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한 맺힌
파랑새 고개
沙月 李盛永(2009. 10. 7)
  ‘파랑새고개’란 지도상에 있는 이름이 아니고, 이 지역에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어떤 인연으로 이런 예쁜 이름이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월남 행정구역으로는 푸캇군 캇민면과 캇다이면 지경이면서 맹호 1연대 2대대와 3대대(재구대대) 간의 작전 협조점이다.

  마치 우리나라 산골 동네와 동네 사이 산길 고개에 집이라곤 보이지 않고, 성황당 당목에는 오색실 걸려있어 저녁 늦게 이곳을 지나자면 머리카락이 쭈삣 해 지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고개라기는 좀 뭣하고, 그냥 평지에 길이 약간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정도지만 이 부근에는 마을이 없고, 재구대대 쪽으로 나가면서 왼쪽이 푸캇산 쪽이고, 오른쪽이 미캇강 쪽인데 도로 좌우측에 주로 사탕수수밭이 이어진 어수룩한 곳이라 이곳을 지날 때면 자연히 긴장되는 곳이다.
파랑새고개 위치
  6중대장 김대위(김만식?) 는 아직 귀국 일자가 넉 달이나 남은 장교였다. 중대장을 무사히 마치면 3박4일 동안 사이공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대장급 이상은 태국으로 관광을 간다. 뭐 아레나(?)라고 했던가?
  중대장이 전투지휘관을 성실히 수행한 대가로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를 ‘사이공전투관광’이라 했다.

  연대본부의 인사주임은 이 전투관광 티켓을 잘 확보하여 연대 내 모든 중대장들에게 고루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월 사령관 스케쥴에 맞추어 5-6명 인원이 같은 날 사이공에 모여서 사령관 공관에서 사령관과 함께 점심 대접을 받으면서 담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회식은 단순한 식사대접이 아니다. 사령관은 임기가 끝난 중대장들로부터 전방부대 실정에 관한 중요한 대내외정보를 얻는 일종의 정보수집 행사인 것이다.

  연대에서는 한 번에 1-2명 정도 보내는데, 중대장 임기가 끝나는 날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갈 사람이 없거나, 너무 많아 초과하기 때문에 못 가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갈 사람이 없어 티켓이 남아도는 것이야 문제가 안되지만 못 가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인사주임에게는 큰 문제다. 자기가 치밀하지 못하여 개인의 중요한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대 인사과에서는 전투관광을 미리미리 당겨 보내서 못 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임기가 다가오는 중대장들에게 슬슬 전투관광 바람을 불어 넣어 가슴이 부풀게 한다.
  일년 동안 정글복, 정글화 차림으로 C레이션을 먹으면서 정글을 누비다가 오랜만에 베이스에 돌아와도 국방색 군복 입은 부하들과 아침 저녁 대한다.

  기껏해야 베이스 곁 람브레타가 다니는 시골길에 대나무 작대기 양 끝에 대바구니를 매달아 채소나 과일을 담아 어깨에 들러 메고 힘겨운 듯 뒤뚱거리면서 시장으로 팔러 가는 시커먼 아오자이와 별 다를 바 없는 햇볕에 탄 얼굴의 시골 여자들만 보는 삭막한 생활을 1년 동안 해온 터에 이미 갔다 온 전임자들이 전해 준 사이공 거리의 풍경, 사이공 아가씨들의 매력 등을 머리 속에 상상하면서 가슴은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중대장이 사이공을 갔다 오거나 소대장, 분대장이 퀴논을 갔다 와서 바로 귀국하지 않으면 퇴물이 된다. 맘이 들 뜬 채 작전에 나가면 불상사를 당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그만치 월남전 전장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아직 임기가 4개월이나 남은 6중대장에게도 전투관광 바람이 불어 닥쳤다. 연대 인사장교가 바람을 넣은 것이다. “이 번에 못 가면 다음 번에는 대상 인원이 너무 많아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인사장교의 전화를 받은 6중대장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번에 갔다 와야 되겠다고 생각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대대장이 ‘며칠 후 대대 작전이 계획 돼 있는데 6중대는 중대장 없이 작전을 해도 되겠느냐’ 며 다음에 가라고 했지만, 대대본부와 중대가 같은 베이스 안에 있는 탓으로 저녁마다 대대장 숙소를 찾아가 졸랐다.
  ‘부관(부중대장)이 있으니 작전은 문제가 없다’ 면서 졸랐다. 화가 난 대대장이 “그럼 네 맘대로 해” 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는데도 이것을 승낙이라고 연대 인사장교에게 전화해서 사이공 주월사령부 인사처에 명단이 올라갔고, 6중대장은 사이공전투관광을 떠났다.

