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편지 고국편지를 마치며
  전투중대장 경력을 필 하겠다고 월남으로 간 것이 중대장 자리가 없어 대대작전장교 하면서 두 달 남짓 기다리게 되어 결국 월남에서 2개월 연장하여 14개월 간을 있게 되었다.
  그 동안 고국에 남겨 놓고 간 아내와 시화, 미애 두 아이들이 보고싶어 짬만 있으면 펜을 든 것이 연번으로 106신까지 나갔는데 결번한 것이 5개 있는 반면, 연번이 중복된 것이 5개 있으니 꼭 106통의 편지를 월남에서 고국으로 띄운 것이다.

  한편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두 아이 키우며 서투른 농사일에 온 몸이 지쳐 있으면서도 이역 만리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고, 편지를 기다리면서 심신이 고달픈 가운데서도 부모님의 안부와 자식들의 근황을 또박또박 적어 월남으로 보낸 것이 무려 94통이다. 그래서 총200통의 월남편지와 고국편지가 월남과 고국을 오간 것이다.

아내와 시화, 미애가 1년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골집
1960년 부친께서 직접 지으신 집이다.
4칸으로 왼쪽부터 부엌, 큰방, 대청, 작은방순이고, 마루의 미닫이 문은 1982년 경에 단 것이다.
2000년 5월 헐릴 당시 빈 집으로 있으면 서 이웃집에서 곡식 말리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2000년 옛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시골집

  월남편지와 고국편지는 1:1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편지가 발송된 후 받는 데까지 보통 보름이고, 어떤 때는 한 달이 걸릴 때도 있도록 불규칙하였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사이에도 몇 통의 편지가 오가는 도중에 떠 있게 되니 자연히 앞의 월남편지와 뒤의 고국편지는 주고 받는 대화처럼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들 200통의 편지 속에는 사랑, 그리움, 기다림, 희망과 소망, 정열 등의 말들이 단 한 자의 꾸밈도 없이 순수하게 들어있다. 유창한 문장력으로 다듬어진 창작의 글이 아니라 한 번 쓰면 몇 자 지우는 정도의 수정은 있었지만 문학작품처럼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推鼓)를 거친 글이 아니다. 우체부가 온 김에 가져 갈려고 문 밖에서 아내의 편지 쓰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상황도 여러 번 글에 나온다.

  이들 편지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들이니까 우리 내외야 당연히 재미도 있고, 그 옛 날을 회상하는데 더 이상의 자료가 필요 없다. 둘이 편지를 놓고 읽어 봐도 될 것을 굳이 홈페이지에 올려 공개하는 것은,
  월남전에 한국군이 파견된 것을 용병이니 뭐니 하면서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용병이라도 좋다 누구나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푼 돈이나마 벌어 온 것이 그래도 풍요의 오늘을 이루는데 적지 않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실증해 보이고 싶었다.

  또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 마치 자기는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져 오늘의 자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젊은이들, 부모나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 꼴통’으로 몰아 부치고, 선거도 할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쉬라는 등 자기 세상을 만났다고 설치는 소위 386세대의 선무당 정상배 패거리들이 자기도 이렇게 부모들의 사랑과 소망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멧세지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들에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아들 시화와 딸 미애가 바로 386세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이 편지들을 우리 시화와 미애가 맨 먼저 보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우리 민족은 근대사에서만도 소위 대동아전쟁, 한국전쟁, 월남전쟁 그리고 지금은 이라크전쟁등 많은 전쟁터에 젊은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나갔다. 그 많은 젊은이와 고향에서 소식을 기다리는 아내, 부모, 자식들이 이와 똑 같은 서신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하나같이 무사하기를 빌지만 전쟁터에는 피아를 막론하고 많은 희생이 따르는 법, 그 가족들의 희망과 소망을 저버리고 불귀의 객이 되었거나, 돌아오기는 했지만 ‘절름발이(월남전 때 부상자를 칭하는 은어)가 되어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살게 되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월남전만 해도 전사하거나 부상 당한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부상도 입지 않고 멀쩡하게 돌아왔는데 ‘고엽제 후유증’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지 않는가.
  나는 내가 생각해도 행운아다. 월남에서 최일선 소충중대장으로서 비록 땀을 많이 흘리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서 전장에서의 초조함을 달래기도 했지만 귀신 같은 V.C의 저격도 당하지 않았고, ‘바보들의 덫(부비추랩)’에도 걸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귀국제대의 ‘제대장’을 맡아 무사히 부산항에 입항 하였다.

  월남편지나 고국편지 어느 한 장에도 빠진 적이 없는 우리 아들 시화는 올 해 40세,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이 시대의 총아 IT기술의 연구원으로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사업책임자(PM)를 맡는 중견 회사인으로 성장하였고, 또 두 딸 휘림(초등학교 5학년), 휘수(세 돌 맞이)를 둔 든든한 가장이 되었다.

우리 부부와 아들 시화 가족사진
2003년 10월 둘째 손녀딸 휘수 돌 사진 찍을 때 찍은 것.

  우리 딸 미애도 의학의 길을 걸어 전문의로서 지금 남편의 고향 제주에서 부부 함께 병원을 개업하여 돈도 벌고, 제주 시민의 건강을 돌보는데 일익을 담당하면서 역시 세 딸(아현, 나현, 주현)의 엄마가 되었다.

