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99 신 )
옥이 당신에게
  한 번이 부족한 100번째의 편지를 (작년) 제1신을 띄운 오늘 그것도 좀 이상한 장소에서 쓰게 되는군. (내가) 당신에게 띄운 편지가 거의 빵카 속 아니면 정글에서 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퀴논 시가지와 부두가 한 눈에 보이는 조그마한 산봉우리에서 이니까. 그것도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여보 그간 안녕?
  월남에 오래 있으니까 별별 임무를 다 수행하게 되는군. 그저께까지는 비행장을 경계하느라고 (미군 비행장 외곽에) 나가 있다가 이른 아침에 갑작스런 폭음에 허둥지둥--- 사실은 신속하게 뛰었더니 비행장을 포격한 놈들(VC)의 꼬리를 겨우 물었지. 결과로는 한 놈 밖에 못 때려 잡았지만 윗사람들은 체면유지 됐다고 많이 칭찬하더군.

  (해설) 포격한 장소는 중대가 부여 받은 작전지역 밖이었으며, 연대에서 중대에 작전지역을 줄 때는 적의 박격포 사정거리를 고려한 모양인데 그들은 그보다 3Km 정도 더 먼 곳에서 방사포(다연장로켓트) 포탄(길이 약 2m)으로 발사대도 없이 5발씩 동시발사하도록 3열로 정열하여 3회 15발을 발사하였다.
  발사대 대신 나무로 X자를 만들어 걸치고, 갈대 줄기로 겨눔대를 세웠다. 15발이 사거리 약 8Km 날아가서 8발 정도가 활주로나 막사 근처에 떨어져 약간의 부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기억된다.
  매년 구정공세 기간 동안 푸캇 미군비행장 주변 외곽경계를 한국군이 맡으면서 이런 포격을 받아 왔는데 적을 잡기는커녕 발사한 장소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를 정확히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미 유인조 1명을 사살하였다.
  그들의 여러 가지 행동으로 보아 적은 비행장을 포격한 후 추격자를 계곡 호구로 유인해서 타격하려던 계획이었던 것 같다. 가장 신참인 3소대장(강중위?)이 약이 올라 흥분해서 와지선까지 추격하고, 계곡으로 따라 들어가려던 것을 중대장이 파악하여 즉시 추격을 멈추게 하고, 오히려 와지선에서 500m 뒤로 물러나도록 조치하였다.
  전과보고가 있자 연대장(김한주 대령?)께서 정보주임(장명복소령)을 대동하고 헬기로 확인차 현장에 나와 중대장의 상황 설명을 듣고 만족해 하며 잘했다고 칭찬 해 주었다.

  거기는 다른 중대에 맡기고, 지금은 (적이) 퀴논 시가지를 위협하기 가장 좋은 위치를 담당해서 구정공세에 대비하고 있는데 또 무슨 일은 없을는지 몰라.
  전쟁하는 나라 치고는 도시는 너무 천연스럽군. 오늘따라 망년의 기분인지 밤 늦게까지 차가 오가고, 집집마다 기를 내 걸고 야단들이군.
  여보! 그러니까 내일이 설이라는 거지. 고향에도 거의가 음력 설을 쉬니까 지금쯤 설에 쓸 음식이나 다른 준비를 하느라고 정신 없었겠군. 지금쯤은 다 되고 초저녁 잠이 많은 당신이니까 한 잠 들었는 지도 모르지만---여보! 옛부터 고향에선 그믐날 밤에 잠자면 눈썹 쉰단 말이 있어.
  여보! 오늘이 지나면 음력으로도 양력으로도 완전히 한 살 더 먹는 거지? 당신도 이젠 30대에 올라선---
  베이스에서 나온 지 한 열흘 되니까 수염이 꽤 길었다. 바라보는 동쪽은 작년 8월에 이틀 만에 열 여덟 놈을 때려잡던 격전지. 동남쪽은 퀴논시가지의 불빛이 찬란하군. 밤이라 불빛만 보이니까 아름답게 뵈지만 변소를 짓지 않은 나라의 도시 주변은 아름답다고 할 순 없지. 전쟁하는 나라니까 판자집은 물론 많고---
  여보! 아직 굉장히 춥지? 추운 게 시화에게는 썰매타기 위해서는 오히려 좋을런지도 모르지만--- 여보! 날씨가 풀릴 땐 아이들 얼음판에 가는 걸 아주 조심해야 돼.