  중대장이 사이공 전투관광을 갔다가 귀대하는 날은 풋캇산 북쪽 베이스 인근을 대대작전으로 일제 수색하는 작전을 건의하여 사단장 승인은 받은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각 중대 베이스에 수송대대 차량을 3-4대 보내서 지정된 집결지에 09:00까지 집결하도록 하였다. 물론 6중대는 중대장 대신 부관(부중대장을 이렇게 불렀음)이 인솔해서 집결지에 도착하였다.

  이 작전은 대대와 각 중대 베이스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이 당시 베트콩이 한국군 베이스나 비행장 등 시설을 공격하려면 그들은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당시 베트콩이 한국군 베이스나 비행장 같은 시설을 공격한다는 것은 병력으로 접근해서 돌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적당한 거리에 접근하여 박격포나 로캣트로 포격을 하고 도주하는 것이 그들의 가능한 방책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지고 가는 것 외에 수송수단이 없는 그들은 몇 달 전부터 마치 개미가 겨울 양식을 물어 와 저장하듯이 박격포탄이나 로켓탄을 날라와 은밀한 장소에 감추어 두었다가 공격의 여건이 무르익으면 날을 잡아 주로 야간에 일제 포격을 하고 도주하는 것이다.

  한국군이 베이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로 이루어 진다. 하나는 소극적인 베이스방어훈련이고, 또 하나는 베이스 주변의 위험요소를 미리 찾아서 제거하는 적극적인 베이스 주변 수색 작전이다.

  베이스방어훈련은 매일 저녁으스름에 비상훈련을 한다. 중대원 각자의 참호에 신속히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적의 공격 상황을 가상하여 일제 사격을 1-2분 정도 실시 한다.
  이 훈련은 신속한 베이스 방어 훈련이기도 하지만 더 큰 효과는 주변에 은신한 적이나 그들과 협조하는 월남 주민들에게 한국군 화력의 위력을 시위하는 심리전이기도 하다.

  베이스 주변 수색작전은 전술한 것과 같이 베트콩이 베이스를 공격할 목적으로 가까운 곳에 총포와 탄약을 미리 은닉 해 놓은 것을 찾아내어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활동이다.

  이번 대대 작전은 후자의 목적을 띤 비교적 소규모 작전이다. 이번 작전에서 전과가 있다면 신임 연대장(김한주?) 취임 후 첫 전과이기 때문에 연대장의 머리 속에 우리 대대와 첫 전과를 올린 중대를 각인시키는 이중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이 은닉한 무기고의 발견은 물론 은거했던 흔적도 하나 찾지 못하고 오전 작전이 끝나 각 중대는 안전하고 경계가 용이한 장소를 골라 중식을 하도록 하였다. 중식은 물론 C-레이션이다.

  중식이 끝나고 오후 수색작전을 전개하는 동안에도 어느 중대도 이렇다 할 전과는 없었다. 오후 3시 반쯤 되어 이제 작전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연대 상황실에서 무전이 왔다. 사이공 전투관광 갔던 6중대장이 연대본부에 도착했으니 태워 갈 찦차와 경계병을 보내라는 것이다. 부대간 연락 헬기(미군기)가 다 돌아가고 연대에는 연대장 지휘용 헬기만 남아 있어 헬기를 이용할 수 없으니 찝차로 호위해 가라는 것이다.

  작전 현장에 나와 있는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더니 민사장교(S-5) 차에 6중대 본부요원으로 경계병을 태워 보내라는 것이다. 대대장이 굳이 민사장교의 차를 보내라는 데는 그 나름대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월남에서 베트콩이 노리는 저격 1호가 정보장교 차이고, 다음은 대대장, 작전장교, 부대대장, 통신장교, 인사장교 순이지만 민사장교는 저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민사장교는 월남 주민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 주임무이기 때문에 이를 저격하면 민심이 베트콩에게서 떠난다는 것이다. 중대장 호송 경계병은 6중대 본부경계조장, 인사병, 무전병 3명이 탑승한다고 했다.

