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미련한
푸캇산의 곰
沙月 李盛永(2010. 1. 21)
  푸캇산은 원 이름이 ‘바산(nui Ba)’이다. 해발 874m이지만, 동쪽에는 동지나해, 남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보이평야, 북쪽은 미캇강(Sg My Cat)을 남북으로 연한 평야, 서쪽 또한 저지대이기 때문에 푸캇산은 이 푸캇군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우뚝 솟은 독보적인 존재다.

  ‘바산’이란 월남 말로 ‘어머니산’이란 뜻이란다. 이 산 동쪽 9부 쯤에 뾰족하게 솟은 바위가 마치 어머니 젖꼭지 같이 보여서 얻은 이름이라고 하였다.

  '바산'은 파월하는 맹호부대 장병들이 배를 타고 퀴논항으로 입항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퀴논항에서 승선하여 귀국 할 때는 가장 늦게까지 보는 월남 땅이었다. 그래서 맹호 비호연대(1연대)에 소속되었던 장병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그 형상이 잊혀지지 않는 산이다.

  맹호 1연대가 이곳 빈딘(BINH DINH)성 푸캇(PHU CAT)군을 작전지역으로 하여 주둔하면서 푸캇군의 동부 평야지대에서 한 가운데 유일하게 높이 솟아 있어서 작전간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는 참고점이 되었고,
  또 맹호로 파월하는 장병들에겐 맨 먼저, 그리고 귀국하는 장병들에겐 맨 마지막까지 보는 월남땅이기 때문에 맹호장병들에게 잊을 수 없는‘푸캇산’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나는 6개월 정도 전투중대장 차례를 기다리며 맹호 1연대 2대대 작전장교 직무를 수행하고 있던 2개월 째 전임중대장이 사이공전투관광 갔다 돌아오다가 베트콩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4개월 일찍 1969년 4월 19일에 1연대 6중대장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중대장을 나간다고 좋아할 것만은 아니었다. 중대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중대는 전 전 중대장 때부터 전과는 없고 피해만 연속되는 중대였단다.

  어떻게 하면 가라앉은 사기를 부양시켜 피해 없고 전과 많은 중대를 만들 수 있을까?
  며칠을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중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딱 한가지 뿐이었다. ‘강한 훈련’ 그것이 전부였다.

  고국에서 사기앙양책으로 잘 등장하는 것은 회식, 위문방문, 위문품 등이 떠오르지만 월남에서 중대장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런 것들이 진정으로 사기를 앙양시킬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훈련이야 말로 훌륭한 전투기술과 함께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전장에서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전투에서 필승을 기약함은 물론 피해 없이 전과를 올릴 수 있는 1석2조의 방법이다.

  2주쯤 중대를 정비하고 안정을 시킨 후 대대장에게 훈련계획을 설명하고 승인을 건의하였다. 1주일 정도 푸캇산에 올라가 산악행군, 주간수색, 야간매복 등 훈련을 하면서 ‘푸캇산에 월맹정규군의 침투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훈련목적이 대대장의 마음에 꼭 들었던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1년여 월맹군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다가 약 2개월 전 박마산에서 그것도 우리 6중대가 월맹군과 부딪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던 터였다.(박마산 밤불꽃놀이)
  박마산은 우리 1연대 작전지역의 서쪽 변두리에 해당하고, 우리 2대대와는 거리가 멀지만 만약 푸캇산에 월맹정규군이 침투했다면 이것은 예사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체로 말하면 심장에 해당하는 연대 작전지역의 한복판 중요지형지물을 적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2일분 식량과 물은 휴대하고 나머지 5일분은 보급헬기로 보급키로 하고 도보로 푸캇산을 올랐다. 지금이 우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위는 좀 덜했지만 길도 없는 정글을 뚫고 산을 오르는 일은 적과의 싸움보다 더 체력을 지치게 한다.
  대략 7부 정도에 남쪽 편으로 평전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곳이 훈련하기도 적합하고, 또 월맹정규군이 침투했다 하더라도 오래 주둔할 수 있는 공간이 그곳이 적지라고 판단되었다.

