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02 신 )
옥이 당신에게
  여보! 여긴 정글만 눈 앞에 전개되는 작전지역이야. 낮에는 찌는 듯 하지만 밤에는 추워서 잔뜩 오구리고 자느라고 허리가 아플 정도. 해발 800m가 넘는 고산. 작전에 들어온 지 나흘이 지나고 있군. 나도 중대원들도 아무 이상 없고---
  물론 ‘이상 없다’는 말 속에는 하루도 몇 번씩 (땀에) 옷이 흠뻑 젖도록 정글과 싸우면서 눈에 불을 켜고 적을 찾는 정도의 고생(?) 쯤은 포함 되지.
  여보! 당신은 지금쯤 이원에 가 있겠군. 아이들과 함께---
  어제와 오늘 헬리콥터 편에 올라 온 편지 석장은 잘 받았고 하지만 설 음식 빚느라고 정신 없는 소식이니 이미 열흘 전 --- 그래도 빨리 온 셈이야.
  지금은 이원에서 진짜 친정 온 기분을 맘껏 느끼고 있겠군.
  여보! 아이들과 당신이 튼튼히 잘 있고 또 미애는 아주 재롱이 굉장한 모양이지? 얼른 나도 그 재롱 속에 묻혀 함께 웃고 싶다.
  이 달도 꼭 반을 지냈군. 이 작전이 끝나면 이 달도 다 가. 작전을 나오니 한결 날자가 잘 지나가는 것 같애. 온 신경을 ‘적과 나’에 쓰니까 그런 모양이지. 하지만 잠자리에 들면서 당신과 아이들의 영산을 그리며 잠드는 거야.
  여보! 겨울 바람에 아이들이 새까맣게 돼서 만나면 나와 비슷할 것이라구? 아이들이야 아무렴 어때. 그러나 당신은 안 돼. 난 당신이 고생하느라고 새까맣고 홀쪽 해 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으면 다행이야.
  난 정말 새까맣게 됐어. 피부만 그렇다면 쉽게 희어지겠지만 피부 속까지 그렇지 않을런지 몰라. 너무 심한 걱정일까.
  여보! 시화, 미애에게 일년을 두고 약속해 온 선물이 걱정이군. 뭘 사다 주면 제일 좋아할까? 과자야 전 번 보낸 것 같은 것은 많이 있어. 가져 갈게. 뭘 사다 줘야 흥미롭고, 교육적이고 또 오래 가지고 놀까 해서 말야.
  지금은 생각만 할 뿐 살 곳도 시간도 없어. 3월에 사이공 가거든 사야지. 미애는 피아노 모양으로 된 실로폰을 사다 줄까.
  여보! 이런 걱정은 정말 즐거운 걱정이야. 내게도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건 나도 멀지 않아 당신과 아이들에게로 돌아 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여보! 이원은 언제까지 있을래? 한가한 때니까 아무래도 좋지. 국내 봉급을 걱정하더니 마침 잘 됐군. 그 액수면 맞을 거야. 가족수당까지 합쳐서인 모양이지?
  당신은 한 장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떠벌리는 신문을 그냥 믿는 모양이지? 월남의 구정공세라고 대문짝 만한 글씨가 신문들에 실렸지? 아무것도 아니야. 기껏 비행장에 (로켓트) 포탄 몇 발 날리는 정도니까. 오히려 지금은 적의 소굴이 맹호들의 불붙는 눈에 박살 나고 있으니까.
  여보! 내가 너무 큰소리 하는 것 같지? 그렇지만 난 지남 일년간 배운 것이 ‘조심한다는 것’인지도 몰라. 당신을 품에 꼭 껴 안고, 아이들에게 뽀뽀 해 줄 그 날까지 한시도 방심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어.
  오히려 당신이 몸 조심 해서 건강하고 그 위에 이쁘고---아이들도 계속 튼튼하게--- 우리 서로 만나 얼싸 안으며 만나자고---
  여보! 날이 어두워지는군. 내일 헬리콥터 편으로 (편지가) 내려 가겠지만 언제쯤 (당신) 손에 쥘지 몰라. 좀 늦게 되겠군.
  이만 자고--- 내일을 위해서---
  너무 자주 쓰니 맘과 펜이 하나가 되지 않는군. 당신과 아이들이 보구싶다고 말야. 그리고 한없이 당신을 사랑하구---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을 보고파 영 씀

  (시골)집으로 보낸다고 써 놓고 봉투를 쓰다 보니 이원으로 보내야겠군. 이원의 어머님과 옥란이도 한 겨울 지나는데 별고 없으신지?
고국 편지 ('70. 2. 26)
여보! 당신에게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었나 봐요. 겨울 동안 우량이 적었더니 한꺼번에 비로 내렸나 봅니다.
  여보! 그간도 안녕? (시골) 집에서 오던 날 당신의 편지를 받고 한 장도 못 보니 답답하기 말 할데 없군요. (시골) 집엔 왔을지 모르지만 부쳐달라고 했는데 아직 오지 않는군. 누구를 탓해야 할지. 여보! 몹시 궁금하군.
  아무런 외부 소식이라곤 없으니까 몇일 간 두 아이 감기에 시달리다 보니 밥 맛이 달아나는 것 같군. 그렇지만 두 아이들도 건강하고 옥이도 잘 지내요.
  어머님도 옥란이도 다 무고합니다.
  지금 미애, 시화가 옆에서 옥란이와 잘 놉니다. 미애는 긴 머리를 잘라 줬더니 더 예쁘군요. 얄밉게--- 당신도 와서 보면 아주 예뻐 할 거에요. 시화도 개구쟁이지만 튼튼하니 잘 놀고, --- 요번에 독감이 걸렸으나 빨리 약을 써 다 나았고--- 여보! 걱정 말아요.
  (시골) 집에선 아직 소식을 모르겠군요. 모두 무사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보!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지만 나날을 세어보면 아직도 멀은 것 같고, 지난 일년 동안 기다리던 생각을 하면 코 앞에 닿은 것 같기도 하군.
  여보! 얼마 안 남았지만 조심하셔요.
  시화는 “아빠 하루 밤만 자면 와?” 하고 종종 묻곤 하는데 어떻게 설명할 지 당황할 때도 있답니다. 당신 말 같이 “꽃이 피면 온다”고도 하고, 달력을 펴 놓고 설면도 해 주곤 한답니다.
  미애는 “아빠 어디 갔니?” 하고 물으면, “얼남” 갔다고 말을 하는군. 시화가 하는 소리를 듣고 말을 하는군. “아빠가 무엇을 사오지?” 하고 물으면 “과자, 장난감” 하고 말을 한답니다. 곧 잘 말을 한답니다.
  여보! 아빠의 얼굴을 잘 모르는 미애한테 당신을 빨리 보이고 싶어. 미애 아빠라고--- (미애를) 안고서 당신과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는 것 같아. 두 아이가 아빠 등어리에 올라 타며 좋아 할 것을 생각하면 기쁨이 말 할 수 없어. 옥이도 옆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여보! 보고싶어라.
  여보! 당신에겐 직장과 사랑이 있지만 나에게는 사랑, 당신을 사랑하는 한가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보!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편지를 못 보니 상상도 못 하겠어요. 편지도 1달 남짓만 하면 할 수 없겠군.
  여보!--- 보고싶어. 이원에서 나날이 조용히 갑니다. 당신만을 그리며---
  여보! 또 쓰기로 하고 이만 그칠께요. 안녕---
당신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