  6중대장 귀대문제는 이렇게 처리하고, 대장께서는 작전장교인 나에게 뒷정리 잘 해서 각 중대 베이스로 무사히 철수하라면서 먼저 베이스로 돌아갔다.

  대대장이 떠난 지 10여분쯤 지났을 때 자동차대대 수송차량이 집결지에 도착하였고, 각 중대는 집결지로 철수를 준비 중이었는데 갑자기 중대 지역에서 집중사격 총소리가 울렸다. 방향으로 봐서 5중대지역이었다.
  5중대장은 육사 2년 후배인 이현부대위. 무전을 받는 중대장은 의기 양양한 목소리로 “선배님! 한 놈 때려 눕혔습니다” 한다.
  사살 1명과 CKC 소총 1정을 노획했다는 것이다. 다른 문서나 장비가 없고 단독무장인 것으로 보아 숨어서 우리의 작전을 몰래 지켜보던 첩보병인 것 같다는 것이다. 집결지로 출발 준비 중 한 병사가 소변보러 갔다가 딱 마주쳐서 도주하는 것을 중대가 집중사격으로 사살했다는 것이다.

  상황을 먼저 대대 상황실에 도착한 대대장님께 보고하고, 작전 선임하사관 김중사에게 연대 상황실에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다.
  얼마 후 1연대 상황실 김대위(이름?)가 확인 차 무전이 왔다. 김대위는 나와는 따블빽 동기다. 축하한다는 말까지 하고 무전을 끊은 지 5분쯤 지나서 김대위가 다시 무전을 걸어와 5중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사살한 베트콩 시체는 가매장하고, 노획품을 챙겨서 집결지에 도착하여 수송차량에 탑승해서 중대 베이스로 철수를 시작했다고 하였는데 20분 후면 중대 베이스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였다.
  잠시 후 또 김대위 무전이 왔다. “신임 연대장께서 20분 후에 5중대 베이스를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부임 후 첫 전과를 올린 5중대원들을 치하하기 위해서라 하였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니, 대대장께서도 시간에 맞추어 5중대 베이스로 가겠다면서 작전장교도 거기로 바로 오라는 것이다.
  5중대 베이스는 대대베이스(6중대베이스)에서 서쪽 3대대(재구대대) 쪽으로 약 4Km 쯤 떨어져 있고, 4Km 쯤 더 가면 7중대 베이스가 있고, 3Km 쯤 가면 재구대대와 경계인 파랑새고개다.

  내가 5중대베이스에 막 도착했을 때 연대장 지휘용 헬기가 내렸다. 거기에는 대대장, 5중대장이 앞에 서 연대장을 영접하고, 그 뒤 중대 광장에 5중대원들이 작전 복장을 한 채로 줄 서 있었다. 연대장이 타고 온 헬기에서 연대 주임상사와 당번병이 박스 몇 개를 내리는데 얼른 보아 A-레이션 센드리스팩(부대품상자) 같았다.

  C-레이션에는 과자, 커피, 건조 과일 등 부대품이 개인별 상자에 분배되어 있지만, A-레이션 부대품은 100명분을 한 팩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C-레이션이 지급되는 중대급 이하 부대의 병사들이 무척 선호하는 품목인데 한 박스 풀어 놓으면 1개소대가 푸짐하게 먹고, 나누어 가질 수 있어 대대급 이상 지휘관들이 병사들의 사기 앙양 품목으로 활용한다.

  대대장(안교덕 중령)이 영접하고, 5중대장(이현부 대위)이 현장감 있게 설명을 하니 대대작전장교인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뒤로 처져서 대대장 차의 대대망 무전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전기가 소란스럽기 시작한다. 대대 중계소 무전병과 6중대 무전병과의 교신이 라우드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6중대 무전병은 연대본부에 귀대중인 6중대장을 호송하고 돌아오다가 파랑새고개에서 베트콩의 저격을 받았는데 6중대장이 얼굴부분을 맞아 혼수상태이며, 지금 대대의무대로 급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 교신을 감청하자 무의식 적으로 5중대베이스 앞을 지나가는 633지방도에 시선이 갔다. 아닌게 아니라 베이스 앞 비포장도로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쏜 살 같이 달려가는 차가 한대 보였다. 직감적으로 ‘저 차가 6중대장을 태운 차’ 라고 생각하였다.

