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8 신 )
옥이 당신에게
  월남은 밤을 다스리는 자가 승리할 지도 몰라. 전쟁 치고는 아주 미지근한 전쟁이야. 아마 지금쯤이나 좀 있으면 신문들에는 대문짝 만하게 월남 구정공세에 대한 기사들이 실리겠지. 하긴 그걸 대비해서 이렇게 야지에서 (개인) 천막 치고 밤을 우리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나와 있지만 아직은 별 일 없을 것 같애. 오히려 있길 바라고 잇지만---
  별 일 없으니까 한가하군. 어제부터 시간이 무료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 마침 ‘수허전’을 가지고 나온게 있어서 읽는데 옛날 삼국지를 읽을 때 못지않게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있어.
  여보! 오늘 당신 소식을 받았지. 당신은 1월도 반이 지났다고 남은 석 달을 꼽고 있는데 그 편지를 받은 나는 1월도 오늘로 마지막이니 당신을 만날 날이 두 달 반으로 계산하고 있어. 그러니까 당신과 난 15일의 시간거리에서 서로 애타고 있는 셈이지.
  구정이 가까워 오는군. 산골에서 뭐 특별한 게 있겠나 만 설은 아이들 한테 기다려지는 명정이지. 시화도 지금쯤 설을 무척 손꼽고 있겠군. 올해가 시골서 지내기는 처음이니까 잘 모르겠군.
  여보! 아이들도 당신도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이 잘 있다니 또한 다행이야. 마찬가지로 나도 월남생활, 중대장생활의 막바지에 와서 끝맺음을 깨끗이 하고 미련 없이 당신과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려고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충실히 근무하고 또 건강에도 주의하고 있어. 별 일 없어. 오히려 고참이라는 관록이 있어 맘의 여유를 가지고 부대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할 것 없어.
  여보! 아이들 노는 모양이 아주 귀여운 모양이지? 특히 미애가 깍쟁이 같이 해 가지고 재롱이 대단한가 봐. 빨리 날자가 지나 녀석들을 앞에 세우고 당신과 같이 웃어봐야 할 텐데, 곧 (날자가) 지나가겠지 뭐.
  내일부터가 2월이니 날씨도 곧 풀리겠지. 하기는 작년에 당신과 헤어지려고 서울서 묵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추위가 다 지나려면 한참 있어야 할 거야. 당신 말대로라면 그래도 용케 추위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감기도 앓지 않고 한 겨울을 넘기게 되니 다행할 뿐 아니라 당신의 노력 결과이겠지. 여보! 고마워.
  그리고 어떻게 1/4분기 국내 봉급은 지금쯤은 받았어야 할 텐데? 받거든 알려 줘. 당신의 계획대로 그것으로 적금을 넣는다면 알맞게 나와야 할 텐데. 그리고 12월분 수당에서 46$ 송금했고1월분에서는 하나도 부치지 않으니 그렇게 알어. 여보!
  3월 중순경이나 하순경에 사이공에 구경 갈 텐데. 구경도 하고, 시화, 미애 장난감이라도 하나 사야지. 가 봐야 알겠지만 뭘 살까 몰라. 그리고 월남 물가는 몹시 비싸. 모르는 사람은 월남에는 뭐든지 싸고, 물건을 사가는 게 돈 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야.
  하기는 수단에 따라 다르지만 PX계통의 물건이 아주 매말라 버리니까 그런 거지. 새로 온 2소대장도 고국서 떠날 때 친구가 TV 하나쯤 부탁하더라나. 그러나 그건 특히 하급부대에선 별따기고 가져가는 것도 금지품목으로 돼 있어. 당신도 기대하지 말어. 혹시 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 말 한 후라이팬 쯤은 살 수 있을지 몰라. 구해 볼게. 맨날 이렇게 적을 찾고 다니니 시간도 없군.
  여보! 모기한테 뜯긴 데가 좀 가렵다. 당신이 옆에 있으면 귀찮게 할 텐데. 긁어 달라고 말야. 여보! 너무 초조하게 기다리니까 세우러도 더 느린 것 같애.
  구정 지나면 곧 내 생일이 있지. 듯 없이 32살. 여보! 당신도 나와 함께 이제 30대의 일원이 되는 거지?
  불빛이 안 새 나가도록 코딱지 만한 (개인) 천먹 속에서 후랏쉬로 비추면서 (편지를) 쓰니 불편하군. 곧 또 쓸게.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영 씀
고국 편지 ('70. 2. 10)
여보! 당신에게
  설을 지났는데 날씨가 더 추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닌 다 건강합니다.
  설에는 당신만 빠지고 다 왔어요. 대구 고모도 왔고, 아들 낳아 좋더군요.
  시화 미애도 잘 놀고, 매애는 석희고모가 (세타를) 손으로 떠서 예쁘게 입혔군.
  여보! 오늘이 1월 10일 2달쯤 있으면 당신을 만날 수 있겠군. 여보! 난 빨리 날자가 가서 당신을 만나는 아쉬움 밖엔 아무것도 없어. 아이들 건강하고---
  작전을 나갔다고 하더니 며칠 편지가 없군. 궁금한 가운데 편지를 애타게 기다려요. 여보! 잘 돌아 왔겠지?
  2월 13일 날은 이원에 갈까 해요. 거기서 좀 푹 쉬었다 와야지. 당신이 귀국할 때 아마 난 물론이겠고 어머님이나 아버님이나 한 분은 (부산에) 가실 모양이고, 대구 아가씨는 동서네 집도 갈 겸 그 때 가겠다 하는군요.
  여보! 보고싶다는 말은 넘어서 이제 만날 날이 가까워 오니까 시간-날자- 가는 것만 고대하고 있지.
  여보! 그 동안 조심해서 잘 계시다 와요. 선물 사는데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말고. 내겐 당신이 제일이니까.
  여보! 그럼 이만 쓸게요. 또 바로 쓰기로 하고---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