  이따금 휴식시간 때마다 고참 선임하사들로부터 2-3년 전에 1연대가 월맹군과 이 푸캇산과 고보이평야를 놓고 쟁탈전을 벌릴 때 이곳에서 있었던 전투이야기가 재미도 있거니와 만일의 월맹군과 조우 상황을 상정하는데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첫날은 푸캇산 평전에서 사주경계를 하는 배치를 하여 중대가 한 곳에서 숙영하기로 하였다. 우기철에다 해발고도가 600m정도 되니까 월남의 밤도 쌀쌀했다. 야전잠바를 입고 보초를 서야 했고, 잘 때도 내의를 입어야 했다.

  하룻밤을 자고 난 중대원들은 무슨 야유회라도 나온 듯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제 하루 뿐이고, 2일차부터는 얘기가 달랐다. 1소대는 푸캇산 동쪽 끝, 2소대는 서쪽 끝, 3소대는 남쪽 끝에 있는 봉우리를 목표로 수색작전을 벌리는 작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중대본부와 화기반(60mm 박격포 2문)은 북쪽 푸캇산 8부 정도 높은 곳에 올라가 1,2,3소대의 수색상황을 내려다보면서 속도, 대형, 개인행동까지 감시하며 잔소리를 하니 어디서 땡땡이를 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수색을 해야 야간 매복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고, 중대장이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으니 적당한 곳에 주저앉아 매복지역 좌표만 적당히 불러줄 수도 없었다.
  저녁 때 매복 편성 다 끝났을 때쯤 다음날 작전(수색)지역과 매복지점이 하달된다. 물론 가까운 지점이 아니라 하루 종일 서둘러 수색을 하지 않으면 야간 매복지점에 도착하기도 힘든 거리였다.

  3일 째 되는 날은 수색코스를 중앙을 지나가도록 하여 그곳에 헬기로 보급된 물과 C레이션 기타 신청된 보급품을 받아갔다.
  이렇게 해서 5일을 꼬박 낮에는 정글속 수색, 밤에는 매복을 하고, 6일 째 되는 날은 헬기장이 있는 중앙에 집결하여 매복을 하도록 하였다. 중대원들은 하룻밤만 자면 베이스로 돌아간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1주일 분의 식량과 물이 더 와 있었다. 대대장님에게 훈련을 일주일 더 연장할 것을 건의하여 승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2주 째 1주일도 1주와 같을 요령으로 푸캇산의 구석구석, 바위틈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정밀수색을 하며 월맹정군의 침투 징후를 확인하면서, 수색 요령과 야간 매복, 부비츄랩 발견 및 처치법 등 월남전에 참전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적을 찾아내서 포획하거나 사살하고, 적을 경계하고, 적이 설치한 위험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기본 기술을 착실히 훈련하였다.

  2주째 마지막 날 밤도 헬기장이 있는 중앙에 집결해서 매복하도록 매복지점의 좌표를 내렸다.
  먼저 도착한 소대들은 시끌벅적 했다. 추가 보급품이 없으니 이제는 베이스로 돌아가는 것이 확실하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신바람이 난 것이다.

  중대본부도 시간에 맞추어 집결지역으로 갔다. 중대본부가 집결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소대원 중에 누군가 큰소리로 소리쳤다.
  푸캇산 곰이다!”
  나는 푸캇산에 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군데군데 옛날 월맹군들이 잡아먹고 버린 물소 뼈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의외의 소리에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쳤다.
  “곰이 있으면 병아리들 안전하게 사주경계하고, 사격조를 편성하여 사살하라”

  그런데 웬일인가? 소대원들이 왁짝 하고 웃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하! 내가 바로 그 ‘푸캇산의 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지난 14일 동안 내가 바로 곰같이 미련하게 훈련을 시켰구나.
  ‘그러나, 너희들 두고 봐라. 우리들이 이 푸캇산에서 곰같이 훈련하면서 흘린 땀은 멀지 않아 좋은 성과로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이다.’ 하고 혼자 중얼거렸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원계획 1주일, 수정계획 2주일로 푸캇산을 뒷동산처럼 생각하면서 구석구석 누비며 곰 같은 훈련과 월맹정규군의 침투여부를 확인 하면서도 한 사람의 낙오자나 환자 없이 무사히 마치고 하산하였다.
  나는 ‘희망의 싹’을 보는 듯 했다. 중대장 부임 1개월 만에---
  그리고 대대장님께 자신 있게 “푸캇산에는 아직은 월맹정규군이 침투하지 않았습니다”고 보고 할 수 있었다.