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03 신 )
옥이 당신에게
  높은 산 정글 속에서 편지를 받는 기쁨, 또한 별미로구먼---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 소망도, 생각도 달라지나 봐. 베이스에 있을 때는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깡 기울여도 별 맛을 모르는데 어떻게 해서 콜라 한 깡 올라 온 것이 그렇게 시원할까.
  병사들도 배이스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지내도 영화를 안 뵈 주네, 뭐네 하면서 불평들 하는데 여기(작전지역에)선 고작 하루 세 끼의 레이션과 한 수통의 물로서도 하루 몇 번씩 옷이 흠뻑 젖었다 마를 정도의 땀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정글을 뒤지며 적을 찾고 있어. 오직 적과 나, 삶과 죽음의 택일 밖에 없는 전장에서 묵묵히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내 새끼, 시화, 미애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장하고 흡족해.
  여보! 지금쯤 이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쓰는데 이 글을 받을 때는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겠군.
  설을 쉰 이야기와 시화, 미애가 노는 모양을 적은 당신 편지를 이 산중에서 받고 잠시 명상은 당신과 아이들에게로 달려가는군.
  작전을 들어 온지 열흘이 되고 보니 병사들은 물론 나 자신도 텁수룩한 머리며 1Cm쯤 자란 수염을 손으로 만져보며 (색다른) 감각을 느끼게 되는구먼.
  여보! 난 잘 있어. 백 수 십 명의 맹호를 거느린 그대로 전장에서 가장 강한 자로 등장하고 있어. 일자로 봐서 이번 작전이 큰 작전(사단작전) 치고는 휘나래가 될지 모르지. (작전은) 앞으로도 한 열흘 넘겨 걸릴 거야.
  전장에 선 남편을 걱정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당신의 심정은 어렴풋이 짐작하지만 앞에서 말 한 데로 여기에서는 제3자가 있을 수 없고 ‘적과 나’라는 양 극 만이 존재하는 만치 모든 생각도 결국 여기로 귀착하게 돼.
  여보! 당신의 남편은, 시화, 미애의 아빠는 승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걱정할 것 없어. 기회가 있는 대로 쓰겠지만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니 편지가 늦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어.
  시화가 아빠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보! 정말 자식 없는 사람은 외롭고 허전하겠지? 그게 벌써 월곡까지 가서, 그것도 아빠의 외가에 가서 밥을 달라고 했다니 참 많이 컸나 봐. 1년 사이에--여보! 당신이 고생했지 뭐.
  어제가 보름이더구먼. 아이들(병사들) 간에 찰밥 얘기가 나서 알았지. 열 엿새 둥근 달이 떠오르는구먼. 전장에도 다름 없이---
  여보! 토정비결과 같은 비과학적인 것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전장에 선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못한 미신도 믿게 되는군. 꿈 같은 것도. 당신 말 같이 좋다니 좋구먼.
  시화에게 뭘 사다 줘야 현재 (시화의) 꿈을 만족시켜 줄까? 여보! 다른 어떤 것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꼭 멋있는 것을 사 갈게. 사이공 시내 전부를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야.
  여보! 당신은 시화가 아빠를 닮아서 맘이 좋다고? 여보! 난 지금 적에게 있어서는 가장 맘이 좋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라. 여보! 이 다음 만남 후에 시화에게 ‘좋은 마음’을 배워야 할런지도 몰라.
  끝으로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고 얘기하고 싶어. 작전을 나오니까 날자가 잘 지나가는 것 같아서 좋아.
  그리고 이원에 어머님과 옥란이도 한 겨울 나느라고 별 일 없으신지 궁금하군.
  자, 오늘은 이만. 그럼 안녕.
월남의 정글 속에서 당신을 보고파 하는 영으로부터
고국 편지 ('70. 2. 28)
여보! 당신에게
  서늘한 날씨에 햇볕은 따뜻합니다. 감기 들기 알맞은 기후. 두 아이들의 감기를 치뤘답니다.
  여보! 그간도 안녕? 그저께 기다리던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집으로 간 편지를 고모가 부쳐줘 늦게서야 받았습니다. 2통을 함께. 궁금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아요. 그러나 20여일 전의 소식이라 생각하면 지금쯤 그곳은 건기에 몹시 덥다지요. 여긴 춥고 싸늘하니까 그곳의 더웁다는 감각을 잃어버렸답니다.
  (여긴) 감기 들까 봐 아이들을 방으로 불러들이고, 따뜻한 곳을 찾아 다니는데--- 여보! 모기가 문다고? 여기선 웃음이 나오지. 건강에 조심해요. 찬찬한 당신이니까 너무 잘 알아서 하실 줄 알지만---
  여보! 이제 이 달도 오늘로 끝이 나고 내일은 3월이 시작되겠군. 그러면 1달 반만 있으면 그리웠던 당신을 볼 수 있겠군. 아이 좋아. 말 할 수 없이---
  시화, 미애가 독감을 앓고 일어나 방에서 공치기며, 팽이치기며 하고 놀고 있답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던 2일 전에 아파 누웠다가 아빠 편지 온다니까 벌떡 일어나며 “아빠 편지 왔어?” 하고 반가워 하는군. 가끔 아빠가 보고싶다고 한답니다.
  당신 편지를 창작으로 읽어 주면 좋아서 입을 딱 벌리곤 한답니다. 옆에서 미애는 무엇을 아는 척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요사인 서울 고모하고, 기수하고 왔군. 기수 사촌 약혼식이라나 오늘이--- 기순이는 3번째 (아이) 또 아들이라나. 잘 했군요.
  그리고 (시골) 집엔 다 편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나와 너무 조용해서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다고 정희 아가씨로부터 편지가 왔군. 서울 도련님이나 석희 아가씨도 잘 있고---
  여기 어머님도 안녕하신데 여름에 눈 아픈 것이 덜 나았어요. 한달간 다녀도 효과가 없어 말았는데 부항 어머님 다니시던데 그곳에 가 볼려고 합니다. 그리 대단치는 않아요. 눈이 안 보인다 거나 그런 것은 없는데 염증이 약간 있어서 --- 곧 김천에 가 보실려고 합니다. 난 아이들과 이원 집을 떠 봐야지.
  여보! 당신의 모습을 아무리 그린다 해도 도무지 생각이 안 돼. 사진을 봐도 시원치 않고---
  여보! 우리 미애가 예쁘다고 모두들 그래. 서울 고모도 자꾸만 예뻐진다고 하는데 당신이 오면 예쁘다고 야단일 테지. 더구나 내 새끼이니까--- 여보!--- 자랑 그만 해야겠다.
  그럼 또 쓰기로 하고 이만 안녕---
당신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당신의 옥이가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