  여보! 처음도 그랬지만 1년이 지나니 월남이 싫어졌다. 하기는 좋아서 온 것은 아니지만--- 오자마자 중대장을 했더라면 지금쯤 부산에 도착해서 당신과 아이들을 보며 ‘웃음’그것 뿐이었을 텐데---
  여보! 얼마 안 남았으니 꾹 참고 기다려야지. 당신을 만나는 날까지 긴장해서 잘 할게. 너무 걱정하지 말어.
  오징어나 김 같은 것은 소포로 해도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느라고 다 상하니까 오히려 (안 오는 게)잘 됐지. 그리고 전쟁터에서 그것도 맨 끝(말단 부대)에 와 있는 병사들에게 (소포 취급하는 사람들) 누가 그렇게 성의를 보이겠나.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심정도 당신과 마찬가지지. 미안해 할 것 없어.
  그리고 당신이 아이들 데리고 자그마치 1년을 독수공방 한 것만 해도 내겐 큰 죄를 지은 것 같은데--- 하긴 뭘 해 놓길 바래.(아내가 그 동안 해 논 것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한 말인 듯)
  그만치 아이들 똑똑하고, 이뿌게 키워 논 당신이 장하게만 보여. 그리고 몸에 익지도 않은 시골생활을 하느라고 고생한 당신에게 그리고 항상 멀리서 나의 앞을 빌어 준 당신에게 내가 뭘로 보상할까 걱정인데---
  여보! 지난 1년은 우리에게 하나의 시련으로 생각하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잃어버린 날들을 찾자구. 여보! 한 해를 허송했다면 큰 손해야. 뭐든지 배운 것이 있겠지.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여보! 곧 이원엘 가겠군 그래. 이 편지도 늦게 받게 되겠군.
  아직도 두 달 있어야 배를 탄다니 너무 긴 것 같애. 그래도 할 수 없는 일. 꾹 참고 기다려야지.
  여보! 사랑해. 안녕
월남에서 당신이 보고파 영 씀
고국 편지 ('70. 2. 17)
여보! 당신에게
  이젠 봄도 멀지 않은 모양. 학생들이 곧 학교를 가겠고, 밥상 위의 김치부터 맛이 변하는군. 날씨도 제법 따뜻하고 성급한 돈벌이로 봄나물이 나 돈다니까.
  여보 그간도 안녕? 며칠간 너무 편지가 늦었나 봐요. 이원에 온다고 법석대다 보니 이원에 온 지 3일째인데 이제 펜을 들었어요.
  홍콩감기라고 하는 거에 오자마자 걸렸군. 미애하고 나하고--- 난 이제 좀 나았고, 미애도 나아가는 셈인데 입 안이 아픈지 몹시 보채는군. 입에 바르는 약이나 사서 발라 줘야지. 걱정 말아요. 이젠 다 나았으니까.
  부항 집엔 다 편해요. 대구 남실이도 왔다가 나하고 같이 나와 갔고, 다 무고하니까--- (시골) 집에 있을 땐 그곳엔 아직 감기가 흔하지 않았는데 여기 오니까 모두 야단들이군. (시골) 집에 있었으면 안 걸렸을 지도 모를 텐데---
  시화는 여기 와서도 여전히 잘 놀아요. 아이들과 지금도 놀러 가고 없고, 미애는 옆에서 잠들었답니다.
  이원 어머님도 평안하시고 옥란이도 학교에 잘 다니고--- 너무 걱정 말아요. 감기 때문에---올 겨울은 감기 안 하고 잘 지내는가 했더니 늦으막에 걸렸군. 그래도 난 심하게 욕보지 않았는데 미애가 좀 욕을 본 셈이지. 그래도 약을 서둘러니까 곧 나아요.
  여보! 당신을 만날 날이 차츰 가까워 오는 것 같군. 집에 있을 때 보다 보내는 날의 실증을 잊을려고 왔는데 그런데 당신 편지를 못 봐서 궁금하군. 부쳐달라고 했지만---
  여보! 보고싶지만 참고 기다릴 수 밖에 없겠지. 얼마 안 있으면 만날 수 있으니까. 여보! 오는 날까지 조심해 건강히 계셔야 돼요.
  여보! 미애가 깼군. 이만 쓰고 또 쓸게요.
당신을 보고싶어 하는 당신의 옥이가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