 지나게---
  여보! 날자가 하루 하루 만날 날이 가까워 오니 여간 기쁘지 않아. 이제 2달 남짓 남았군. 그 기쁨이란 형용할 수 없지요.
  시화는 당신 이야기만 하면 입을 벌리고 빙긋이 웃으며 좋아하지. 닭이고 무엇이고 아빠 오면 잡아 먹자나. 어제도 큰도련님에게 닭을 한 마리 잡아 주는데 남은 닭은 아빠 오면 잡아 먹자고 하는군.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아이들 하고 어느 땐 월곡까지 가서 외갓집에 가 배고프다고 먹을 것 달라고 하고, 어디 개울에 가서 빠져 가지고 오기도 하고, 안 가는 데가 없어요. 아주 개구쟁이. 아이들 한테 우리 아빠가 좋은 장난감 많이 사 오면 빌려준다나. 당신 닮아서 마음이 좋은가 봐.
  미애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안 식구들의 귀염둥이. 노래도 하고, 깍쟁이 짓을 하며 재롱을 피우지. 얄밉게--- 그런데 시골이라 바람과 물이 세서 아이들 피부가 안 좋아요. 아이들 바라보면 속이 상할 때도 많았지.
  여보! 작전을 나간다고 하더니 무사히 돌아 왔는지요. 편지가 몹시 기다려집니다. 받은 지는 4일이 되었지만---
  올해의 토정비결을 봤더니 당신과 난 참 좋아. 정말 당신이 오는데 안 좋을 수 없지. 난 생에 제일 좋은 해가 될지도 모르겠지.
  여보! 이렇게 보고싶어하고, 날자를 헤아릴 땐 2달이라 하지만 아직도 멀은 것 같아.
  여보! 보고싶지만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그럼 이만 그쳐요.
당신을 보고싶어 기다리고 있는 옥이가 2. 8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