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편지 ( 제 104 신 )
옥이 당신에게
  오랫 만에 당신의 편지를 받았고 또 펜을 들게 되는군. 당신은 별로 달갑지 않은 소식을 주는군. 뒤늦게 독감으로 미애와 함께 고생하고 있다니 말야. 겨울이 다 갔다고 안심했던 모양이지?
  여보! 난 이번의 큰 작전 -월계작전- 에서 별 큰 과오 없이 몸 성히 돌아왔지. 부하 하나를 잃었다는 아픈 가슴을 안고--- 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도 해 보지만 맘 한 구석에 서운함을 금할 수 없구먼.
  그렇다고 당하고 온 것만 은 아니야. 착잡한 정글 속에서 적을 찾아 내서 때려야 하는 지형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열 댓 놈을 때려 눕혔으니까. 그렇지만 때려 눕힌 것 보다 잃은 하나가 더 중요하군.
  작전이 20일 넘고 보니 수염이 많이 길었더군. 그리고 입술이 몇 번 벗어지고, 얼굴이 새까맣게 됐더군. 전장에서 갖던 각가지 상념들을 떨어버리고 피로도 풀 겸 대대 전체가 휴양을 들어왔지. 휴양이라면 당신도 어디에 와 있는지 알 꺼야. ‘안쾅’이라는 곳.
  여보! 당신은 그래도 어른이니까 독감 쯤이야 이겨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미애가 앓고 있다니 몹시 걱정되는군. 기침과 신열 때문에 괴로워 하는 미애 옆에 걱정스레 앉아 있을 당신의 모습이 떠 오르는 군. 여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당신이 힘들겠지만 약도 쓰고 정성을 드려야 돼.
  시화는 괜찮다고? 암 그래야지.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거야. 미애는 당신을 닮아서 그 모양이구.
  여보! 그럭 저럭 3월에 접어들어 1주가 지났으니 이제 꼭 한 달만 있으면 월남을 떠나 당신에게로 출발하게 되는군. 그간에 큰 작전을 없을 게고 조그만 작전에 후임자와 합동으로 한 번 나가겠지. 그리고 3월 하순에는 사이공을 가게 될 것이고---
  그러고 보니 정말 다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당신처럼 한 겨울 갔다고 안심해서 독감 걸리는 것처럼 하지는 않을 꺼야. 부산에서 당신과 만날 때까지는 전쟁터에 선 군인인걸--- 항상 긴장을 풀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전장에서 체험을 통해 얻었으니까.
  여보! 만나는 그 날의 벅찬 기쁨을 생각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참 한심한 친구들도 있어. 뭐냐고? 이제야 월남에 와서 중대장 하겠다고 시작하는 친구가 있으니 말야. 그 이름 이진하, 이도원 양씨 말야.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식을 들었지. 여보 그 친구들에 비하면 난 그래도 매를 먼저 맞은 격이 되지?
  여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들 Wife들을 생각하고 힘을 내라고. 시시하게 독감 걸리지 말고 말야.
  여보! 펜을 들 기회도 몇 번 안 남은 것 같애. 자주 쓸게. 당신도 봄에 다 됐다고 너무 안심하지 말고 아이들과 몸조심 해. 그럼 안녕.
월남에서 당신의 영으로부터
고국편지(제 000 신)
(제103신에 첨부된 '70. 2. 28. 고국편지 이후 것은 보관 된 것이 없음. 분실 한 것인지, 아니면 받아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안 쓴 것인지는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