  5중대장이 휴대용 작전상황판을 펴 놓고 오늘 작전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대대장과 연대장이 팔짱을 끼고 서서 경청하고 있었다. 설명을 듣고 있는 연대장과 대대장도 기분이 좋아 있었고, 5중대장은 신바람이 나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지만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즉시 뛰어갔다. 그리고 대대장을 향해 “긴급히 보고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고는 대대장과 연대장이 동시에 듣고 있는 상태에서 6중대장이 저격 받은 사항을 말하고, 633번 지방도를 달려가고 있는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지금 다스톱(환자후송헬기)을 신청해도 최소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으니 위독한 6중대장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선의 방안은 여기 와 있는 연대장님 지휘용 헬기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대대장은 말이 없고, 연대장께서 쾌히 승락을 하였다.

  나는 대대망 무전병을 데리고 5중대베이스 헬기장으로 뛰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손짓 발짓 해가며 “중대장 한 사람이 지금 저격을 받아 위급하니 당신이 후송병원까지 후송해야겠다. 연대장께서도 승락하였다” 하니 조종사(준위?)도 다스톱을 신청할 것을 말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이 위독하다고 하니 두말 않고 시동을 걸었다.

  대대베이스 상황실에 무전을 걸어 선임하사관에게 “저격 받은 6중대장 차가 대대 쪽으로 갔으니 곧 도착할 것이다. 군의관에게 응급조치 해서 후송을 준비를 하도록 하라, 지금 연대장 지휘용 헬기가 그 쪽으로 갈 것이다” 고하였다.

  나와 대대무전병이 연대장 지휘용 헬기를 타고 대대베이스 헬기장에 도착하니 군의관과 위생병들이 6중대장을 들것에 싣고 헬기장으로 나왔다. 군의관에게 상태를 물으니 왼쪽 귀밑에서 오른쪽 귀 밑을 관통했는데 지혈 등 응급조치는 했지만 완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혈압이 자꾸 떨어지고, 의식이 없다고 하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헬기조종사는 즉시 이륙하여 푸캇산 동쪽 안부를 넘어 퀴논쪽으로 날아갔다. 1시간쯤 후에 6중대장은 사망하였다는 군의관의 보고가 있었고, 다음날 군의관이 돌아와서 사실은 후송 중에 헬기 속에서 절명하였다는 것이다.
박마산 작전 후 안꽝휴양소에서 망중한
아래 왼쪽이 6중대장, 아래 오른쪽이 7중대장, 위 왼쪽이 보급관, 위 오른쪽이 나
뒤쪽으로 보이는 산은 안꽝항 건너편 푸미반도 끝
6중대장 크로즈업
카메라를 만지고 있다.
  6중대장이 사망한 날 나는 정신 없이 6즁대장에 부임하였다. 저녁 때 대대장께서 불러서 올라갔더니 6중대장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이취임식도 필요 없고, 대대본부와 같은 베이스에 있었으니 언덕 아래 대대상황실 빵카 속이 내 근무지였던 것이 언덕 위 피난민촌 판자집 같은 중대장실이 나의 근무지로 바뀐 것 뿐이었다.
  이날이 ‘69년 4월 19일, 월남에 온 지 2개월 남짓했다. 6개월을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2개월 만에 전투중대장에 부임한 것이다. 그것도 정신 없이---

  6중대장 부임 후 전 중대장 호송 경계병으로 따라갔던 중대본부 경계조장 왕상렬병장(?)(중대본부 병사들은 그를 중대장 경호실장이라 불렀다)에게 당시 차근 차근 상황을 설명 들었다.

  대대 민사장교차(5호차)로 중대장이 앞자리에 타고, 뒷좌석 왼쪽에 경계조장, 오른쪽에 인사병, 가운데 무전병이 앉았다고 했다.