미애네 가족사진
딸 미애는 이대 의대를 나온 피부과 전문의, 사위 김동호는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이비인후과 전문의


                                        월남편지 고국편지 조견표
월남편지 고국편지 사진 비고
제1신 父親前 上書, (동기생)최용, 문영대, 고재만, 나영호
제2신 '69.2.22 (동기생)반준석
제3신 '69.3. 5
제4신 '69.3.18 3매 (사진)(1)헬기탑승 순시, (2)대대OP 벙커 위, (3)박마산잔투 대대지휘소
제5신
제6신 '69.3.24
제7신 1매 (사진)출국전 가족사진
제8신 '69.3.27
69.4. 2
(동기생)조용수, 박용원, 반준석, 문영대
제9신 '69.4.17 2매 (사진)(1)안꽝휴양소, (2)대어, (동기생)반준석
제10신 '69.4.22 (동기생)반준석, 박용원
제11신 '69.4.29 (동기생)고재만
제12신 '69.5. 6
69.5.13
제13신 '69.5.16 1매 (사진)(1)미애 돌사진
제14신
제15신
제16신 '69.5.23
제17신 '69.5.30
제18신
제19신 '69.6. 5 (동기생)박용원, 문영대
제20신 '69.6.10
제21신 '69.6.16
제22신 '69.6.23
제23신 '69.6.30
제24신
제25신 '69.7. 5
제26신 '69.7. 8
제27신 '69.7.17 (동기생)반준석
제28신 '69.7.21
제29신 '69.7.24
제30신
제31신 (동기생) 박용원, 반준석
제32신 '69.7.28
'69.7.31
제33신 '69.8. 4
제34신 '69.8. 5 2매 (사진)(1)줄사다리오르기 시범, (2)훈련 감독, (동기생)박용원
제35신 '69.8. 7
제36신 '69.8.10
제37신 '69.8.13 3매 (사진)(1)고보이평야 3인, (2)고보이평야 혼자, (3)폐허가 된 사원에서
제38신
제39신 '69.8.19
'69.8.22
'69.8.27
1매 (사진)(1) 중대베이스에서
제40신
제41신
제42신 '69.8.29
제43신 '69.8. ?
제44신
제45신 '69.9. 2
제46신 '69.9. 4
제47신 '69.9. 8 3매 (사진)(1)중대 일동. (2)전진21호작전 참가 분대장 이상,
(3)선임하사 이상
제48신 '69.9.16 2매 (사진)(1)월남 동성훈장, (2)동성훈장증
제49신 '69.9.20
제50신
제51신 '69.9.23
제52신 '69.929
제54신 '69.9.30 제53신 누락
제55신 '69.10.7 (동기생)문영대, 박용원
제56신 '69.10.9
제56호 '69.10.12 제56신이 중복되어 '제56호'로 명명
제57신 '69.10.14
제57호 '69.10.18 제57신이 중복되어 '제57호'로 명명
제58신 '69.10.23
제59신 '69.10.27
제60신 1매 (사진)(1)탄흔자국 편지
제61신
제62신 '69.11. 3 1매 (사진)(1)고국의 가족 사진
제63신 '69.11. 5 (동기생)문영대, 박용원
제64신
제65신
제66신 '69.11. 8 1매 (사진)(1)중대 베이스에서
제67신 '69.11.11
'69.11.12
제68신 '69.11.18
'69.11.20
제69신 '69.11.27
'69.11.29
제70신 '69.12. 4
제71신 '69.12. 8 3매 (사진)(1)화랑훈장, (2)은성훈장, (3)화랑훈장증
제72신 '69.12. ?
제73신
제76신 '69.12. 9
'69.12.16
제74, 75신 누락 (동기생)박용원, 정태진, 차흥렬, 김정훈, 이명주,
김규병, 김재희, 문영대, 고재만, 김종헌
제77신 '69.12.19
'69.12.21
1매 (사진)(1)중대 훈장수상자 일동
(동기생)김정훈, 박용원
제78신 '69.12.23
'69.12.30
(동기생)박용원
제79신 '69.12.25 (동기생)김종헌
제80신 '69.12.28
제81신 '69.12.31 (동기생)문영대, 박용원
제82신
제83신
제83호 (동기생)박용원
제84신 '70.1. 3
'70.1. 6
(동기생)박용원
제86신 '70.1. 9 제85신 누락
제87신 '70.1.11
제88신 '70.1.15 1매 (사진)(1)인근마을 대민지원
제89신 (동기생)황원탁
제90신 '70.1.20
제91신 '70.1.23
제92신 '70.1.26
제93신 '70.1.28
제94신 '70.1.29 1매 (사진)(1) 시화 그림
제95신 '70.1.31
제96신 '70.2. 2
제97신 '70.2. 5
제97호 '70.2. 8
제98신 '70.2.10
제99신 '70.2.17
제101신 '70.2.24 제100신 누락
제102신 '70.2.26
제103신 '70.2.28
제104신 (동기생)이진하, 이도원
제105신
제106신 3매 (사진)(1) 사이공관광 사진-1, (1) 사이공관광 사진-2,
(1) 사이공관광 사진-3, (동기생) 이도원
(106통) (94통) 4매
(37매)
(사진)(1)옛 시골집, (2) 신축 시골집, (3)시화네 가족,
(4)미애네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