 차가 파랑새고개에 접근하고 있을 때 흔한 월남인 오토바이 한 대가 앞에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는데 길 복판으로 가고 있어서 운전병이 크락숀을 누르니 뒤로 힐끔 돌아보고는 길 가로 비켜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가더라는 것이다.
  자연히 차의 속도는 느려졌고, 운전병 뿐만 아니라 탑승자 전원의 시선은 그 오토바이에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몇 초 지났을까 한데 차와 오토바이 사이 도로상에 폭발물이 한 발 터졌는데 우리의 유탄 같았다고 했다. 왼쪽 사탕수수 밭에서 날아온 것 같은데 거리 상으로 수류탄 투척 거리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유탄발사기로 쏜 것 같다고 했다.

 이와 동시에 사탕수수밭에서 소총사격이 시작되었는데 대략 2-3명 정도였다고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운전병은 악세레이터를 밟았다. 운전병이 키가 작고 다리가 짧은 편이라 자연히 운전병의 자세는 뒤로 넘어지는 자세가 되었는데 앞자리에 탄 6중대장은 몸을 앞으로 굽혀 엎드리고, 뒤 좌석 양쪽 경계병은 칼빈M2를 난사했는데 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사탕수수 밭을 향해 무작정 쏘았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앞서가던 오토바이가 길 옆으로 넘어졌는데 오토바이 탄 녀석은 적 사격인지 아군 사격인지는 모르지만 총을 맞은 것 같다고 했고, 또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오토바이 탄 녀석이 베트콩있던 것 같다'고 했다. 차의 속도를 줄이도록 일부러 앞에서 방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3백m 쯤 달려 적의 사격지역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앞으로 숙였던 중대장이 일어나지 않아서 보니 앞 좌석 아래 피가 흥건히 고여 있고, 6중대장 오른쪽 뺨에서 역시 피가 솟아나고 있어 차를 세우고 압박붕대를 꺼내서 얼굴을 감싸 잡아맸으나 그 때 이미 중대장은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왼쪽 사탕수수밭에서 베트콩이 쏜 탄알이 운전병 양 무릎 위, 양 팔꿈치 아래를 통과해서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있는 6중대장의 왼쪽 뺨에 맞아 오른쪽 뺨으로 관통한 것 같다고 하였다. 운전병을 포함한 다른 네 병사는 전혀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

 그리고 대대본부 의무실은 향해 최대 속력을 내면서 달리고, 무전병은 대대중계소를 불러 6중대장 저격 사실은 전한 것이다. 그 때 5중대 베이스에서는 연대장, 대대장 앞에서 5중대장이 의기양양한 무용담을 침이 마르도록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고, 나는 내 차 곁에서 대대망 라우드스피카에서 무전병들의 통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6중대장은 귀국을 눈 앞에 두고 귀국 절차의 하나인 사이공전투관광을 다녀 오다가 조기귀국자(당시 무선교신 은어로 전사자를 이렇게 불렀음)가 된 것이다.

 월남 전장은 하나에서 열까지 불확실성의 전장이었다.
  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이 적인지, 적인지 양민인지 도통 식별이 되지 않거니와 적이 설치하는 ‘바보들의 덫’이라는 뜻의 부비추랩 또한 예상을 하기가 어렵다. 어디에, 무엇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지 모른다.

  지난 일을 놓고 ‘이러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마는 불확실성 투성이의 월남 전장에서 중대장 8개월을 지났다면 전장생리에 배테랑급인데 중대 병아리(병사)들은 작전에 내보내 놓고 하찮은 ‘사이공전투관광’을 갔다는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전장터란 항상 생명을 담보로 해 놓고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장교나 병사를 막론하고 자기 나름대로 금기(禁忌)가 있고, 징크스가 있게 마련이다.
  병사들에게는 별의 별 금기들이 있고, 장교들에게도 저마다의 금기가 있는데 그 중에 중대장급들에게는 공통적인 금기는 '사아공 갔다 오면 바로 귀국해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이공은 임기 다 끝내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고 가라' 는 뜻이다.
  그도 그 금기를 끝까지 지켰더라면 '한 맺힌 파랑새고개'가 아니라 '추억의 파랑새고개'로 남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